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가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지옥에서 온 악마가 판사의 몸에 들어가 현실 지옥에서 죄인들을 처단한다는 스토리가 흥미로워 관심이 갔다가 잔인한 현장이 너무 많이 나와서 결국 보지 않게 됐다. 특히 판사의 몸을 빌린 악마가 죄인을 폭력으로 다시 벌하는 순간이, 시뻘건 피가 화면 가득 뿌려지는 순간이, 칼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사이다가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서둘러 리모컨 버튼을 꺼버리는 순간이 되었다.
어쩌면 저렇게 세트장을 실제 현장처럼 사실감 있게 구현해 놓았는지. 멀쩡한 사람을 감쪽같이 실제 시신처럼 분장시켜 놓았는지. 모든 게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등골이 서늘하다. 드라마 미술팀은 세트를 꾸밀 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현장의 사진을 참고했을 듯 하다. 디테일하게 구현하기 위해 현장사진을 얼마나 많이 들여다봤을까. 꿈자리가 사납지는 않았을까. 얼굴도 모르는 스텝들 걱정이 들었다.
오랜 세월 살인사건 분석기사를 썼다. 몇 줄의 기사가 아니라 현장분석과 수사과정을 재구성한, 에이포 10장에 이르는 심층분석기사로, 취재는 담당 형사와 과학수사반 인터뷰로 이루어지고, 필요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협조를 받기도 했다. 각 기관에서 준 여러 자료들은 사건 당 사과 한 상자 분량, 그 많은 자료들 중 수사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핵심 정보들을 취합하는 것도 담당기자인 내 몫이었다.
수사자료에는 수백 장에 이르는 사건현장 사진도 있었다.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수사기관에만 들어가는 자료 속 기사이기 때문에 현장의 모든 사진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현장 외부부터 시작해서, 내부 구석구석, 시신의 전체적인 모습과 신체 이곳저곳이 찍힌 사진들이다. 이 중 중요사진 20여 장이 기사와 같이 인쇄됐다.
기사 속에 사진이 들어가지만 텍스트로 현장의 모습을 서술해야 했기에 현장사진을 꼼꼼히 봐야 했다. 일하는 동안 직장 동료와 수사관으로부터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현장사진 보는 거 괜찮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일이니까요."라고 무심히 대답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자연사한 시신의 사진도 들여다보기 힘든 일인데, 살인사건이다 보니 모두 참혹한 모습으로 숨을 거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시신을 살펴볼 때 사후 경과 시간을 추정하기 위해 눈꺼풀을 뒤집어 동공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두는데, 이 사진만큼은 끝끝내 보기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사진을 뒤적이다가 의도치 않게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여기저기 칼에 깊숙이 찔려 상처가 크게 벌어져 있거나 도끼에 맞아 머리뼈가 으스러져 있거나, 부패가 진행되어 얼굴이 검푸르게 썩어가고 있거나, 구더기가 잔뜩 끼어 형태를 잃어가는 모습들은 명료한 눈으로 보기 힘든 장면들이었다. 매번 다음에는 더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기사를 쓰고는 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삶을 살았던 누군가의 가장 험한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런 모습들이 실제와 매우 유사하다는 걸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상이 아니라 내가 우리네 일상의 연장선이라서 더 섬뜩하다는 것 정도일까.
- 드라마 속 한 장면
어느 날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지내다가, 어느 날은 예고 없이 오는 손님처럼 피로 얼룩진 풍경을 마주해야 했다. 화들짝 놀라며 잠이 깼다가 다시 눈을 감으면 피에 젖은 시트가, 눈을 치켜뜬 시신이, 시뻘건 칼자국이 감은 눈 위로 신기루처럼 어른거렸다. 그런 날은 잠을 포기하는 것이 나았다. 창문 밖의 어둠이 질주하는 헤드라이트 빛에 실려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을 물끄러미 보던 밤들. 나의 밤이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어 유령처럼 집 안을 서성이고는 했다.
괜찮음과 안 괜찮음을 반복하면서 취재한 사건이 약 100여 건 정도, 취재가 아니어도 더 많은 살인사건 현장 자료들을 공부 삼아(?) 봐야 했으니, 아마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중요 사건현장은 거의 다 봤을 것 같다. 한 죽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나면, 다른 죽음이 내 앞에 도달했다. 끝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였지만 각 사건마다 관통하는 어둠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인간 그 자체였다.
그들의 '마음'이, 물리도록 보아야 하는 현장사진보다 더 나를 아연하게 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 분노에 대해, 자신조차 잃어버리게 만드는 경멸에 대해, 극단의 욕망과 기어코 지옥의 화염 속에 몸을 던지고야 마는 희번덕한 광기에 대해. 한 생이 어둠의 세계에서 방황하고 타락하는 과정을 곱씹어보고는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아야 했던 한 생명.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들이 했을 마지막 생각. 숨이 넘어가는 순간, 그들의 눈동자에 어렸을 그 무엇. 밤과 아침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선과 악은 극단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함께 엉겨 붙어있는 것 같았다. 이런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관계란 무엇인가.
비극의 총집합 속에서 그런 질문에 골몰하다 보면 아주 기본적인 명제에 도달하고는 했다. 무사히 지나가는 이 보통의 하루가 가장 소중하다고. 모두 지나간 나의 노력과 성실이 쌓여 가능하게 된 오늘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이 숨결이, 평안이, 스치는 바람이... 삶이 가장 유효한 것은 살아있을 때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서둘러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고 내 손에 잡히는, 산 자들을 찾고는 했다. 그리고 소망했다. 오늘 하루를 그들과 꼭 안고 가고 싶다고. 찬란하지 않아도 소소하게 빛나고, 조용히 계속 흐르고 싶다고.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
커버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