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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19. 2021

[6일] 서투른 인사

안녕하세요

"안녕"이라는 말


“안녕.”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인사말이다. 우리말, 외국어를 가리지 않고 인사말을 가장 먼저 배운다. 사람과 사람과의 다리를 놓는 첫 시작과 끝에 인사가 자리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인사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또한 인사다. 나는 도통 실전에는 약하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데 아직도 서툴다. 오며 가며 마주하는 사람들은 자주 봐서 그런지 익숙함에 인사를 건네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그 사람이 내 인사를 받아줄까’라는 생각이 인사를 주저하게 만든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반가이 인사하며, 안부를 자연스레 묻는 사람들이 때론 부럽기도 했다.      


“Bless you." 교환학생 시절, 내가 재채기를 할 때면 주위에 있던 미국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재채기 하나에 '신의 은총'을 빌어준다. 재채기하느라 수고 많았다는 얘기다. 언젠가부터 맞은편에서 사람이 다가오는 상황을 어색해하곤 했는데, 피할 곳 없는 복도 같은 곳이 더 그랬다. 모르는 이가 맞은편에 지나가면, 눈빛을 애써 피하거나 애꿎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비록 모르는 사이 일지라도, 맞은편에서 마주치는 외국 친구들은 눈빛으로 미소로 낯선 타인을 반겨주었다. 그럴 때면 나도 먼저 나서서 눈빛으로, 미소로 모르는 이에게 인사하고 싶어졌다. 인사는 전염력이 있다.      


오늘은 인사를 잘해봐야지


내가 먼저 인사 전도사가 되어보자. 자주 잊어버리는지라 의식하지 않으면 금세 원래의 습관에 젖는다. 아침 출근길 서둘러 집을 나오는 길에 후문에서 눈을 치우고 계신 경비원 아저씨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하고 목소리를 조금 높여 인사해본다. 무심히 눈을 쓸던 아저씨가 바삐 지나가는 나를 본다.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하는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진다.

     

출근길, 버스가 도착한다. 앞서 줄을 서 있던 승객들이 하나둘 버스에 오른다. 카드를 찍는다. '삑-'‘환승입니다.’ 다음 사람이 또 찍는다.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환승한 분들에게는 환승 확인을, 환승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는 나오는 메시지가 나온다. 요즘은 버스가 말이 늘었다. 버스 기사님이 하시던 대부분의 말을 단말기가 대신한다. 버스를 오르며 기사님께 인사를 건넸다. 기사님은 살짝 눈인사를 돌려주신다. 눈이 그냥 마주쳤을 수 있지만 눈인사를 건넸다고 생각한다. 회사 로비에서 마주치는 경비원 분들께는 인사가 한결 편하다. 늦은 시간 근무할 때는 음료를 여럿 챙겨, 퇴근할 때 남아 있는 분들께 건네드리곤 했다. 오늘은 살짝 목례보다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인사드린다. 의식해야지만 인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 상황을 되돌아보니, 그동안 얼마나 인사에 인색했나 싶다.


점심시간 찾은 샌드위치 가게. 코로나인데 포장 고객과 배달 주문으로 매장이 북적인다. 손님들은 길게 줄을 서 있고, 배달 주문도 계속 밀려있다. 좁은 매장에 바쁜 손을 움직여 빵을 말아내는 두 직원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다. 배달 주문과 함께 포장 주문도 받다 보니, 20분이 넘도록 나도 주문을 하지 못했다. 배달할 샌드위치를 받으러 온 기사님이 앞에서 재촉하니 미안하다며, 바쁜 손으로 샌드위치를 연거푸 만다. 내 차례가 30분 만에 왔다. 주문을 하고, 카드를 건네며 바쁘신데 고생 많으시다고, 나오기 전 용기 내 한마디 건넨다. 불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한 번 인사를 건네주신다. 아직도 많이 남은 오후의 시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말 한마디의 힘


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에 시 쓰는 환경미화원 어르신이 나왔다. 가장 바라는 점을 물었을 때, "지나가다가 '수고하십니다' 한마디면 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쓰레기를 적게 버려라, 분리수거를 잘해주세요 등이 아니었다. 누군가 인사를 건네주고 간 날일 때면 어르신은 백배, 천배 더 일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나의 수고스러움을 알아주는 것. 인사는 어떤 사람에겐 하루를 힘차게 살아낼 힘을 준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 사람의 모든 사정을 구구절절 헤아려 주지 않아도 좋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인사말로도 누군가의 하루는 꽃이 되어 활짝 필 수도 있다. 인사말에는 많은 여백이 있다. 여백만큼의 공명과 울림이 있다. 서툰 인사를 건네며, 내일도 모레도 서툰 인사를 계속 건네보자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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