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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시나몬롤과 스즈끼

- 싸움의 기술-

살면서, 누구랑 싸워봤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수진이

내 최초의 싸움 상대는 수진이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열 두살이 될 때까지 같은 동네에 살았던 내 친구

둥근 밥상머리에서 밥 먹던 숟가락으로 세살 터울 여동생의 머리를 한 방에 제압하던 자매의 난을

제외하고 타인과의 제대로 된 싸움은 수진이가 최초였다.


동네 한복판에서 머리 끄댕이를 잡고 개처럼 뒹굴면서 싸웠던 수진이

손을 최대한 두피와 밀착해서 밀어넣고 머리끄댕이를 두바퀴 감아서 흔들어야 제 맛인 머리 끄댕이

싸움을 수진이와 해봤다.

전 날 낮에 머리끄댕이를 잡고 개처럼 뒹굴면서 싸웠어도 다음날이면 손을 잡고 놀았고

산에 올라가 아카시아 줄기로 서로가 서로의 머리에 파마를 말아주었으며

여자아이들이었으면서도 마당에서 누가누가 오줌 멀리 싸나 시합을 했었다.

도시의 아이들이 누가누가 잘하나 동요 대회에 나가서 노래 자랑을 할 때 내가 살 던 시골에서는

누가누가 오줌을 멀리 보낼 수 있나 시합을 하면서 놀았다.


지금도 가끔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남편의 머리 끄댕이를 잡고 흔들지만 남편의 머리카락은

군인 아저씨처럼 짧고 기름져서 흔드는 맛이 없다.

두바퀴를 감아서 돌리기도 어렵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

반항을 하지 않으니 재미가 없어서 흔들고 싶지도 않다.


친구라는 개념이 생애 최초로 생겨났을 때부터 수진이는 내 옆에 있었고 우리집 아니면 수진이네 집

옮겨 다니며 놀다가 심심하면 산에 올라가 아카시아 줄기로 서로의 머리에 파마를 말아주면서 놀았다.


아이들끼리 친하면 엄마들끼리도 친할 수 있는데

엄마는 수진이네 엄마랑 단 한번도 말을 나누는 걸 못봤다.


수진이네 엄마는 새 엄마였는데 1970년대 중반

그것도 도시도 아닌 촌에서 이혼 가정은 드물었고 더더구나 새엄마라는 단어는 이상하기만 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 새엄마를 갖고 있는 애는 수진이가 1호였고, 그 새엄마는 소풍날이면 김밥을 싸줬다.

친엄마를 두고 있는 나는 맨밥에 계란말이를 싸서 소풍도시락을 받을 때 수진이는

새엄마가 김밥을 싸준다고 했다.


"수진이는 새엄마가 김밥 싸준다는데 나도 김밥 싸줘"했다가 엄마가 확신에 차서 한 말이 이 말이었다.

"김밥보다는 깨끗한 밥에 반찬싸가는게 더 좋은거여"

어쩌면 엄마가 말했던 깨끗한 밥이란 수진이네 새엄마를 멸시했던 말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오십이 넘으니 엄마 말의 행간의 의미가 읽힌다.


수진이 새엄마는 잘은 몰라도 수진이를 때리거나 구박을 한 것도 아니었고 수진이도 바로 아래의 이복 동생들, 지원이와 길영이랑도 사이좋게 지냈던 걸 보면 1970년대 중반 어쩌면 이상적인 새엄마였으나

본처를 몰아 낸 수진이 새엄마는 바람을 피운 수진이 아빠가 더 나쁜 사람이었음에도 동네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의 무시는 "깨끗한 밥" 네 글자였다.




수진이는 새엄마랑 살지 않았고 고기 할머니랑 살았다.


임피역에서 기차를 타고 군산 새벽 시장에 가서 생선을 받아다가 우리가 살던 시골 동네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생선을 팔던 수진이네 할머니를 우리는 고기할머니라고 불렀다.


수진이네 안방 시렁위에는 낡은 트렁크가 얹혀져 있었다.


1970년대 중반

그것도 시골에서 트렁크 가방을 끌고 다니는 할아버지를 보는 일은 매우 신기한 일이었는데

수진이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가 트렁크를 끌고 다른 할머니 집으로 간다고 했다.

물론 고기 할머니는 본처였고, 동네의 아줌마들은 누구나 수진이네 고기 할머니한테

생선을 샀고 과일을 샀다.

의리에 똘똘 뭉쳐서 고기 할머니의 생선과 과일을 팔아준것같다.

우리 엄마처럼 뭘 안샀던 사람도 종종 고기 할머니의 다라이에서 사과를 샀고 고등어를 샀다.

엄마에게는 "깨끗한 고등어"였을 거고 "깨끗한 사과"였을것이다.


수진이네 할아버지 때문에 최초로 배운 영어 단어가 "트렁크" 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글도 제대로 모를 때 트렁크라는 영어 단어를 먼저 익혔다니, 이렇게 글로 쓰지 않았으면 몰랐었을 일이다.

물론 열살 남짓이었던 나나, 수진이는 말로는 트렁크라고 발음했어도 그게 영언지 한글인지

개념도 없었을 때다.


나의 첫 개싸움의 상대 수진이는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머리끄댕이를 앙칼지게 잡고 싸우다가도, 성격이 너무나도 순했던 수진이 바로 위의 언니,

정아 언니 바지에 막대기로 똥을 찍어서 묻혀서 정아 언니를 울리면서 함께 놀던, 

머리끄댕이의 손맛을 알게 해 준 수진이

잘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아언니에게도 사과하고 싶다.

"바지에 똥 묻혀서 미안했어"




교토에 있을 때 싸움아닌 싸움을 했었다.

외국인과 싸워 본 최초의 상대는 보로니아의 괴팍한 기술자 스즈끼상이었다.


빵집 아줌마들은 그 싸움에서 내가 이긴거라고 한사람도 이견없이 나에게 몰표를 줬다.


시나몬롤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카모메 식당"영화에서는 시나몬 롤을 만드는 순간부터 식당에 손님이 들기 시작한다.



카모메 식당에서는 손님을 불렀던 재수좋은 빵인 시나몬 롤이 보로니아에서는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내가 일하던 출하부와 20미터쯤 떨어져 있던 오븐실에서 생지로 구워져 나온 시나몬 롤을 출하부로 가져와서

슈가파우더에 물을 개서 빵위에 갈지자로 흩뿌리고 굳으면 포장을 하는데

대부분 현지의 일본인들이 가지러 가는 시나몬롤을 그날 따라 내가 가지러 간 게 발단이 되었다.


아니, 빵을 가지러 갈 때부터 아줌마들이 나한테 

"고상 오늘 스즈끼가 일하는 날이라 거기 있을껴,

갸가 승질이 아주 괴팍허니께 조심해서 정리 잘하고 와 알것지" 그랬었다.

다들 한 번씩은 스즈끼랑 싸움 아닌 싸움을 했었다는 것이고, 그는 출하부의 아줌마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었다.


일의 특성 상 출하부와 오븐실을 드나들면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출하부의 아줌마들이 오븐실에서 빵을

챙겨가지고 나올 때 정리를 제대로 못해놓거나 했다하면 스즈끼의 지랄 때굿 만신춤이 벌어져서

작두를 타는 수준이 되는 것이었다.


스즈끼는 그날 나때문에 또 작두를 탔다.

시나몬롤을 챙겨서 나오면서 내가 썼던 집기들을 닦을 건 닦고, 원래의 위치로 돌려 놔야 되는데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해놓은게 오븐실의 대빵, 스즈끼상의 눈에는 아주 못마땅한 마무리가 된거고

갑자기 스즈끼상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정리하는 걸 빤히 쳐다보고 있었으니, 할 수 있는 일도 버벅 거렸고, 한 두가지 순서가 틀리자마자

스즈끼는 소리를 질렀다.


"닥치고 이치모토 오라고 해"

말의 노크, 쓰미마셍이 빠진 훅 들어오는 날 것의 일본어를 처음 들은 게 스즈끼의 입을 통해서였다.


변명을 했다.

"저기요, 제가 일이 좀 서툴러서 그러는데 다시 말씀해주시면 원래대로 해놓을게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런 의미로 말을 했던 것 같다.


스즈끼는 역시 스즈끼였다.

"시끄러, 내 말 안들려. 닥치고 이치모토"

언제부터 이치모토의 성씨 앞에 닥치고가 붙었던가!

내가 아무리 싫어하던 이치모토였지만 그래도 우리 출하부의 수장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니가 아무리 빵집에서 빵을 잘만들어도 그렇지 나를 얼마나 오랫동안 알고 친했다고 싸가지없는

일본어는 어디서 배웠냐. 이 새끼야. 나도 이렇게 정중하게 니네 나라 말을 하는데 혀짧은 일본어를 모국어로

잘못 배운 스즈끼 앞에서 분을 참고 일단 이치모토를 데리고 다시 왔다.


"어디서 이런 일도 못하는 거를 여기로 보내서 민폐를 끼쳐. 앞으로는 제대로 못하는 거는 여기로 보내지마"

"교육 똑바로 시켜서 보내" 그랬었다.

머리 끄댕이를 잡고 스즈끼의 주댕이를 빵으로 비벼주고 싶은 깊은 증오가 치밀어 올랐지만 한마디도 못하고

뒷정리를 하는 이치모토를 뒤로 두고 나는 말했다.


"저기요, 제가 잘못한거지 이치모토상이 가르쳐주지 않은게 아니니까 이치모토상을 뭐라고 하심 안돼요

앞으로 제가 잘하면 되는데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세요.

그리고 저한테 말해도 되는데 이치모토상을 오라가라 이건 좀 아니잖아요. 이치모토도 바빠요


스즈끼는 뒷 목을 잡고 쓰러질것같은 각이었다.

오븐실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스즈끼를 쳐다봤고, 스즈끼 앞에서 말대답은 없다, 무시와 모멸만이

있을 뿐 이다라는 보로니아 30년 역사를 뒤집기 한판으로 제꼈다.


교토 아줌마들이 칸사이벤으로도 하지 않던 말대꾸를 한국 아줌마는 표준말로 해주고 이치모토를 두고

그냥 나와서 빵집에서 긴장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줌마들에게 상황보고를 했다.


다 듣고 난 오노상이 그랬다.

"이건 고상이 이긴거네요"


석달에 한 번 쯤 다니던 동네의 미용실에서 빵집에서 있었던 스즈끼와의 한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아줌마가 다 듣더니 

"스즈끼, 갸가 내 동창이여. 소학교때는 쭈글이였는데 많이 컸네 짜슥. 

앞으로 또 그러면 나한테 말혀"


한국만 세상이 좁은게 아니라 교토도 좁은 동네였다.


미용실 아줌마의 소학교 동창 스즈끼는 어렸을 때는 쭈글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빵집 아줌마들한테 널리 널리 퍼뜨리고 돌아왔다.


최초의 싸움 상대 수진이와 최초의 외국인 싸움 상대 스즈끼

어느 하늘 아래에서든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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