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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Feb 28. 2021

이불 안은 덥고 밖은 춥다

한심한 쓰레기의 구차한 주절거림.

Photo by. Krista Mangulsone / Unsplash


    그들은, 맞닿지 못해 애끓는 내 어린 심신 앞에서 충동을 이기지 못해도 책임은 지지 않았다. 애정을 갈구했던 것과는 별개로, 지나가는 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들 쓰레기라 일컬으며 저주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내 희뿌연 심상은 그 시절 그대로 열기는 차게 식고 시간만 흘렀다. 공허 손에는 시나브로 붉은 실이 느슨하게 묶였다.


    대체 어디서부터 흘러들어왔을까. 건들면 곧장 풀릴 듯 위태롭다. 물음마다 텅 빈 공허만이 남았다. 감정의 시작도, 진행도 명확하지 않으니 단순히 권태라 둘러대기도 난감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외롭고 이리저리 휩쓸리기 일쑤다. 애매함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다.


    어둠 속에서 서로 맞댄 몸뚱이 위로 이불을 덮어 체온을 덥혔다. 이불 밖에는 찬 공기 에워쌌다. 등 뒤로 나근나근 속삭이는 목소리는 쉽게 인정하고 고백한다. 사과마저 쉽다. 뭐가 저렇게 쉬울까. 애끓는 심정에 눈이 멀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나는 간절할수록 명료했다. 그럼에도 쉽진 않았는데.


    애매한 스스로를 확신할  지만 생생한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렇게  탐색은 유야무야고 본능 탐닉 몰두한다. 일시적 향락 어김없이 허무 찾아든. 결국 지금  모습처럼 서로를 마주 보지 못한다.  뒤로 노곤노곤 속삭이는 목소리는 지금 이대로도 만족하는  같다.  쉬워 보인다.   은데.


    그러니 나도 그냥저냥 쉽게 넘기면 만사형통 아닌가. 허나 목전에 간편한 해결책을 두고 다시 돌아선다. 몸과 달리 마음은 동떨어져 얼섞이지 못했다. 머나 거리를 좁히기엔 어딘가 조건 불충족이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여전히 외롭고 이리저리 휩쓸리기 일쑤다. 애매함에서 헤어나고 싶은데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다.


    질문이 이어지자 나는 입을 다문 채 고갯짓으로만 답했다. 등 뒤로 느근느근 속삭이는 목소리는 아랑곳 않는다. 마음을 말로써 그려낸 듯 선명하다. 뭐가 저렇게 선명할까. 묵묵히 듣고 있자니 이불 밖의 찬 공기만큼이나 휑했다. 하루에도 수차례 변하는 사람에게 영원토록 변치 않을 감정이라고? 영원은 오직 죽음으로써 증명된다. 그러니 죽지 않고선 몰라, 변할지 안 변할지는.


    나근나근 노곤노곤 느근느근 속삭임 따라 내뱉지 못한 모든 냉소는 입을 다문 채 들이켰다. 변심은 둘째치고 정말 너를 사랑는지조차 자문하면서, 애매하게 휩쓸렸다는 핑계를 대며 울 수 없는 공허감과 채우지 못할 외로움에 미련을 두는 스스로가 한심한 쓰레기로 여겨졌다.


    매사가 어렵고 안혼한 나와는 달리, 번번이 쉽고 선명했기에 선망했 때문에 실망했다. 의존과 사랑 판이함을 차츰 깨닫는 동안 더욱더 어긋난 서로의 간극은 커질 대로 커졌다. 그런 서로에게 주어진 갈림길은 자명하다. 상호작용도 갈망도 결여된 허울뿐인 자리보존을 유지하느냐, 마느냐. 한심한 쓰레기인 나는 회의적이다. 이미 기나긴 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옭매지 못해 여전히 느슨한 붉은 실을 놓지 않 붙든들 서로에게 과연 무엇이 남을까.


    이불 안은 덥고 밖은 춥다. 오롯한 추위도 더위도 아니라 애매했다. 역시나 입을 다문 채, 그들이 휩쓸고 간 전철 앞에 다다른 나 또한 별 수 없는 쓰레기라 일컬으 자조다. 참 뻔뻔도 하지. 돌벽처럼 차갑게 무뎌진 나는 내 것이 아닌 평온한 고동 소리를 가만히 빌어 듣다가 이윽고 자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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