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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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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Ap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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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좋은 글~


엊그제 학생들이 한 달 조금 넘게 매일 쓴 공책을 걷어왔습니다.


봄비 속 산책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공책을 한 권 한 권 펼쳐 읽었습니다.


일곱 권째 초록색 공책을 펼쳐 들었을 때, 숨이 점점 막혀오는 듯했습니다.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봄날 오전과 오후가 아스라이 스치는 시간에 새근새근 잠든 아가의 솜털 같은 글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유학 와 영어로 쓴 글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세 나라의 언어가 묘한 작용을 했기 때문일까요?


문득 지난 시간에 그 학생의 포토에세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가벼운 탄식처럼 나온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보다 잘 쓰는 것 같아."

 

동그랗고 큰 눈을 뜨고 놀라서 나를 바라보던 학생은 곧바로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좌우로 흔들며 들릴 듯 말 듯 "아니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질투가 날 정도로 잘 씁니다. 정말 훌륭해요."


그랬습니다. 그 학생의 글에는 사실과 정보가 문학적으로 매우 유려하고 감성적으로 잘 버무려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문체에는 제가 좋아하는 리얼리즘이 살아있어서 그리도 반색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한 달 가까이 매일 쓴 글들 역시 새로운 사실들의 다양한 문학적 표현으로 가득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글에 담긴 그 학생의 마음에는 따스함과 감사함이 새록새록 있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그것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쓴다는 건 처음부터 관객을 설정한 연기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글에 진정성과 정직성을 요구하는 건 뻔한 계몽주의 선생 노릇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글을 쓰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을 보면 옷깃을 여밉니다. 어떻게 그런 이들을 잘 인도할 것인가 고심하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막돼먹었다 하더라도 아직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남아있다면, 어설프면서도 엄격한 제 요구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학생들 덕분일 것입니다.  

머지 않아 알게 될 겁니다. 과제로 한 이 글쓰기가 그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아름답게 변화시키는지. 그건 성실한 학생이 당연히 따먹을 충실한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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