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감각을 두려움에 속박했다는 각성
복직을 앞두고 가정 보육 하던 첫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나는 아이를 할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내 옆에 두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가 만날 위험한 세상이 두려워서, 아이는 이 비정한 세상을 모른 채 어미의 따뜻한 품을 한없이 누렸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부부'가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신의 세상을 만나다는 우주의 순리에 불응한다는 각성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불신하는 것은 나였지,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것과는 다른, 아이 자신의 세계를 만날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생각의 틀이 너무 작아 갑갑했고, 운신의 폭이 작아 깊은 생을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에게 대의를 위해 자신을 방치하면서 사는 것이 숭고한 삶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세계가 비정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저 차오르면 비고, 비면 차오르는 우주 법칙 안에 있었습니다. 서리가 내리면 키 작은 꽃 피우고, 바람이 불면 수정하는, 자연이라면 온전히 누리는 그 리듬을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은 내가 스스로의 감각을 두려움에 속박했기 때문이었죠.
엄마의 두려움에서 분리된 이 시간, 아이가 이 세상에는 부모의 세계 말고도 좋은 것이 많다는 알게되길 바랍니다. 아이가 다른 곳을 탐험하는 그 시간, 부모는 스스로를 더 잘 돌 볼 것이고, 더 건강한 안전지대가 될 것이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도 가능함을 증명할 것입니다. 서두르지는 않습니다. 아직 아이의 때가 아니라면 잠잠히 기다려줄거예요. 하지만 더 이상 나의 두려움을 아이 인생에 투사하지 않겠습니다. 옛날의 나로부터의 독립은 고단하겠지만 나는 끝까지 투쟁할 것이며 나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독립합니다.
부모도, 아이도 모두 자라고 있습니다.
아난다캠퍼스 공간살림명상중에 작성한 살림메시지입니다.
커버 이미지: [솔새와 소나무], 길벗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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