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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Apr 23. 2024

영산강 자전거 순례길 D-1

광주와 담양에서 순례 준비 완료


기차역 승차장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갔다. 자전거를 접고 가방을 땅에 세워 놓았다. 자전거만 한 가방 두 개의 부피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와 서자 가방 둘을 먼저 기차에 올려놓고 자전거를 들었다. 13~4kg쯤은 성인 남자가 한 손으로 거뜬히 들 수 있는 무게지만, 내게는 두 손으로 낑낑대며 들어 올려야 하는 무게다. 하물며 두세 칸의 계단을 올라가야 함에야.


예약한 좌석 뒤 장애인석 앞에 화물칸이 있었다. 자전거를 화물칸에 넣고 가방 하나를 선반에 올리고 나머지 하나는 좌석 테이블 위에 놓았다. 역시 감당하기엔 부피와 무게가 초과였다. 비우지 못하고 챙기는 습성으로 인한 또 한 번의 실수였다.      


새 리어패니어와 뷔나


오후 5시가 넘어 광주역에 내렸다.      

지난 3월 16일 후쿠시마 핵사고 13주기 에너지전환대회 참가 차 서울에서 만났을 때 내가 말했다.      


“이번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에는 자전거를 타고 담양에서부터 목포 영산강하구둑까지 가서 진도로 갈 계획이에요.”

“일곱째별이 하는데 내가 못 할 건 없지.”     


니키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모의는 간단하게 끝났다. 나는 그전부터 영산강의 발원지인 담양댐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 궁리했었다. 자동차를 가지고 가면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 수년간 그렇게 순례했지만, 지난해 군산~영광 자전거 순례와 올해 초 7번 국도 완주 도보 순례 때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만 하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지 해 봤다. 그러려면 광주나 백양사역에서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 비례해 당연히 요금이 엄청나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라고 니키께 제안을 해보았다. 나는 종주가 목표인데 니키께서 종주가 목표가 아니라면, 담양댐까지 차로 나와 자전거를 실어다 주신 후 승촌보로 가셔서 자동차를 두고 거기서 출발해 중간에서 만나면 어떠시겠냐고. 실로 염치없는 제안이었지만, 니키는 그건 물론이고 숙소까지 제공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루 일찍 내려오라고 덧붙이셨다.      


그렇게 해서 토요일부터 움직인 나는 오전에 누룽지 한 그릇 끓여 먹은 게 전부라 오후 다섯 시가 넘자 배가 고팠다. 다음날 순례를 생각해서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했다. 니키가 안내해 주신 곳은 오리탕 집. 반 마리로 둘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의 오리탕은 들깻가루까지 더해 영양이 가득했다.      


저녁 식사 후 광주 최초의 성당인 북동성당에서 저녁 7시 30분 특전 미사를 드렸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기억하는 성당이었다.

고마웠다.


광주 북동성당


미사 후 담양으로 향했다.

깜깜한 밤 9시. 요양원 안 수도원 앞에 나를 내려주시고 니키는 훌쩍 가셨다.

방을 안내해 주신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사실 제가 원장이 아니고 진짜 원장님은 따로 계세요. 그분은 말도 못 하시고 움직이지도 못하세요.”

“아~ 네, 연세 드신 외국인이 계시다고 들었어요.”

“외국인? 그렇죠. 외국인이죠.”     


그분께 인사하려고 둥그런 복도를 지나 끝에 있는 성전으로 갔다. 백열등이 켜있고 나무 십자가에 한 남자가 달려있었다.      


“저분이세요.”

“아…….”     


예수님을 진짜 원장으로 모시는 수도원 원장님. 그러한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국민이 주인이라는 나라에서 투표 때만 굽실대는 정치인들은 당선되면 국민을 위한 정치는커녕 저희끼리 싸우다 임기를 보내고, 다시 선거철이 되면 또 표를 달라고 아우성친다. 그들이 입에 발린 말처럼 국민의 손과 발이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업주가 노동자를 동역자로 생각하고 착취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전에서 102호까지 오는 십여 미터 사이에 여러 생각이 오고 갔다.     


푸른빛 벽의 102호에는 입구의 옷장과 화장실 겸 욕실과 작은 책상과 싱글 침대가 전부였다. 욕실의 물은 한참 틀어야 온수가 나왔다. 간단히 샤워하고 준비해 간 휴대용 베개와 면 라이너 시트를 펼쳤다. 방은 빌려주셨으되 침구 세탁은 하지 마시라는 나름의 배려였다. 난방은 되지 않았고 전기장판도 작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괜찮았다. 방 온도 16~18도, 거실 온도 13도에서 지난겨울을 보내면서 단련한 내가 아닌가.     


다음 날 아침 7시에 니키와 만나기로 했으니 6시에는 일어나 준비해야 했고, 그러려면 일찍 잠들어야 했다. 누워서 손이 닿는 두 개의 스위치 위치로 이 수도원이 설계부터 얼마나 사려 깊은지 알 수 있었다.

저 건너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은 벌써 잠이 드셨겠지. 이 수도원에는 몇 명이 어느 방에서 자고 있을까?  바깥에서는 고라니 같은 야생 동물 소리가 잠들 때까지 한참 동안 들렸다. 전에 이곳에서 자고 간 사람도 고라니 소리를 들었을까? 그 사람은 그날 밤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의 나처럼 낯설고 조심스러웠을까?

담양 수도원에서의 밤은 짧은 듯 길었다. 밤 11시가 넘어 잠들기 전에 몇 글자를 적었다.           


담양 수도원의 환대와 섬김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만난 모든 선한 이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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