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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21. 2021

[8일] 뻣뻣이의 하루 요가

요가를 해봤습니다


  역동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렸을 적 들로 산으로 뛰어다녀서 그런지 뛰는 운동이나 땀이 흠뻑 젖는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했다.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선택한 운동이 복싱이었고, 이직 공부를 하면서 힘이 들 때 시작한 게 마라톤이었다. 샌드백을 치며 스트레스를 풀고, 한 시간가량을 숨차게 뛰고 나면 몸이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래지 않아 근육이 생기는 느낌이 좋았다. 


  근육이 탄탄하게 잡힌 몸이 마른 몸보다 더 좋아 보였던 건, 외국 친구들도 한 몫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머리를 질끈 올려 묶고 테니스를 치러가는 친구들이 기억난다. 단단하고 근육이 도드라진 팔뚝, 두터운 허벅지와 잔근육. 화장 안 한 얼굴에는 그 자체로 건강한 빛이 돌았다. 왠지 그런 친구들은 꼭 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근육질 몸매를 흠모했으나, 달리기만 편식했던 나는 어째 종아리 근육만 늘 화가 나 있었다.   

 

  요가와 같은 정적인 운동은 내가 좋아하는 운동들과는 정반대 편에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달리기를 할 때에는 근육의 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헬스장에 가서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부지런히 했고,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느꼈다. 빨리 달리기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인터벌 훈련을 하면서, 자체 신기록을 깼다고 좋아했던 것도 잠시였다. 한 시간쯤 뒤에 한쪽 다리가 잘 구부려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몸의 가동범위가 좁아져서 생긴 문제였고, 가동범위는 유연성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유연성이 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사람은 잘하는 걸 더 잘하고 싶다. 못하는 건 잘 안 하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그동안 달리기는 좋아했고, 요가는 멀리했었다. 타고난 뻣뻣함은 일상에서도 금세 티가 났다. 흔히 대부분 하는 양반다리를 하지 못한다. 양반다리를 하려면 양쪽 무릎이 심하게 떠서 앉아있는 게 불편했다. 오히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게 나았다. 그러다 보니, 회식 때 좌식 테이블에 앉을 때면 나는 으레 예의 차리는 사람이 되었다. 편하게 앉으라는 데 무릎 꿇는 것보다 편하게 앉을 길이 없었다.      


  그래도 유연성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유튜브에서 초보자들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요가 클래스를 켜본다. 요가 기초 영상에서는 양반다리를 기본자세로 앉으라는데,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다리를 바로 하려면 허리가 구부정해지고, 허리를 바로 세우면 다리가 너무 떴다. 그대로 따라 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운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됐다. 다리 찢기는 90도 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뻣뻣해질 대로 굳어진 몸이 하루아침에 부드러워질 리 만무하겠지만, 최대한 동작을 비슷하게 흉내 내보자 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텼다.      


  강사님은 거듭 자신이 할 수 되는 데까지만 무리하지 말고 따라 하기를 강조했다. 어찌 보면 이게 요가의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몸을 쓸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는 일. 조금 괜찮으면 한 뼘 더 앞을 짚어보고, 그렇다고 힘들면 무리하지 않는 일. 집중하고 몸의 에너지를 모으는 일 말이다. 한계를 넘어서고, 도전하고 어제보다 빨라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달리기 훈련과는 또 다른 해방감이었다.

      

  편안하고 정적인 흐름을 놓지 않는 단련된 요가 강사를 보고, 요가가 정적인 운동이라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근육이 타이트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호흡하는 건 쉽지 않았고, 몸에는 자꾸 힘이 들어갔다. 힘쓰는 운동만이 제대로 된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힘을 빼는 훈련 역시 내공이 필요한 일이었다. 오롯이 한 동작을 유지하면서, 호흡하고 집중하는 건 역동적인 운동만 좋아했던 나에겐 또 다른 훈련이었다.      


  <효리네 민박>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숙박객들에게 요가를 가르칠 때, 직접 요가 자세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너무도 편안하게 제자리에서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하고 천천히 다리를 내려 제 자리로 돌아온다.  다른 사람들은 우당탕 쿵쾅 거리는 중에 거친 호흡도 없이 코어의 힘으로 다리를 올렸다 내리는 장면에서, 외려 단단한 근육과 힘이 느껴졌다. 요가를 한다고 금세 몸의 근육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장을 담그듯 정성을 들이고 노력해서 차차 나아지는 운동이니까. 그래서 요가를 수련이라 하는 거겠지. 이완시켜야 다시 강해질 수 있다. 힘을 빼야 다시 힘이 생긴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여전히 뻣뻣한 몸으로 버티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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