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아이들과 차를 타고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5살 하늘이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아빠!"를 외친다. 굉장한 걸 발견한 것 같다.
"아빠! 불이 길~어지고 있어!"
"응?"
그 말을 듣고 하늘이의 손끝을 따라 밖을 보니, 천장에 달린 터널 안 조명이 차가 달릴 때마다 길어진다.
'아이의 시선에서는 이걸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불이 길어진다는 표현이 재밌어서 혼자 씨익 웃어본다. 그리고 하늘이의 이 문장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되뇐다. "터널에서는 진짜 불이 길~어지네?"라는 뒤늦은 리액션을 취해보지만, 이미 우린 터널 밖으로 빠져나왔다.
저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차들 뒤에 천천히 따라 멈춘다. 옆차선에 서 있던 버스가 먼저 앞으로 출발한다. 매번 속으면서 오늘도 내 차가 뒤로 밀리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꽈악' 밟는다.
제 자리에 잘 붙어있는 터널 안의 불빛이 내가 달림으로써 길어져 보이듯, 나 혼자 정신없이 달리느라 가만있는 상대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반대로 옆에 서 있던 버스가 출발하면 내가 뒤로 가는 것처럼 느끼듯, 타인만 보고 내 상태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는데 빛이가 포크를 눈앞에 갖다 대며 말한다.
"아빠, 포크로 이렇게 해서 보잖아? 그럼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빛이가 했던 말이 계속 맴돈다. 내 시선으로 누군가를 감옥에 가둬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나 아이들을 바라볼 땐, 잘 멈추어 서서, 내 상태를 잘 살피고, 눈앞의 포크를 치워야겠다. 늘 그렇게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