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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22. 2021

[9일] 커피 대신 차

홍삼 대추 생강차 끓이기


  안 하는 게 꽤 늘었다. 술도 안 마시고, 커피도 안 마신다. 못 마시게 된 게 더 맞을 것이다. 카페인과 알코올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어느 날부턴가  몸에서 받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투샷 커피를 하루에 몇 잔 마셔도 각성되는 느낌 없이 잠만 잘 잤고, 맥주와 와인을 벗 삼아 혼술을 즐겨했었다. 이젠 조금만 마셔도 쉽게 과민반응이 올라온다. 그간 좋아하던 밀크티도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낮에 마시고 나서 한참이 지난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 고생을 하고나서부터다. 어찌 됐건 음료를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커피를 끊은 건 아니다. 카페인과 알코올이 더 이상 받지 않는 몸이 되니, 디카페인 커피, 무알콜 맥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무알콜 맥주를 집에 한 박스 사다 두었다. 종류별로 마셔보다가 최근 한 브랜드에 정착했다. 알코올이 없어도 청량한 맥주 맛은 느끼고 싶었다. 아침 출근길에는 카페에서 으레 디카페인 라테를 주문한다.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아도 커피가 주는 맛과 향 마저 모두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디카페인에 정착한 줄 알았는데, 요즘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도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때가 있다. 디카페인에도 소량 카페인이 들어있기에, 디카페인 5잔 정도는 한 잔의 커피와 카페인의 양이 비슷하다고 한다. 약간의 카페인에도 민감도가 높아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 디카페인을 마시는 것도 좋지는 않으리라 짐작해본다. 디카페인 커피는 화학성분으로 커피의 카페인 성분을 제거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화학성분'이라는 단어가 못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다시 마시고픈 음료를 찾아 유랑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 해도 차는 여간해서는 친구가 되지 못했다. 진하고 고소한 라테를 좋아하다 보니, 차는 싱겁고 밍밍하다는 생각에 손이 가지 않았다.      


  오늘 시어머니께서 차를 끓여 마셔 보라며 직접 말린 홍삼, 대추, 생강을 주셨다. 내 돈으로 사진 않지만, 이 기회에 한 번 끓여보자 싶었다. 얼마큼 넣어서 얼마나 오래 끓여야 할까. 장염 걸렸을 때 보리차 티백을 끓여 먹은 정도가 다였기에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일단 냄비에 물을 올렸다.


  홍삼 두세 개 대추와 생강을 한 줌 넣고, 냉장고에 있던 남은 배 한 조각도 같이 넣어주었다. 바짝 말린 홍삼과 빨간 대추, 배까지 넣고 나니 겨울에 어울리는 비주얼이다. 왠지 차를 직접 끓이고 있다 보니, 좀 어른이 된 것 같다. 물만 따르면 편하게 마실 수 있는 티백이나 음료가 많은 요즘인데, 직접 말린 약재를 공들여 끓여내는 엄마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부엌엔 차향이 은은하게 배어난다. 바짝 쪼그라들어있던 홍삼과 대추가 몸을 부풀린다. 홍삼과 대추, 생강이 점점 우러나면서 물 색깔도, 향도 더욱 진해진다. 부엌 공기가 생강향과 어우러진다. 냄새를 맡고 있어도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차 한 잔을 잔에 따라 책상 앞에 앉는다. 커피는 벌컥벌컥 마시곤 했는데, 차를 마실 때는 손도 덩달아 느려지는 듯하다.      


  템플스테이에서 경험했던 다도 시간이 기억난다. 다기를 데우고 찻잎을 우려내, 차를 천천히 따른다. 향기를 맡고 맛을 음미하며,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동안 몸도 마음도 정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시를 읽거나 명상을 할 때처럼 어떤 단정한 태도를 조금이나마 배운 시간이었다.     

 

   불안과 초조, 걱정과 근심들의 숫자만큼 커피를 자주 마시던 날들이 있었다. 잠을 억지로 쫓아내고 밤새 시험공부에 매달리던 때부터 커피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수능시험날엔 혹시나 잠이 들까 배낭에 다섯 개의 캔커피를 넣어갔다. 나의 20대엔 적게 자고, 오래 깨어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내 몸, 내 마음보다는 모든 신경이 밖으로 향해 있던 날들이었다.


 요즘은 나를 자주 들여다본다. 몸도 마음도 천천히 지긋이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따듯한 차를 마시면서 달뜬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잠을 깨기 위해 마셨던 커피보다 조금 다른 결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아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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