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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박 Jan 09. 2021

누룩뿌리곰팡이(Rhizopus arrhizus)

곰팡이 이야기 30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출발선에 섰다. 5년만에 맞이하는 광명이다. 다시 잘 달릴 수 있을까? 이젠 예전과는 달리 혼자서만 달려서는 안된다. 손잡고 함께 가야한다.


곰팡이가 국민께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한국균학회는 한국의 대표곰팡이 100종을 정하고 우리말 이름을 지었다. 이는 논문으로 발표되었으나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균학회는 100종의 대표곰팡이에 대한 소개 책자를 만들고 있는데 아직도 좀 기다려야 한다.   

  

책자로 나오드라도 책자가 주는 무게감으로 아무래도 좀 딱딱할 것 같기도 하고, SNS를 통하여 먼저 한발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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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뿌리곰팡이


누룩에 피는 대표적인 검은 곰팡이다. 누룩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메주에도 피고 심지어는 저장된 고구마, 귤, 사과, 복숭아, 땅콩, 보리, 밀에도 핀다.     

누룩뿌리곰팡이. 전통누룩의 안쪽에 이 곰팡이가 거득히 자라고 있다.


이 곰팡이는 우선 다른 어떤 곰팡이보다 흔하고 잘 자란다(조건이 맞으면 시간당 1.6 mm, 하루에 3.8cm까지 자란다). 흔하다는 말은 다른 생명체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성공한 가문이라는 뜻이다. 성공한 가문은 우선 애를 많이 낳아야 하고 어디 가든 잘 살아 남아야 한다.    

  

이 곰팡이는 하나의 포자낭(주머니)에 수만개의 포자를 만들어 우선 공기 중으로 내 지르고 본다. 이 곰팡이는 5-45도씨의 매우 넓은 온도 범위와 수분활성도 0.88의 매우 건조한 상태에서도 잘자란다.    

누룩뿌리곰팡이 KACC M2657 포자주머니


잘 자란다는 말은 사람이나 곰팡이나 잘 먹는다는 이야기다. 잘 먹을려면 소화력이 왕성해야 한다. 이 곰팡이는 지구상에 어떤 곰팡이 못지않게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효소, 즉 당화효소, 아밀라아제를 많이 생성한다. 당화효소를 많이 만드니 지구상에 웬만한 식물체는 녹일 수가 있고 먹이가 된다.     

 

이 곰팡이의 이런 특성들이 술을 만드는 누룩에는 딱이다. 누룩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쌀에 있는 탄수화물을 당분으로 바꾸어줄 효소 덩어리이다. 그런데 이 곰팡이가 밀에서 잘 자라지, 게다가 자라면서는 당화효소를 잔뜩 만들지 술을 만드는 누룩에는 안성맞춤인 곰팡이다.       

   

1) Rhizopus arrhizus A. Fisch (=R. oryzae)     

이 곰팡이는 1895년에 네덜란드인 식물학자 Went 등에 의하여 발견되어 Rhizopus oyrzae Went & Prinsen Geerlings로 명명되었다. 이 후에도 열대와 온대의 많은 국가의 토양에서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템페(tempeh)와 라기(ragi), 인도의 마치아(marchia), 중국의 수프(sufu)를 포함한 동양의 발효식품에서 분리되는 것으로 자주 보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술)당에서 막걸리 및 백세주 제조에 이 곰팡이를 사용하면서 R. oryzae라는 이름이 흔히 사용되었다.     


분자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유전자 검사가 곰팡이 분류에도 도입되었다.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Rhizopus oryzae는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Rhizopus arrhizus와 같다는 것이다. 20세기까지 통상적으로 R. oryzae는 발효식품에도 쓰이는 착한 곰팡이로 R. arrhizus는 때로는 사람을 공격하는 사나운 곰팡이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민증을 까보니 R. arrhizus가 1892년생이고 R. oryzae는 1895년생이다. 곰팡이 명명 규칙에서는 먼저 출생한 종의 이름을 쓰도록 되어 있다.     


이러면 싸움이 된다. R. oryzae를 주장하는 쪽은 원칙이고 뭐고 세상사람들이 oryzae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어디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arrhizus라는 놈이 형이라고 나와가지고는 ......,     


R. arrhizus를 주장하는 쪽은 비록 oryzae가 효자고 사람들한테 많이 알려졌드라도 이 집안에는 엄연히 arrhizus라는 장자가 있는데 원칙대로 장자에게 이름을 물려줘야지......,     


이 경우에 원칙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학자들은 원칙을 좋아한다. 중국의 Zheng 등(2007)이 Rhizopus 단행본 도감을 만들었는데 R. arrhizus를 사용하였고 네덜란드의 곰팡이 대가 de Hoog 그룹이 이를 뒷받침하는 논문을 내면서(Dolatabadi, 2015) 곰팡이를 좀 한다는 사람은 R. arrhizus를 쓰게 되었다. 결국 영국의 대표적인 곰팡이 DB인 Index Fungorum과 세계균학회가 운영하는 곰팡이 이름 DB인 Mycobank가 R. arrhizus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한국균학회는 이 곰팡이가 우리나라에 끼치는 경제적 중요성으로 고려하여 대표곰팡이 100종으로 선발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식품학자들과 식물병리학자들이 R. oryzae를 사용하기에 oryzae로 작업을 시작하였지만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칙이 arrhizus고 세계적인 동향이 arrhizus인지라 oryzae만을 고집할 수 없었다. 

누룩뿌리곰팡이 KACC M2644, 메주에서 분리된 곰팡이의 배양 사진

           

2. 누룩뿌리곰팡이     

Rhizopus arrhizus A. Fisch로 학명은 결정되었고 이제 우리말 이름을 지어야 한다. 우리말 곰팡이 이름은 학명의 원래 뜻을 잘 반영하되 국민들이 부르기 쉽고 잘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이름의 주인 격인 속명 Rhizpus부터 보자. 이를 일본에서는 クモノスカビ屬(거미줄곰팡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根霉屬라고 하여 뿌리곰팡이라고 한다. Rhizopus는 Rhiza(根, root)와 pous(足, foot)의 합성어로서 뿌리 발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곰팡이를 페트리접시에 키워보면 Rhizoid(헛뿌리)라는 검고 두꺼운 조직이 두껑에 강하게 활착하여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식물이 뿌리를 내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 곰팡이의 균사가 꽤 굵은 편이라서 이 곰팡이가 자라면 실이 보이고 이것이 거미줄을 연상시킨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거미줄은 폐가를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개념이 강하다. 

무엇보다도 학명의 원래의미가 뿌리곰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학회는 이 곰팡이의 속명으로 뿌리곰팡이로 선택하였고 이는 이미 2011년 논의에서 결정되었다.     

Rhizopus stolonifer KACC M2660 헛뿌리. 잔뿌리가 많다.

 

이제 속명은 됐고 종명이다. arrhizus = ar (non) + rhizus (root)이다. 헐! 뿌리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종명이 앞에 와서 속명을 수식해야 하니 뿌리없는뿌리곰팡이라는 이름이 된다. 좀 거시기하다.     

 

Rhizopus의 표준종은 R. stolonifer인데 Rhizois(헛뿌리)가 풍성하다. 하지만 R. oryzae는 여기에 비하여 헛뿌리가 적고 단순하다. 이 때문에 뿌리가 없는 이라는 뜻의 arrhizus가 종명이 된 것 같은데, 이것을 우리말 이름에 그대로 쓰기는 그렇고 조금 순화하여 뿌리형태가 단순하다는 뜻으로 단순뿌리곰팡이로 1차 결정하였다. 

누룩뿌리곰팡이(R. arrhizus)  KACC M2644. 위의 곰팡이에 비하여 잔뿌리가 없고 뿌리가 단순하다.

     

균학회에서(정확하게는 한국균학회 균학용어심의위원회) 대표 곰팡이 100종에 대한 우리말이름을 지은 후에 논문 게재를 앞두고 외부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표 100종에는 버섯도 있고 식물병원균도 있어서 한국버섯학회, 한국식물병리학회의 자문을 구했다. 


발효에 관련된 곰팡이 자문이 부족한 것 같아서 옆 건물에 근무하는 발효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했는데,  정(술)태, 강(술)윤 박사는 단순뿌리곰팡이가 너무 밋밋하지 않냐며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정(술)태 박사는 이 곰팡이가 우리나라 누룩에서 주요 곰팡이니 이를 종명으로 활용하여 단순 대신에 누룩을 쓰자는 것이다. 


단순뿌리곰팡이를 누룩뿌리곰팡이로!   

  

그래 이거다. 공부밖에 모르는 범생이는 학명에 갇혀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매우 제한적인데 한량들은 넓은 세상을 보니 창의적인 이름이 나온다. 

실전경험에서 역시 좋은 이름이 나오는구나!

 ‘누룩뿌리곰팡이’는 용어심의위원회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되었다.


누룩뿌리곰팡이! 

불러볼수록 마음에 든다.


3. 누룩뿌리곰팡이 Vs 흰누룩곰팡이     


누룩은 두가지로 크게 나뉜다. 흩임누룩과 덩이누룩, 한자로는 입국과 병국. 전자는 곡물 낱알에 원하는 곰팡이 씨앗을 키운 것이고 후자는 곡물을 뭉쳐서 모양을 만들고 자연상태의 곰팡이가 와서 자란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국에 주로 쓰는 곰팡이가 흰누룩곰팡이(백국균, Aspergillus luchuensis)이다. 노란누룩곰팡이(황국균, Aspergillus oryzae)도 이용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청하나 백화수복 같은 청주에 한정되고 막걸리와 전통소주 제조에는 흔히 흰누룩곰팡이가 사용된다.      

입국, 흰누룩곰팡이 Aspergillus luchuensis (사진은 네이버지식백과 인용)


여기에 반하여 전통누룩인 덩이누룩은 곰팡이를 접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의 곰팡이가 성형한 누룩에 와서 스스로 자란다. 이 때에 앞서 설명한 누룩뿌리곰팡이는 저온, 고온, 건조를 가리지 않는데다가 자라는 속도도 타 곰팡이의 추종을 불허하여 쉽게 누룩에 우점한다. 

물론 모든 덩이누룩에 누룩뿌리곰팡이가 우점한다는 것은 아니고 재료에 따라 그리고 제조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전통누룩에 누룩뿌리곰팡이가 흔하고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직접 관찰해 본 누룩 중에서 누룩뿌리곰팡이가 우점한 대표 누룩이 송(술)섭님 누룩이다. 송(술)섭님 누룩의 발효 조건은 잘 모르겠으나 누룩만을 보았을 때에 밀을 거칠게 빻고, 조금 약하게(트실트실하게) 성형한 것이 이 곰팡이가 내부까지도 잘 자란 원인으로 생각된다. 곰팡이는 숨을 쉬어야 자라는데 입자가 너무 가늘고 강하게 성형하면 내부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이 곰팡이가 잘 못자랄 것이다.  

송(술)섭 막걸리 제조용 누록 내부.  누룩뿌리곰팡이가 내부까지 자라고 있다.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는 제조가 까다로운 덩이누룩보다는 흩입누룩(입국)을 선호한다. 따라서 우리가 슈퍼에서 흔히 사먹는 막걸리는 대부분 입국으로 만든다고 보면 되고, 그렇다면 흰누룩곰팡이로 만든 술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기업에서 만든 것 중에서도 누룩뿌리곰팡이로 만든 것이 있는데 그게 국(술)당 막걸리다.    

 

몇 년전에 국(술)당 막걸리 곰팡이를 관찰한 적이 있는데 유전자검사까지 하여 정밀하게 동정한 결과 누룩뿌리곰팡이였다(더 자세한 동정 결과가 있는데 기업과의 관계는 늘 조심스러워서 물어보고 업그레이드하겠다).  

    

이 기업에서 사용하는 누룩뿌리곰팡이 R4는 당화력만 좋은 것이 아니라 단백질분해효소까지 많이 분비하여 생쌀 발효도 가능하다. 즉 보통 술 만들때에 쌀을 쪄서 고두밥으로 만들고 여기에 누룩을 넣어 당화를 시키는데 R4균주는 찌지 않은 생쌀도 발효시킬 수가 있어 술 제조의 한 과정을 생략하여 경제적이다(R4의 비호화 전분 발효에 대한 자세한 원리는 들을 때에는 알겠는데 지나고 나면 까먹고 하여 매번 공부할 수도 없고 이젠 포기한다). 

    

이런 점을 포함하여 이 기업은 누룩뿌리곰팡이로 술을 만든다는 데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R4 균주를 논문 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때는 KSD-815라는 균주명을 쓰고 있다. KSD는 알꺼고 815는 왜일까? 짐작이 가시쥬! 대한독립만세일이잖아요.  

     

2년전인가요? 일본과의 무역마찰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에 낮술로 백화(술)복을 드신 여당대표가 곤궁에 빠진 적이 있지요. 백화(술)복은 노란누룩곰팡이(Aspergillus oryzae)로 만들고 이 곰팡이의 유래가 일본이기 때문에 공격을 받은 점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확대 해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흰누룩곰팡이(A. luchuensis)도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지만 근원은 오키나와의 아와모리술이고 오키나와는 19세기까지 독립국이고 일본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오키나와의 아와모리술도 원래 유래는 태국술이다. 

    

어느나라 곰팡이냐라는 논리보다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전술한 바대로 우리나라 막걸리 제조에는 흰누룩곰팡이가 많이 사용되는데 여기에 누룩뿌리곰팡이도 함께 사용되어 다양한 술맛에 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니꺼내꺼가 아니라 다양한 곰팡이를 사용하여 국민들이 골라먹는 재미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4. 전북혁신도시에서 누룩뿌리곰팡이로 만든 막걸리를 마실려면!     


전북혁신도시에서 막걸리집이 잘 버티지를 못한다. 초장기에 누룩꽃피는날이 들어왔었는데 얼마 못버틴 것 같고, 이 후에 쎄시봉이라는 막걸리 집이 있었는데 이것도 몇 번 못가봤는데 어느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런 막걸리집들이 주로 전주막걸리, 남원막걸리 등을 파는데 흰누룩곰팡이 막걸리다. 그나마 마트에서는 대부분 흰누룩곰팡이 막걸리지만 누룩뿌리곰팡이 막걸리가 보이기는 한다.

우리동네 마트 술판매대, 여러가지 막걸리 중에서 누룩뿌리곰팡이로 만든 술이 딱 한종류가 있다.

     

전북혁신도시 근처에서 누룩뿌리곰팡이 막걸리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집이 하나 있다. 서곡에 고(술)려막걸리라고 송(술)섭 막걸리만을 판매한다. 송(술)섭막걸리 2병에 삼합을 포함한 푸짐한 안주를 곁들여 2만원인데 맛있고 경제적이다. 게다가 주인아저씨 기분만 잘 맞춰주면 맛있는 안주가 끊임없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처음은 싱거운 거 같으나 마실수록 입에 붙고 뒷날 전혀 뒷끝이 없는 송(술)섭 막걸리가 매력적이다. 

고구려막걸리. 송명섭 막걸리와 푸짐하고 맛깔난 안주가 인상적이다(사진은  Caocao96 님의 네이버블로그에서 인용)

    

오늘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전북혁신도시에서 누룩뿌리곰팡이 막걸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맺고자 한다.    

 

1) 업무가 끝나고 6시 반쯤에 농진청 인접 안전로 육교 위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난다.

 2) 농생명로를 따라 두현마을을 지나 황방산에 오른다. 혁신도시 야경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한컷 남길 만하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더라도 참는다.      

3) 대나무 숲길을 지나 서곡광장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8시가 조금 넘어 적당히 목이 마르고 배가 출출할 즈음에 서곡의 고(술)려 막거리 집에 도착한다. 

4) 송(술)섭 막걸리를 우선 주문하고 다른 안주가 나오기 전에 막걸리 한잔을 원샷한다.   

  

2020. 01. 09. 곰박   

  

참고문헌

Dolatabasi S. 2015. Mucorales between food and infections. Amsterdam. University of Amsterdam.

Zheng RZ. et al. 2007. A monograph of Rhizopus. Sydowia 59: 27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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