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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23. 2021

[10일] 플로깅! 쓰레기를 주우며 뛰다

보물찾기 하듯 쓰레기 찾기

  날씨가 제법 풀렸다. 미세먼지 알림 어플도 오늘은 환하게 웃으며 ‘매우 좋음’이란다. 살을 에는 한파도, 매캐한 미세먼지도 없는 이런 날엔 달리러 나가야 한다. 오늘은 무리해서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천천히 달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쓰레기도 주워보기로 했다. 그걸 플로깅(Ploggi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쓰레기를 주우며 뛰는 것’이다.     

 

   플로깅은 이삭을 줍는다는 스웨덴어 ‘플로카우프’와 영어 ‘조깅’의 합성어다. 생소한 어감이다. 그래서 얼마 전 국립국어원에서는 플로깅 대신 ‘쓰담달리기’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손으로 살살 쓰다듬는 행위’인 쓰담을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쓰레기 담기’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환경을 보듬고 쓰다듬는 어감 때문에 쓰담달리기라는 말이 플로깅보다 더 정겹게 다가온다.      


달리러 나갈 때 러닝 시계와 핸드폰, 에어팟만 챙기면 됐었는데, 오늘은 쓰레기를 주워야 하기에 준비물이 조금 더 있었다.      


플로깅 준비물

 집게 : 큰 집게는 달릴 때 번거롭다. 길이가 짧은 집게로 짐을 줄인다.

 종량제 봉투, 에코백 : 잘 안 쓰는 에코백과 종량제 봉투를 챙긴다. 일반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넣고 재활용 쓰레기는 가방과 종량제 사이 공간에 넣을 수 있다.


  집게를 미리 구비해두지 못했다. 집게 대신 일회용 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속도를 내서 빨리 뛰는 대신 쓰레기를 찾고, 줍기 위해 주위를 잘 둘러보고,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하려는데 출발 지점부터 쓰레기가 많다. 살포시 두고 간 듯 너무도 잘 보이는 길가에 빈 깡통이 나란히 놓여 있다. 속도는 쓰레기 양에 반비례한다. 생각보다 멈추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쓰레기가 많은 날 나온 걸까, 아니면 오늘따라 주위를 열심히 둘러봐서 쓰레기가 많아 보이는 걸까.      


  오늘의 목적지는 2km가량 떨어진 집 주변 공원이다. 공원에 도착해 쓰레기를 버린 후 다시 집으로 가는 길에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어린 시절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찾는다. 쓰레기를 줍다 보니 어떤 규칙 같은 게 보일 듯하다. 커피캔은 신기하게 같은 종류만 길에 버려져 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요즘 자주 찾을 수 없는데 바닥에 담뱃갑이 생각보다 많다. 나무 사이에는 마스크가 제법 걸려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43억 개 일회용 마스크가 사용된다고 한다. 그 양이 어마어마 한데,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그럴 거 같아 마음이 어두워진다.      

  처음 플로깅을 하다 보니 몇 가지 보완점이 느껴졌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의욕에 넘쳐 쓰레기를 주웠는데,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아졌다. 예상보다 많은 쓰레기도 한몫했다. 공원까지 가서 분리수거함이 있으면 버리고 오려고 했는데, 공원에는 쓰레기통 자체가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쓰레기를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 길에도 더 담았다. 살짝 무게나 나가는 짐을 들고뛰니 속도는 이미 포기해버린 지 오래다. 그대로 무거운 짐을 가지고 집에 와서 분리수거를 했다.


  왕복 코스에서 플로깅을 할 때에는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를 줍는다고 한다. 뛰고 나서 알게 된 요령이다. 갈 때는 뛰고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를 줍는 거다. 그러면 갈 때는 몸을 좀 더 가볍게 하고 갈 수 있다. 집게는 없어서 미처 챙기지 못하고 비닐장갑만 끼고 쓰레기를 주웠는데, 조금 달리고 나니 금세 장갑 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쓰레기를 만지는 기분이 좋을 리는 없는데, 땀으로 축축해진 비닐로 쓰레기를 만지니, 촉감이 그다지 좋진 않다. 그리고 일부 더러운 쓰레기들은 차마 비닐 낀 손이어도 촉감이 느껴질 테니 못 만질듯해서, 일단 지켜보고 제자리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집게를 구비해서 달리러 나가는 게 좋겠다.      

  오래 한 일은 아니었지만, 쓰레기를 주울 때마다 어제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길이 깨끗해지고 있으니까. 내가 다니는 동네가 조금 더 맑아지는 거니까.


  달리다가 쓰레기를 주우려면 잠시 멈추게 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삶에서도 가끔 주위를 둘러보고, 잠시 멈추면서 조그마한 의미를 줍는 일상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게 내 건강뿐 아니라 지구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뿌듯한 일이겠다.      


개인이 쓰레기를 치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요?

- 적어도 내가 지나온 길은
깨끗해지잖아요.

  짤막한 영상 속에서 한 청년이 웃으며 대답한다. 플로깅은 그 부담스러운 이름처럼 거창한 일은 아닐 테다. 대단한 환경주의자는 못되어도,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쓰레기통에 버릴 쓰레기를 줄이고 하는 것부터 조금씩이면 되지 않을까. 오늘 하루의 해프닝, 호기심 있는 일상으로 여기지 말고 자주 빈 봉지를 들고 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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