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을 7년으로 사는 아이-
지난 4월의 아침, 강아지가 짖는다. 마침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짖는 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름을 불러봐도 초점 없는 눈은 나를 보지 못한다. 그래도 소리는 들리는지 조심스레 움직이지만 테이블이며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아 대고 있다.
놀란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강아지 미키가 눈이 안보이는 것 같다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걷다가 이제 그나마도 무서워 못하고 그 자리에서 짖기만 한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눈에 막이 끼어 있는 것처럼 뿌예져서 병원에서 받은 안약을 7개나 넣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루 아침에 눈이 안보이게 되자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는 미키를 카트에 태우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강아지 유모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데, 목줄을 채워 걸어갈 수도 없고 태워갈 차도 없어 어디 사람 유모차라도 있었으면 싶다. 나는 우선 급한 마음에 시장 갈 때 쓰는 장바구니를 카트에 끼우고 담요를 깔아 그 위에 미키를 앉혔다. 갑자기 앞이 안 보이는 상황임에도 미키는 얌전히 자기 몸을 맡기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가슴이 더 먹먹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렇게 터벅터벅 길을 나서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강아지를 상전 대하듯 한다는 둥, 개를 개처럼 키워야지 요즘은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둥, 스스로 걷게 해야 운동이 된다는 둥, 야박한 말들에 더욱 눈물이 솟구치지만 맞상대하기엔 마음이 너무 급하다.
동물 병원 의사는 이미 미키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눈이 안 보이는 거 같다는 말을 듣자 한껏 미안한 표정이 되더니 검사를 해 보겠다고 한다. 잠시 후 더욱 미안한 표정이 된 의사는 미키의 시신경이 이미 손상된 걸로 보이고, 부은 안구 때문에 상당한 통증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한다.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안약으로 눈의 압력을 좀 줄여 보고, 그나마도 안되면 안구의 물을 주사로 빼 낼 수도 있는데, 그건 다시 물이 찰 수 있기 때문에 임시 방편일 거라고도 한다. 최종적으로는 안구 적출 수술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노견이기 때문에 전신 마취가 위험할 수 있고, 외관상으로 보기 좋지 않기 때문에 적극 권장하진 못하겠다고도 덧붙인다. 그 새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온 딸아이와 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같이 들었다. 시력이 돌아올 거라는 기대는 안 했지만, 통증에 수술에 너무 무서운 말들을 듣고 나니 둘 다 망연자실해졌다. 결국 우리는 미키를 몇 일 병원에 입원시키고 안약으로 안압을 줄이는 시도라도 해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니 미키의 집, 밥 그릇, 장난감들이 나뒹굴고 있다. 강아지의 1년이 사람의 7년이라고 하니 만 12년이 된 미키는 사람 나이로 치면 80이 넘은 할아버지이다 처음 만난 날 겨우 2개월 된 미키는 손바닥만큼 작고 털이 북실북실 한 아기 시츄였다. 붙임성이 너무 좋아서 산책길에 만난 낯선 사람도 우쭈쭈 한마디에 바로 달려가 안겼고, 휴가 때 친구 집에 몇일 맡겼을 때도 그 집 식구들과 너무 잘 지내 데려오기 미안하기까지 했다. 물론 예쁜 짓만 한 건 아니다. 첫 해 이가 나기 시작하면서는 거실 걸레받이를 다 갉아 대고, 내 책이며 신발이며 눈에 보이는 건 다 잘근잘근 씹어 놨다. 한창 때는 소파에 펄쩍 뛰어올라 발로 박박 긁어 대서 가죽을 다 벗겨 버리기도 했다. 딸 아이가 나 몰래 자기 침대에서 같이 자다가 아침에 들켜 혼이 난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미키가 나이가 들며 털도 듬성듬성해지고 눈도 뿌옇게 되더니, 놀잇감을 던져줘도 달려가 물어 오질 않고 소파에 뛰어오르지도 못한다. 그 좋아하던 산책도 이제 썩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뒤에서 터덜터덜 따라오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1년이 7년 같은 강아지에게 나는 그다지 따뜻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주인이었다. 강아지 키우는 게 애 하나 키우는 거와 비슷한데 모든 책임이 나에게 지워진 거 같아 독박 육아라며 불평만 했다. 딸아이는 마음은 굴뚝 같았어도 작년까지 학교와 학원에 치여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고, 남편도 가끔 목욕하는 거 정도만 도와줬을 뿐 이리 저리 돈덩이라고 구박만 했다. 그래도 집에 들어서면 항상 제일 먼저 꼬리치고 달려오고, 기분 좋으면 두발로 서서 재주를 부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우리의 핸드폰에 귀여운 사진을 잔뜩 안겨준 예쁜 아이가 미키였다.
이제 미키도 눈이 안 보이게 된 지 5개월이 넘어 가고, 우리 모두는 이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었다. 나는 앞이 안 보이는 맹견의 안내인으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집 앞을 한 바퀴 돈다. 시각이 없어진 만큼 청각이 예민해진 미키는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견디지 못해서 큰길로는 나갈 수 없다. 예전엔 낙엽 쌓인 산길에 파묻혀 걷는 걸 좋아해 뒷산에 자주 갔지만, 이제는 산길도 오를 수 없다. 하지만 내 발소리를 따라 천천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미키와의 산책은 그야말로 느림을 배우는 명상의 시간이 되었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딛다 보면 지나가는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 비 오는 날의 후두둑 빗소리도 선명해지고, 나만 보기 미안한 파란 하늘 가득한 구름의 움직임, 살랑 살랑 손짓하는 잎사귀들의 춤사위도 더 잘 느껴진다.
7년을 1년으로 압축해 빠르게 겪어 온 미키는 좀 더 천천히 세상을 기억하고 싶은가 보다. 미키가 앞으로 남은 시간 느리지만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말똥말똥한 예쁜 눈으로 우리를 오래 쳐다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