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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Oct 01. 2024

단테의 별 - 1권 2부 8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풋사랑인가? - (22)

문승협에게  다른 슬픔이 찾아왔다. 중학교입학식을 일주일 앞두고 김철종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최선경아버지가 학회참석차 서울다녀오다 교통사고로 위독하다고 했다.

최선경아버지는 서울을 간 김에 병원에 들러 최선경의 약을 챙겨 오려고 직접 차를 운전해 갔다. 학회를 마친 뒤 목포로 내려오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광주부근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문승협과 친구들이 부랴부랴 최선경집으로 달려갔다. 제갈민주가 최선경과 함께 있었다. 최선경이 문승협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다. 문승협은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최선경손을 괜찮을 거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최선경을 안심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울음을 멈추려고 애쓰는 최선경모습이 안쓰러웠다. 최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  하고 싶었으나   있는 것이 었다. 무능속상해하며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선경아 괜찮을 거야, 우리 기도하자.”

최선경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 눈을 감았다. 제갈민주와 김철종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진심을 닮아 기도드립니다. 우리에게서 시련은 가져가시고 평온을 주소서. 선경이 아빠가 무탈하게 우리 곁에 오실 수 있도록 당신의 무한한 능력을 보여주소서. 우리의 절박한 호소에 귀 기울여 응답해 주시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문승협은 짤막하게나마 애절하게 기도했으며, 기도가 이뤄지길 절실히 바랐다. 엄마아빠와 함께 살게 해 달라는 평소의 기도도 안 들어주는 하느님을 신뢰하진 않았지만, 이번 에는 자신의 이기심이 아닌 남을 위해 정성을 다한 기도이기에 반드시 들어달라고 마음속으로 재차 빌었다.

곧이어 김용남과 현기정, 차여선과 이정주도 왔다. 어린아이들로서 딱히 도움 될만한 일이 없었다. 그냥 친구와 함께 있어주는  전부였.

최선경엄마로부터 간단한 수술에 들어갔다는 전화가 와서 다소 안심되었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이 되어도 가타부타 소식이 없었다. 제갈민주만 최선경 옆에 남고 모두 돌아가기로 하였다.

친구들과 최선경집을 나오는데, 김용남이 최선경아버지 수술이 잘돼서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 없는 슬픔과 아픔은 상상이상이라며 눈물을 흘렸. 다른 아이들도 공감하며 눈물을 쏟았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도  늠름하고 강인하였던 김용남이 울며 하는 말이라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다음날은 가병수와 박진숙에 이어 다른 친구들도 왔다. 다들 한결같이 자기 일처럼 걱정했다. 많은 아이들이 다 함께 있을  없어 문승협과 제갈민주가 남기로 하고 돌아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김철종이 엄마가 싸준 김밥을 챙겨 왔다. 입맛이 없어  먹지 못하는 최선경에게 뭐라도  먹으라며 권했다. 최선경은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굴리기만   삼키지 못하였다.

저녁시간 무렵 생각지 못한 최선경엄마가 집에 와서 모두 놀랐다. 문승협과 김철종은 어떻게 됐는지 결과를 알진 못했지만, 수술이 잘 됐나 보다며 기쁜 마음으로 최선경집을 나왔다.

문승협과 김철종이 돌아가고, 최선경이 물었다.

“엄마, 아빠는? 아빠는 괜찮아?”

“응, 이제 괜찮아. 지금은 편안해졌어.”

“다행이다. 아빠 보고 싶어, 나 아빠한테 가 볼래.”

“내일 아침에 성콜롬방병원으로 오실 거야, 그때 엄마랑 같이 가서 보자.”

최선경엄마는 괜찮다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최선경은 긴장이 풀려  잠들었다.

잠든 딸을 지켜보던 최선경엄마가 제갈민주손을 이끌고 아래층으로 갔다. 한참  들이다 입을 열었다.

최선경아버지는 의식이 있고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어서 희망적이었다. 문제는 교통사고직후 심한 출혈로  시간이 지난 뒤에 발견된 데다, Rh-O혈액형이라 수혈할 혈액을 제때 구하지 사망하였.

제갈민주가 최선경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순간 넋이 빠졌다.

“흑흑흑, 우리 선경이 불쌍해서 으짜까잉.”

“쉿, 선경이 들을라.”

“그라믄, 내일 아침에 성콜롬방병원으로 오신다는 말은 뭔 말이다요?”

“그래, 선경이 아빠시신이 새벽에 광주병원에서 성콜롬방병원영안실로 옮겨질 거야.”

“오매오매, 이일을 으짜스까잉. 선경이도 아퍼서 저러고 있는디, 환장하겄네 참말로.”

최선경엄마는 무엇보다 아빠사망소식에 딸이 받을 충격과 건강이 걱정되었다.

“얘 민주야, 부탁이 하나 있다.”

“예, 뭐든 편하게 말씀하쑈.”

“선경이에게는 아빠죽음을 비밀로 했으면 한다.”

“저기 어무니,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까요?”

“응, 말해봐.”

“선경이가 어무니 마음을 이해는 하겄지만, 저라믄 아부지랑 마지막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겄어라우.”

최선경엄마는 일변 제갈민주말에 일리 있다고 생각. 고심 끝에 최선경에게 말하기로 마음먹었.

제갈민주가 눈물을 닦고 2층 최선경방으로 올라갔다. 아빠가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잠든 최선경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최선경엄마가 새벽같이 최선경과 제갈민주를 데리고 성코롬방병원에 도착하였. 장례식장으로 가기  병원대기실에서 조심스레 최선경에게 아빠죽음을 알렸다. 최선경이 아연실색하며 쓰러졌다.

즉시 응급실로 옮겼다. 의식이 돌아온 최선경이 문승협을 찾았다. 최선경엄마가 제갈민주에게 고개를 끄떡였다. 제갈민주는 여자가 전화하면 화내는 문승협할머니 때문에 김철종에게 연락하여 부탁.

문승협이 김철종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하였. ‘이런 것이 망치로 얻어맞는 기분이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구나하며 부리나케 성콜롬방병원으로 .

응급실이 아닌 병실로 갔다. 병실로 옮겨져 잠들어 누워있는 최선경 옆에 제갈민주가 있었다.

잠시 후 상복을 입은 최선경엄마가 들어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며 문승협을 병실 밖으로 데려갔다.

“승협아, 나 좀 도와줘야겠다. 대강 들어서 알겠지만, 내가 지금 몹시 혼란스럽고 경황이 없구나.”

“네 말씀하세요, 뭐든 다 할게요.”

“장례 끝날 때까지 선경이 곁을 좀 지켜다오, 이러다 딸까지 잃을까 두렵다.”

“네 그럴게요, 걱정 마시고 부디 힘내세요 어머니.”

“그래 고맙다, 부탁할게.”

문승협이 최선경엄마와 병실로 다시 들어갔다. 때마침 깨어난 최선경이 문승협을 부르며 울었다. 문승협이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으며 힘내자고 다독였다. 혹시 도움 될까 싶어 챙겨간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를 최선경에게 건넸다. 최선경이 조금 진정되자, 최선경엄마가 앞으로 있을 장례절차를 이야기했다.  조문객이  테니 상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하였다. 절대 건강에 무리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당부하고 영안실로 갔다.

문승협은 상복으로 갈아입는 최선경을 기다렸다가 제갈민주와 장례식장으로 데려갔다. 빈소제단이 영정사진과 국화꽃으로 꾸며져 있었다. 최선경이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오열했다. 문승협과 제갈민주는 옆에서 최선경을 붙잡고 함께 울었다. 최선경엄마가 딸의 통곡소리를 듣고 지인에게 부축받으며 왔다. 자지러지다시피 한 최선경을 달랬다. 진정해서 아빠 가는 길을 배웅하러 오신 조문객을 맞자고 하였다. 최선경이 그제야 영정사진을 다시 올려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문객이 늘어났다. 장례식장 안과 복도에는 근조화환이 가득 찼다. 뜻밖의 소식에 놀라 달려온 최선경의 친구들과 친구엄마들이 조문하며  울음바다가 되었다. 장례식장이 숙연해졌다.

조문을 마친 최선경의 친구들과 친구엄마들이 팔을 걷었다. 김용남엄마를 위시해 박진숙엄마까지 최선경의 친구엄마들조문객 상차림과 대접을 돕고, 최선경의 친구들도 여기저기 심부름하며 도왔다.

저녁 무렵 서울에 사는 최선경의 할아버지와 삼촌 두 명에 이어 고모가 도착하였다. 친척들과 부둥켜 울던 최선경이 복받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혼절했다. 문승협과 제갈민주가 최선경을 빈소 옆에 마련된 유가족대기실에 뉘었다. 최선경엄마도 지친 기색으로 따라 들어왔다. 최선경의 친척들이 대신 빈소를 지켰고, 조문객을 맞는데 숨 돌릴 틈이 생겨 다행이었다.

조문객이 뜸한 늦은 시간, 문승협은 최선경의 친척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최선경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고 별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선경아버지가 장남임에도 전혀 연고 없는 목포에 온 이유가 있었다. 최선경건강 때문에 매연에 찌든 서울보다 공기 맑은 곳을 찾아서였다. 또한 최선경에게 외조부모와 외삼촌에 두 이모가 있고, 모두 미국에 살아서 조문을 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문상객들이 장례식장에 남아있었다. 상을 당한 가족이 외롭지 않게 화투를 치거나, 술상을 앞에 두고 담소 나누며 자리를 지켰다. 한편에는 문상객을 맞이하고 심부름하며 도왔던 사람들이 누워 자거나 쉬었다.

최선경모녀도 충격과 눈물에 감정이 소진되어 지쳤다. 하루 종일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힘들었기에 유가족대기실에서 곤히 잠들었다. 제갈민주가 유가족대기실에서 살그머니 나오더니, 빈소 벽에 기대어 우두커니 앉아 있는 문승협 옆에 앉았다.

“피곤하지야.”

“괜찮아, 견딜만해. 선경이는 잘 자고 있니?”

“꿈에서도 우는 갑드라. 가끔썩 떠는 심호흡을 하드만, 인자는 푹 잠든 거 같어.”

“너도 피곤할 텐데, 눈 좀 붙이지 그래.”

“나도 괜찬해, 이런 일이 생전 첨이라 긴장했는디, 인자 정신이 좀 든다야.”

“나도 정신없더라.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잉, 저그 봐라. 평시에는 개구져도, 오늘 본께는 널 부러져 자도 이쁘다야.”

“그래, 좋은 얘들이야. 용남이랑 정주는 집에 갔나?”

“잉, 여선이랑은 오늘 가고, 내일 아침에 일찍 온다드라. 내일은 기정이랑 병수가 가고, 즈그들끼리 교대하믄서 알아서 한데.”

“철종이랑 진숙이도, 오늘 고생 많았는데.”

“즈그 둘은 끝날 때까정 여기 계속 있겄다드라, 친구여도 속정이 다 다른 갑써.”

“사람이 다른데, 똑같아도 이상한 거겠지.”

“선경이가 즈그 아부지를 엄청시리 사랑했는 갑써, 그렇게 죽을 똥 까무라치니 말이어.”

“이별이라는 말 자체가 슬픈데, 가장 사랑해 준 아빠와 이별이니, 얼마나 가슴 아플까.”

“나는 으짜까? 울아부지 죽으믄, 나도 선경이처럼 그라까? 아니믄, 연기라도 해야 쓰까?”

누군가 유가족대기실에서 나와 대화를 멈췄다. 문승협은 제갈민주와 소곤소곤 이야기했음에도, 자는데 방해 싶어 미안하였다. 최선경의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네가 승협이구나.”

“네, 경황이 없어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상갓집인데 뭐든 이해 못 하겠니, 아비를 두고 떠난 망자가 이해 안 될 뿐이지.”

“아들 먼저 보낸 아버지 마음을 몰라서, 뭐라 위로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분신을 잃은 슬픔인가요?”

“그래, 비슷하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그런 건 미리 알 필요 없단다.”

“네.”

“선경이한테 이야기 들어서 그런지, 낯설지 않구나. 선경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제 친구인데, 마땅한 일입니다.”

“허허, 생각보다 더 어른스럽구나. 선경이를 잘 부탁한다.”

“노력하겠습니다. 저 죄송합니다만,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돼요?”

“응? 왜, 무슨 일 하는지 궁금해?”

“네, 할아버지 오시니까, 병원에서 나는 알코올 냄새가 나서요.”

“그래? 아픈 사람을 고치기도 하고, 의사가 되려는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

“그렇죠, 의사? 의학박사 교수님, 맞죠.”

“응, 그래.”

“그런데, 왜 선경이 아픈걸 안 고쳐주세요?”

“…….”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요.”

“그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선경이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마음이 아파요, 선경이가 아파서요.”

“쉽게 말하면, 안 고치는 게 아니고, 지금은 못 고치는 거란다. 어쩌면 몇 년 뒤에는 쉽게 고칠 수도 있어, 그래서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고.”

“네, 알겠습니다,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 선경이 할머니도 선경이랑 같은 병으로 앓다가, 몇 해 전에 하늘나라로 갔단다. 선경이와 승협이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력 하마, 그건 내가 약속하지.”

“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 아니다, 내가 별 얘길 다하는구나.”

그때 또 유가족대기실 문이 열리고, 최선경의 고모가 나왔다.

“네가 승협이라며? 선경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 이렇게 도와줘서 고맙다.”

“아 아닙니다.”

“선경이가 방학 때나 명절 때 만나면, 어찌나 네 이야기를 하던지, 내가 연애상담해 주느라 고생했다. 상갓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좋으련만, 여기서 보는구나.”

“…….”

“지는 제갈민주인디라, 재잘이라고도 불러라우, 선경이가 암말 안 합디어?”

“그 글쎄, 들어 본 거 같기도 하고.”

“저가시나 나랑 젤 친하다믄서, 너무 하그만잉.”

나누는 대화가 우울해지자, 제갈민주가 끼어들어 투정 부리듯 대화를 환기시켰다.

문승협이 최선경의 할아버지와 고모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깨달았다. 최선경은 문승협이야기를 주변에 많이 한 반면, 자신은 한 번도 최선경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장례 이틀째는 조문객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다. 최선경엄마는 조문객맞이로 지쳤지만 심리적으로는  단단해져 갔다. 최선경도 지극한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슬픔에 빠져있기보다는 점점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최선경모녀는    무너졌다. 장례마지막  입관하면서였다. 마를 법도  눈물이 남편과 아빠를 보내야 하는 작별순간에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화장장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화장을 하냐는 언쟁이 잠시 있었지만, 세상 어디든 모녀 곁에서 공기처럼 지켜주겠다는 고인의 마지막유언을 따르기로 했다.

최선경아빠유골을 흩날리려고 유달산에 올라갔을 때는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최선경이 시종일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동행한 문승협을 붙들고 건강한 모습으로 꼭 여기에 다시 올 거라며 눈물을 흘렸다. 문승협은 꼭 그러자며 용기를 북돋웠다.

유달산을 내려가는 길에, 최선경이 문승협에게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를 돌려주었다.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다며 고마워하였다. 곧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최선경은 체력 소진과 건강악화로 다음날 다시 입원했다. 문승협은 연락하겠다는 최선경말만 믿고 기다렸다.

중학교입학식을 다녀온 후에도 연락이 없었다. 어젯밤 꿈에서  최선경의 슬픈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고하도 갔을  챙겨 왔던 최선경의 손수건과 최선경이  소설책 ‘소나기바라보며, 불길한 예감 속에  기다림을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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