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사나 하다가 진짜 잠들었어요.
제곧내. 사바사나 하다가 잠이 들었다. 종종 사바사나 타임에 코 고는 소리는 몇 번 들었어도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사바사나(Savasana)란?
생명이 다한 송장처럼 가만히 누워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자세. 요가원에서는 주로 모든 아사나가 끝나고 마지막 순서에 한다.
전날, 회사 동료들과 간만에 폭음을 했다. 덕분에 새벽 4시쯤 잠들어서 7시쯤에 일어나 회사로 갔고, 숙취로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뜬 채로 일하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반반차를 쓰고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도중에, 문득 요가원 회원권이 3일 밖에 남지 않은 게 생각났다. 지난 달에 몇 번 못나가서 이번 달에는 꾸역꾸역 나가야 하는데…
전날 술 마시고 3시간 밖에 못 잔 몸을 이끌고 요가원으로 향했다. 평소에 간단한 인사만 건네던 선생님이 “어디 아파요?”라는 말을 건넸다. 아니요.. 그냥 졸린데 왔어요…
하필 내가 들을 수업이 땀이 쫙 나는 하타요가 였다. 그래도 요가할 때 집중력은 좋은 편이라 한 동작 한 동작 열심히 따라했다.
요가 수업 중 마지막 5분, 사바사나 시간. 많은 요가 수련자님들이 그러하듯 유난히 힘든 아사나를 많이 했던 날일수록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
두 발은 요가매트 너비만큼 벌리고, 두 손은 천장을 향해 펼친 채로 눈을 감았다. 다른 날과 다르게 사바사나를 하며 잡생각이 안 들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찰나에 어디에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바사나를 할 때 음악을 안 틀어주는 선생님의 수업이라서 코 고는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누가 이렇게 코를 골지? 많이 피곤하셨나보다.. 라는 생각이 지나갈 때쯤 무언가 이상했다. 코 고는 소리와 내 기관지에서 나는 울림의 타이밍이 점점 맞아떨어져갔다.
그렇다. 코 곤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코를 골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눈을 번쩍 떴고, 코골이를 멈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코 고는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함과 동시에, 사바아사나가 끝나고 다시 몸을 일으키고 나서 선생님이 코 곤 사람 언급을 할까봐 조마조마했다.
다른 회원분들이 일어나며 내 쪽을 보는 듯 했으나 선생님은 다행히 아무 말이 없으셨고, 나는 다같이 합장을 하며 ‘나마스테’를 외침과 동시에 일어나서 요가매트를 돌돌 말아들고 재빠르게 수련실을 나갔다.
사실 사바사나 를 하며 코를 고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나 또한 다른 회원들의 코 고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그냥 피곤한가보다 하고 넘긴다. 생리현상인데 어떡할거야.
근데 정작 내가 20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간접적으로 내 코골이를 커밍아웃 하는 당사자가 되어보니 생각보다 많이 민망했다. 이런 정도로는 창피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내가 코 곤 것을 관심 없어 하는 걸 알지만 이상하게 창피했다. 평소에 잠꼬대가 많다보니 도중에 이상한 소리라도 낸 게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당연히도 내가 코 곤 것을 언급하거나 아는 척 해주는 회원님들은 없었고, 찝찝한 마음으로 요가원을 나섰다. 다행히 창피함도 고작 15분 정도 밖에 가지 않았다.
이 날 이후로 잠이 부족하거나 숙취가 있는 날에는 요가원에 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요가를 정신수련의 일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예고되지 않은 소리는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코 고는 건 괜찮지만 내가 고는 건 왠지 모르게 좀 싫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니 말이 맞녜 내 말이 맞녜 하며 날카로운 마음으로 살았어도 요가원에서만큼은 마음이 유연해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이런 상태의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