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곳을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있다.
앞뒤상하좌우 가리지 않는 치열한 경영현장에서는 모두가 경쟁자다.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내가 진출하려는 시장에는 이미 누군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을 확률이 99%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품속에 칼을 숨기고, 일단은 조용히(?) 한쪽 구석에서 살포시 있는 듯 없는 듯 있다가 기회를 엿볼 것인가, 아니면 대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호기롭게 맞짱을 뜰 것인가! 아, 그전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내가 활동할 무대가 어떤 곳인지 한 번 정도는 둘러보자. 그래야 싸우다가 안돼서 도망치더라도 출구 방향 정도는 파악할 것이 아닌가.
시장.
영어로는 Market인데, 이게 참 묘한 구석이 있다. 그 묘한 구석은 바로 경계다. 우리가 아는 전통시장이나 마트 같은 곳을 생각해 보자. 경계나 구분이 아주 명확하지 않은가. 크게는 건물, 작게는 매장과 매장, 매대와 매대가 아주 명확하고 깔끔하게 구획되어 있다. 그리고 비슷한 품목이나 연관된 것들은 한 곳에 친절하게 모아놨다. 고객 입장에서는 아주 편리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자칫 우리가 지루(?)해 할까 봐 종종 위치나 구성도 이리저리 휙휙 바꿔놔서 늘 새로운 마음으로 탕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당연히 오프라인 시장의 특징이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적 시장은 좀 다르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그룹핑도 느슨하다. 그러다 보니 옆 가게나 회사의 실제 규모나 자세한 파워를 알기 어렵다. 아 말이 어렵다는 것이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냥 막연하게 정도만 알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반드시 컵을 만드는 제조사가 컵 만드는 시장에만 들어가야 하는 법 같은 강제조항은 없다. 물론 컵도 종류가 하늘의 별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제조사 입장에서 판단할 때 통상적으로 동일한 경쟁자들이 이미 상존하는 곳에 진입할지, 아니면 다른 시장으로 들어갈지를 판단해야 한다. 앞서도 생각해 봤지만 같은 제품군이라 해도 가격, 품질, 목적에 따라 고객은 천차만별이고 아주아주 세분화되는 것이 현대경영 환경에서의 시장 특성이다.
시장선택은 전략이다.
어떤 종류의 시장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기업의 명운은 나뉜다. 시장은 그 특징을 크게 3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뻔한 소리 같겠지만 한 번 생각해봄직 하다.
1. 시장은 이미 누가 차지하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람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다.
아무리 내가 유니크한 발상과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만들었어도 동일에 가깝거나 적어도 유사한 제품시장은 이미 존재한다. 혹은 대체제 성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다. 싸워서 이기거나 아니면 강력한 경쟁자를 피해 다른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일단, 손에 쥔 것은 쉽사리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장점유율을 높인다는, 혹은 차지하는 표현은 실은 경쟁자와 싸워서 빼앗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시장에 들어와서 당시의 경쟁자와 싸워 이겨서 뺏은 그 시장을 내가 다시 빼앗아야 한다. 입장을 챔피언과 도전자로 본다면 입장은 챔피언에게 유리하다. 아무리 훈련을 했어도 실전싸움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그때그때 시장상황과 주변여건을 고려하는 탄력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2. 시장은 움직이는 생명체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앞과 뒤가 바뀌고 위와 아래가 뒤집히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시장은 늘 변한다. 왜냐하면 고객이 변하거나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쟁자들이 나오면서 품질이나 서비스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변하거나 발전해야 한다.
기회는 이런 곳에서 나온다.
시장의 규모, 형태, 특성은 정말 소리소문 없이 바뀌고 변한다. 이것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은 외부의 자극인데, 그게 내가 되면 어떨까. 보통 챔피언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싸워서 이긴 전략을 잘 못 수정하게 될 때 염려되는 리스크는 크다. 하지만 도전자 입장은 잃어도 크게 손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 결과 시장이 움직이고 변해서 나에게 유리하게 된다면 내가 그만큼의 시장 점유율을 가져오는 것이다. 만약에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지 두 번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3. 시장은 선택이 아닌 전략이다.
그래서 시장을 잘 골라야 한다.
아마추어 복싱 동호인이 프로리그에 나가면 안 된다. 조기축구회가 K리그 프로팀과 경기 정도는 할 수 있다. 그 정도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지만 냉정한 경영환경에서는 이런 무모한 도전은 아무 실익 없이 패가망신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된다. 만약 나에게 유리한 그런 시장을 찾을 수 없다면?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시장은 실존하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유동적이다. 몇몇 기업은 실존하지 않던 시장을 새롭게 창출하면서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우리는 레드오션과 블루오션을 얘기한다.
경쟁자가 많고 치열한 시장을 레드오션, 그 반대 개념을 블루오션이라고 말한다. 이건 시장을 구분할 때 아주 극단적인 기준으로 보는 것이라 이론적으로 '시장'을 설명하기에 좋은 표현이다. 예를 들면 커피 프랜차이즈를 생각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커피가게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또 새로운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신기한 일이다. 그 수많은 커피 브랜드와 가게를 보면서 저 사람들은 다 먹고 살만큼 돈을 벌 수 있으려나 궁금하기도 했다.
반대로 청정한 블루오션이 있다.
기존에 없던 시장을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레드의 반대 개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황무지에서 시장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냥 상반된 개념으로 레드와 블루를 말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해도 성공확률은 미미한 수준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시뻘겋게 넘쳐흐르는 레드오션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의 수준은 안된다고 본다.
실제로는 레드와 블루 어딘가에 다 위치한다.
시장은 극단적으로 붉지도, 극단적으로 푸르지도 않다. 중간 색상인 보라(Purple) 시장이 거의 대다수일 것이다. 보라색도 레드가 많은 보라가 있고, 푸른 끼가 많은 보라가 있지 않은가. 어떤 시장도 완전한 제로 베이스에서 생기는 것보다는 레드의 어느 한 틈에서 기회를 잡아서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대문자 T 같은 소리겠지만 저 레드 오션도 가장자리나 어느 한쪽은 옅은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
새벽배송의 마켓컬리도 식자재 시장이라는 레드오션에서 태어났다.
그 치열한 레드의 틈 사이에서 '새벽'이라는 아주 작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키워드를 잡아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냈으며, toss도 금융시장이라는 아주 치열한 레드오션의 틈바구니에서 '온라인 송금'이라는 작은 틈을 크게 열어젖혔다. 마켓컬리도 초기에는 새벽배송이라는 키워드를 위해 다양한 리스크와 부담을 가져야 했고, toss도 공인인증이나 보안이라는 큰 벽을 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냥 빨갛기만 했던 그 레드오션 시장에서 작은 틈새로 비춰 보이는 작은 기회를 끝까지 놓지 않아서 자기만의 큰 시장을 만들 수 있었고, 거기의 승자가 되었다. 대부분 이런 식이다. 블루도 아니고 레드도 아닌 퍼플이다.
또 다른 사례도 보자.
코로나는 우리에게 큰 타격과 많은 손실을 입혔지만 다른 시장을 열기도 했다. 대면이 금지되고 여행업이 붕괴되던 시기, 숙박업계는 살아남기 위해 관점을 변경했다. 호텔 미만 모텔은 건전한 숙박업소보다는 음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비대면 시기 당시 많은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건강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냈다. 쉬쉬했던 업종에서 여행의 모든 경험을 공학적 관점에서 보고,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광고를 통해 '숙박'이라는 개념 자체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렸다. 코로나가 종식된 현재 시점에서 보면 당연하겠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이 역시 코로나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굳이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과론적이지만 여기어때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K트렌드의 열풍을 타고 상승 중인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시장은 존재한다.
그리고 좋든 싫든 경영을 한다는 것은 시장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과거와 조금 달라진 것은 그 시장이라는 곳이 유동적이고 탄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치열한 경쟁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블루오션은 없다. 눈을 크게 부라리고, 레드오션 속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시장을 창출하거나 혹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빨간 시장의 어느 한 곳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곳이 조금은 푸른빛을 띠면서 보라색으로 변할 것이다. 여기에서 진짜 승부가 시작된다.
다르게 바라보기.
이것이 레드오션과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첫걸음이다. 스티브 잡스가 얘기했던 Think Different 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절실한 표현이었음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단순한 유니크가 아니라 깊이 있는 통찰, 그리고 그 속에서 기회를 보는 눈(Insight).
이것이 디자인경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