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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24. 2021

[11일] 첫 통밀빵 베이킹

빵을 구우며 생각한 것들


  오늘은 지난번에 우연히 찾은 동네빵집에 갔다. 베이커리에서 여러 종류의 빵을 구경하다 보면, 그 자체로 행복해진다. 대파스콘과 버터프레즐을 먹으며, 빵을 만드는 솜씨 좋은 사람들이 내심 부러워졌다. 아침에 자주 식빵을 먹는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해져 백색 밀가루 빵을 적게 먹고 있다 보니 통밀빵에 집착도가 높아졌다. 통밀빵을 주변에 파는 곳이 많지 않아서 사러 가는 것도 요즘은 꽤나 일이다. 간혹 빵이 떨어졌을 땐 통밀빵을 파는 가게를 헤매다 빈 손으로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빵은 언젠가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계속 미루고 있던 일이다. <삼시세끼>에서 이서진이 직접 만든 화덕에 구운 빵을 꺼낼 , 처음으로 빵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타지 않고 적당한 노란 빛깔에 한껏 부풀어 오른 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다고 만드는  엄두를  냈다. 나에게 적어도 빵은 정교함과 인내심의 복합체와 같았다. 그램 단위로 정확한 계량을 하고, 반죽을    시간 가량 재워두는 발효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빠른 속도로 뚝딱뚝딱 요리해서 적당한 맛을 구현하는 나의 요리 세계에서는 정교한 베이킹의 세계를 넘볼 수가 없었다.     

 

  필요한 장비도 많다. 오븐뿐 아니라 각종 조리도구가 여럿 들고, 한 번 만들면 대량으로 만들게 되기에 어떤 계기가 없으면 쉽게 시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간 빵을 소비할 생각만 했지 만들어 볼 엄두는 내지 못했었다. 그러다 ‘노오븐 베이킹’, ‘에어프라이어로 만드는 간단 통밀빵’에 눈이 갔다. 에어프라이어에 만들면 일단 간단하고, 대량 생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부담이 적었다. 재료도 간단했다. 이스트와 통밀가루만 있으면 되겠다 싶었다. 평소 사 먹는 통밀빵은 100% 통밀이 아니고, 당을 포함해 여러 첨가물도 조금씩 들어가 있어서 이번 계기로 단순한 재료로 순수한 맛을 만드는 게 건강에도 더 좋지 않을까 싶어 처음 베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통밀 베이킹 재료

통밀가루 200g, 드라이이스트 4g, 소금 2g, 생수 160g, 견과류 100g     


  드라이이스트는 37도 정도 미지근한 물에 잘 녹는다고 해서 온도계로 물 온도를 재고, 물에 녹여줬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나면 왠지 실패할 것만 같았다. 처음 만드는 빵인데 죽처럼 물렁물렁하거나 돌덩이 같은 빵을 먹을까 봐 내심 걱정도 됐다. 드라이이스트를 녹인 물에 통밀가루와 소금을 넣어 함께 반죽한다. 그리고 한 시간 가량 기다려준다. 한 시간이 지나니 빵이 꽤 부풀어있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기다림, 다시 기다림


  빵을 다시 섞어준 후, 견과류를 올리고 30분 정도 더 기다려 줬다. 그 사이에 빵은 조금 더 부풀어 있었다. 기대감도 조금씩 더 부풀어 오른다. 통밀빵을 안 먹어본 게 아닌데도, 그 맛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빵 위에 통밀가루를 살짝 뿌려준다. 체가 없다 보니 빵가루가 뭉쳐서 떨어진다. 도구의 중요성을 느끼며, 에어프라이어에서 25분을 돌려주었다. 다시 이어지는 기다림이다. 빵이 왜 비싸냐고 물어보면,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서라고, 그게 정성의 값이라고 대답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빵도 제 힘껏 부푸느라 애쓰고 있는 중일 테니. 에어프라이어 앞에서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시간은 제법 짧게 흘러갔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기대와 설렘은 커져간다.


  고소한 풍미가 부엌을 메운다. 빵이 거의 다 됐다는 건 냄새로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빵집 가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갓 나온 빵들이 뿜어내는 냄새 때문이기도 하다. 첫 빵을 꺼냈다. 모양이 제법 ‘빵’ 같다. 겉바속촉이다. 겉은 지나치게 바삭하고, 속은 지나치게 촉촉하지만, 견과류들이 맛을 잡아줘서 먹을만하다. 남편에게 시식을 요청했다. 가게에서 파는 빵을 같이 먹을 때보다, 표정과 반응에 기대가 크다. 맛이 괜찮네 라는 말을 억지도 받아낸 것 같기도 하지만, 하나를 더 집어먹는 걸 보니 살짝 안심이 된다. 앞으로 몇 번 덜 구워지거나 새까맣게 태우다 보면 더 맛있는 빵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재료는 간단하지만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빵을 만드는 시간은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한껏 부풀어 오르는 때가 있다. 발효가 되면서 그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을 테다. 그때 구워야 제대로 맛있는 빵을 즐길 수 있다. ‘모소 대나무’라는 나무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씨앗이 뿌려진 후 4년 동안 단, 3cm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5년이 되는 해부터 매일 30cm씩 자라, 단 6주 만에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룬다고 한다.


  미동도 없다가 단시간에 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4년은 깊고 단단하게 땅에 뿌리를 박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이 오면 불쑥 자라 그늘을 만들어 준다. 때론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무언가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바뀌고 있다고 믿는다. 조급해하는 대신, 그렇게 기다려주고 믿다 보면 비로소 훌쩍 커 있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기쁘게 즐기자.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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