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적합한 때가 있다.
사람의 일도 그렇지만 사업도 마찬가지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아무리 기술이나 제품이 좋아도 시너지가 나기 위해서는 시기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천운이라고도 하겠지만 실은 철저한 계산과 분석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소발에 쥐 잡는 경우는 없다 봐야 할 것이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한다. 기술도 제품도 트렌드도 시간의 흐름에 의해 그 위치와 상태가 바뀐다. 초기 기술이나 혁신, 변화 등 새로움에 대한 사람들의 수용성을 주장한 학자가 있다. 에버렛 로저스(Everett M. Rogers)는 1961년 『Diffusion of Innovation』에서 그래프로 이것을 시각화했다. 이름하여 그 유명한 로저스 곡선(Rogers Curve)이 그것이다.
혁신이라고 하지만 보통은 제품으로 구현된다.
1961년은 아마도 다양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걸 분석한 내용이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을 보면 좀 신기한 면도 있다. 아무튼, 그래프를 보면 정규분포에 가깝다. 이런 분포 형태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시대가 바뀌어도 정규성을 띄는 현상은 달라지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프는 혁신자, 선도수용자, 전기다수, 후기다수, 지각수용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보통 디자인이라고 하면 선도수용자(Early Adopters)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 이전에 Innovators가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언제나 용기 있게 바다로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 가끔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후기다수(Late Majority)에 속한다. 눈물의 폐업정리에 오는 고객은 어디에 속할까? 지각수용자(Laggards)일까?
여기에 조금 더 자세히 틈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
제프리 무어(Geoffrey Moore)는 『Crossing The Chasm』에서 틈(Chasm)을 주장했다. Early Adopter와 전기다수(Early Majority) 사이에 일정한 폭의 틈이 있는데, 여기를 뛰어넘지 못하면 뒷 단계로 못 건너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로저스가 말한 대로면 모든 제품이나 기술은 도입되고 발전했다가 쇠퇴하는 사이클을 다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설명된다. 역시 약간은 삐딱선을 타야 하나 보다. 아무튼 이런 간극, 우리 말로는 틈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기술의 발전과 사람들의 인식 간 차이가 생길 때 발생한다. 사람들의 높은 기대와는 달리 수용할 수 있는 사회환경이나 인프라, 인식 등이 이에 따라주지 못하면 그 기술이나 제품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나중에 보게 될 제품수명곡선(Product Life Cycle, PLC)도 비슷하다.
영어 약자가 나오지만 자세히 보면 그냥 말을 줄여놓은 정도다. 쫄지 말자. 제품 역시 사람처럼 수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를 갖는다는 거다. 여기에 Chasm을 적용해 보면, 또 말이 된다. 제품 역시도 도입기에서 성장기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틈을 넘지 못하면 초기나 후기다수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이런 제품도 너무나 많다.
또 하나의 곡선은 IT회사, 가트너의 하이퍼 사이클(Gatner Hyper Cycle)이다.
커브가 많이 나와도 따지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처음부터 확 올라가느냐, 순차적으로 올라가느냐이지 정점을 지나면 내려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르고 내리는 지점, 오르는 지점과 내려오는 지점에 각자 그럴듯한 말을 붙인 정도이니 개념 정도만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좋다.
기술이 촉발됐으니 껑충할 것이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기대가 높아지는데 롤러코스터처럼, 주식처럼 상한가를 치면 내려오게 되어 있다. 가장 낮은 곳은 환멸의 골짜기(표현력이 시적이다), 여기에서는 올라가는 수밖에 없는데, 이 경사구간을 계몽의 경사(캬)라고 한다. 이후 안정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거 보시라. 별 거 없지 않은가.
타이밍(When)은 제품이나 서비스 같은 콘텐츠 못지않게 중요하다.
블럭버스터는 넷플릭스의 주인이 될 뻔했으나 기회를 놓쳤고, 야심 차게 출발한 세그웨이는 2020년에 생산이 중단되고 놀이공원에서나 가끔 볼 수 있다. VR(가상현실)은 초기 강력한 과잉기대 때문에 자칫 재밌고 신기한 오락거리로 끝날 수 있었으나, 이후 메타버스와 산업용 훈련 분야로 잘 정착했다. 3D프린터 역시 세상을 바꿀 산업혁명으로 세상을 뒤바꿀 것 같았지만 지금은 여러 실패의 골짜기를 거쳐 정체기 영역에 높여 있다.
사람이 하늘의 이치나 때를 어찌 알겠는가.
제품이나 디자인, 디자인경영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가장 적절한 시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누구라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물며, 그 시기에 맞춰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을 확률도 낮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전히 세상은 복잡하고 경영환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늘 뭔가를 구상하고 만들어낸다. 내가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의 니즈를 해결하고 불편을 감소 혹은 개선시켰으면 한다. 이런 디자인경영에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출시 시기나 타이밍을 누가 말해주지 않는다. 트렌드, 기술, 사회인식, 문화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몇십 년 전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공은 어디에 있을까.
블루오션을 찾아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과 기술, 그리고 서비스. 모든 요인이 적절히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성공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다. 이 중에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도 있다. 오늘 다룬 When(타이밍) 역시 그렇다. 최선을 다하고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 제품, 트렌드 등을 받아들이는 고객이나 시장을 잘 알고 있는 상태라야 한다. 그래야 그 최선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복잡한 그래프를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