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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un 02. 2020

사랑, 내 마음이 가장 잘 아는 것

남에게 내 사랑을 묻지 마라. 답은 결국 내게 있으니..

이혼을 생각할 무렵 답답한 마음에 혼자 외출을 나왔다 우연히 타로점을 본 일이 있었다. 

"무슨 문제를 점 쳐보고 싶은데요?"

"지금 인연을 정리하려는데... 언제쯤 다시 결혼까지 갈 수 있는 인연을 만날까요?"

타로 마스터는 그 울적한 질문에 참 건조한 표정으로 카드들을 섞고 나에게 왼손으로 세장을 뽑으라 했다.

타로 마스터는 내 손에 끄잡혀 나온 세장의 카드를 신중하게 뒤집으며 말했다.

"좀 오래 걸리겠는데요? 직업이나 외모나 손님이 맘에 드는 수준의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건 진짜 좀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네."


6년 전 그 말이 씨가 된 듯 이혼 후 몇 번의 진지한 교제가 있었지만 매번 난 다시 혼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이곳에 내가 만난 인연이나 그냥 잠시 스친 인연, 어쨌든 내가 겪은 사람 이야기를 쓰겠다 마음먹었지만 고민이 참 많았다. 그러다 자칫 고맙고 소중한 기억들마저 그 색이 변질되어 버릴까 봐.. 그저 불완전한, 자기 세계에 사는 좁은 사람들의 그 '다름'과 거기에서 시작한 불편함들에 대해 쓰고자 한다. 비방이나 내 속풀이 정도의 조악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긴장을 최대한 늦추지 않을 각오로 이 매거진들을 써내려 갈 것이다.


일 년 전쯤인가.. 누군가 내 SNS 계정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인플루언서도 아닌 내 SNS 계정은 하루 방문자가 고작해야 50명 남짓에 불과했지만 당시 300건 이상의 조회기록을 매일같이 경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다는 느낌보다 불길한 느낌이 먼저 들었던 나머지 방문 기록을 조회해보았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라는 이오공감의 노랫가사는 정말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순수 방문자 조회수가 아닌, 누군가 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계정을 휘젓고 다닌 기록이었다. 나의 '연애', '결혼', '이혼' 등의 키워드를 넣어가며 검색한 그 사람.. 나의 무엇이 그리도 궁금했던 걸까.. 그리고 유사한 루트로 진행되는 나에 대한 검색은 강도가 조금 약해졌지만 여전히 가끔 진행 중이다.


테러에 가까운 추적은 혼자 사는 여성을 불안에 떨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고.. 우연찮게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이혼 후 처음 사귄 이전 남자 친구의 아내.. 그는 나와 헤어진 후 얼마 되지 않아 카톡 프사에 결혼사진을 걸었다. 그렇게 그의 결혼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신혼의 달달함을 만끽하느라 정신없어야 할 시기에 이전 여자 친구의 SNS에 집착하는 아내.. 그녀는 내게 무엇이 그리도 궁금했을까..


그와 헤어진 후 나는 곧 다른 이성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이끌렸고 금세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갑작스러운 사별의 상처를 가진 사람.. 그래서 난 그가 더 애잔하고 아팠다. 하지만 그가 내게 들려준 안쓰럽고 아련한 상처들이 가공된 이야기란 걸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전 아내가 사망하기 전 그의 외도가 있었고 그렇게 별거 중 갑자기 아내가 사망했던 것이다.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그가 내게 했던 이야기들이 소름 끼치도록 매끈하게 조작되었고 그런 그를 평생 신뢰하며 살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관계는 급격히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이별하게 되었다. 


그의 예전 휴대폰에서 처음 그 뜨악한 사건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망한 아내의 단짝 친구로 보이는 여자에게 문자를 보낸 일이 있었다. 정확이 신분을 밝히고 정말 정말 미안하지만 그때의 일들을 알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그가 가공해 들려준 얘기와 눈앞에 널어진 문자들의 갭이 너무도 커서 퍼즐을 도저히 끼워 맞추기가 불가능했었던 것 같다. 이미 그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정리되지 않은 사실만으로 그를 놓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우선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이틀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친한 친구지만 이미 지난 3자의 일, 자신이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는 입장.. 하지만 자신에게 그렇게 문자를 보낸 걸 보니 이미 그 관계를 어찌해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알고 계신 것 같다는 말.. 중립적이고 신중한 그 메시지를 보며 아마 어쩌면 더 그 관계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죽은 친구가 불쌍해 적나라한 욕들을 퍼부어도 시원찮을 판에 그녀는 놀랍도록 신중했다. 그의 서랍에서 우연히 보았던 죽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순박해 보일 정도로 이 세상 때가 묻지 않았던 얼굴.. 그런 그녀와 비슷한 생각과 말들을 나누었을 단짝 친구.. 하지만 그런 기억을 왜곡하고 조작한 그..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누구의 말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할까..



그녀의 말이 맞다. 그런 사실을 안 순간 더 이상 그들에게 들을 것은 없다.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내 가슴 안에 있는 사랑의 모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더 가도 괜찮은지,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 맞는지, 혹시 착각하고 살진 않았는지.. 


이전 남자 친구 아내의 SNS 테러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그 원치 않는 관심에 지쳤던 난 급기야 그곳에 대놓고 그녀에게 짧은 편지를 썼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이제 뒷조사는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그 후 테러는 멈췄다.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이따금씩 유사하게 개인적인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접근이 이어진다. 지인이라면 카톡이나 인스타나 직접적인 연락을 전해올 텐데 멀리서 아주 은밀하게 관망하는 움직임.. 직접적으로 다가올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상대와 나 사이에 놓여있는 관계일 것이다. 무엇이 알고 싶은가.. 하지만 그 물음은 더 이상 내가 아닌,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것이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의 말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어 계속적인 의심의 마음을 품게 된다면 자신의 그 마음이 과연 사랑인지, 그를 의심하기 전에 우선 그것부터 먼저 확인해볼 일이다. 합리화하지 말라. 집착도 때론 사랑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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