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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하람 Feb 19. 2024

신뢰의 비결

겨우 기차 하나

  지하철은 매일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장소에 도착한다. 플랫폼에 멈춰 선 열차는 사람들이 모두 탑승하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열차에게는 사람보다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늦은 사람을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사람이 열차 시간에 맞춰야지 열차가 사람에 맞춰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매정하고, 야속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만큼 하찮은 정(情) 따위보다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늦으면 큰일 나는 약속이거나 시간을 꼭 지켜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서는 자동차보다 지하철을 타게 된다. 자동차를 타면 편리하겠지만 차가 한 번 막히거나 길을 잘못 드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반면 열차는 냉정해 보이지만 그만큼 신뢰하기는 너무 좋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개가 짖든, 시간에 맞춰 달리는 열차의 장점을 사람들은 정시성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열차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기차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지키기 위해 항상 정해진 선로 위를 움직인다. 선로는 기차의 비결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따라가고 싶을 수도 있고, 정해진 플랫폼에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쉬고 싶을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철로는 열차 위에서 버팀목이 되어주고, 열차는 선로가 안내해 주는 길이 아니면 가지 않을 만큼 철로를 무한정 신뢰한다. 철로를 믿고 달리는 습관이 철로보다 단단해지면서 기차는 사람들로부터 지금만큼의 명성과 신뢰를 얻게 되었다. 헬렌 켈러가 셜리번을 만나고, 노인 산티아고가 소년 마놀린을 만나고, 열차가 선로를 만나서 달리는 것처럼 우리는 나만의 선로를 발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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