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
내 본성을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가? 기독교는 그 답을 죄라 하였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문명 때문이라 하더군요. 불가에서는 죽음과 고통의 세계로의 회귀 그 자체라 하였고, 가족 세우기에서는 옥죄는 감정과 얽힌 관계와 대물림되는 트라우마 때문이라 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같은 말을 다른 언어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과 합일된 대자연의 상태는, 완전히 깨달아, 옥죄는 감정과 얽힌 관계에서 자유하고, 대물림되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경우겠지요.
그래서, 나는 깨끗한 욕망으로 살아갈 것인가?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완전한 희열의 상태, 열반과 구원에 이른 그 상태, 감정과 관계에서 자유한 그 상태를 나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삐 빠진 망아지를 잡아끌고, 시커먼 소를 박박 문질러 댔습니다. 이 추잡하게 날뛰는 욕망아 좀 잠잠해져라! 하면서요. 그래야 구원을 얻든, 열반에 들든, 무의식이나 트라우마 따위에서 벗어나든 하지 않겠냐고요.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죄와, 문명과, 죽음과, 트라우마와 가까워지더라고요. 아예 한 몸이 되어 버리더라고요. 나는 그냥 억압 덩어리 그 자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것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주기로 했어요. 그 첫 이야기가 바로 '공간 살림'이었어요. 나는 물건을 정리하면서, 기쁨을 채집하면서, 아주 구체적인 감각으로, 내가 왜 날뛰는지, 왜 사망과 죄 앞에 여전히 두려워 떨고, 왜 트라우마를 알면서도, 트라우마를 내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는지를 나에게 묻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망아지가 잠잠해졌냐고요? 시커먼 소가 하얘졌나고요? 글쎄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 욕망은 잡아끌고 박박 문질러야 하는 거 아니란 것을요. 욕망이 날뛰면 날뛰는 대로, 시커머면 시커먼 대로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야 그게 내 욕망이고, 지금 그게 날뛰고 할 수 있는 만큼 새카매져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드디어 알아차렸거든요.
그리고 여러분! 이 알아차림이야말로 바로 나의 다음 순간, 나의 다음 국면입니다. 나의 깨끗한 욕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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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 캠퍼스의 공간살림 명상 중에 작성한 살림 메시지입니다.
#씨앗글: 아난다 박미옥의 '일상으로의 황홀한 몰입 살림 명상 매거진'
커버사진출처: archimbodo.c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