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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by 심원 Oct 11. 2017

문제와 해결

원인과 결과를 제거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어떻게 지내요?’라고 물으면, 거의 ‘별일 없어요’라고 답한다. 물론 거짓말이다. 내 인생은 문제 투성이다. 알면서도 덮어두고, 모르는 척할 뿐이다. ‘내 인생의 문제 목록’ 같은 것을 만든다면 ‘버킷 리스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질 게 뻔하다.


그러나 글쓰기 관점에서 본다면, 문제 투성이 인생도 나쁘지 않다. 평생, 소재 고갈 걱정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끊임없이 생기고, 우리가 쓰는 진지한 글들은 대부분 자신이 현재 겪는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그게 아니면 달리 쓸 것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행여 글쓰기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해두자면, 글로는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며, 행동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글만으로는 의지와 행동을 만들어낼 수 없다.


글이란 게으른 자의 여가이며, 의지박약자의 자기 고백이거나 변명일 때가 많다. 더군다나, 글쓰기를 할 때, 한 껏 부풀어 오른 자아는 평소에는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기던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매우 심각한 것처럼 만든다. 이런 점들에 주의한다면, 글쓰기는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해줄 수는 있다.


우리는 부정적 결과를 불러오는 사건이나 현상을 ‘문제’로 인식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려면, 그 문제 때문에 어떤 불행을 겪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주거나, 사회적 지위와 위신을 떨어뜨리거나,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만들거나, 인간관계를 깨뜨리거나,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주는 사건 등이 언제나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글을 못 쓰는 것이 당신에게 엄청난 해를 끼치거나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사실 글을 못 쓰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 일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글을 못써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손해를 봐야 하는 사람에게 글을 못 쓰는 것은 큰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내 주요 고객인 고3 수험생들이 그렇다.


수업 시간에 ‘논술을 못하는 게 왜 문제입니까?’라고 물으면, 학생들은 ‘논술로 대학에 못 가요’라고 말한다. 부정적 결과를 확인했으니 이것만 제거하면 곧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운을 뗀 후, ‘논술로 대학에 가는 걸 포기하고 수능에 올인하세요. 그러면 논술을 전혀 못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당연히 반응은 썰렁하다.



①고3 수험생은 대부분 논술을 못한다는 문제를 겪고 있다. ②이 문제 때문에 그들은 원하는 대학에 못 갈 가능성이 높다. ③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논술로 대학 가는 것을 포기하면 된다.



①은 문제(논술을 못 한다)를 규정했고, ②는 문제로 인한 부정적 결과(논술로 대학에 못 간다)를 썼고, ③은 부정적 결과를 제거하는 해결 방안(논술로 대학 가는 것을 포기)을 썼다.


내 딴에는 진지하게 ‘논술 공부하지 말고 수능이나 하라’고 조언했는데, 학생들은 썩 내켜하지 않는다. 아무리 논리적인 해결 방안이라도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꽝이다. 수능으로는 답이 안 나와서, 논술이라도 해보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에게 ‘수능이나 하라’는 말은, 기껏 결혼정보회사에 찾아갔더니 결혼은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욕망을 이기는 해결방안은 없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는 욕망을 버리라는 식의 해결 방안은 금욕적 수도승에게나 어울린다. 욕망을 포기하는 극단적 처방이 아니라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정적 결과를 줄이거나 없애기 어렵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면 된다.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으므로 원인이 사라지면 문제 자체가 사라질 것이고, 부정적 결과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 방안이다. 원인 → 문제 → 부정적 결과의 연쇄는 문제 해결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틀이므로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썰렁한 농담은 교육적 목적을 위한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고 대충 둘러대고, 본격적으로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선언한 후, ‘왜 여러분은 논술을 못할까요?’라고 다시 묻는다. 여기서 ‘왜’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 질문이다.


학생들은 이런저런 답변을 하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원인 중 하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안 읽어서’다. 물론 오답이다. 나는 ‘그런 허황된 소리는 대체 어디서 들었느냐’라고 다시 묻는다. 예상했던 침묵이 흐른다. 나는 대략 5분 정도, 많이 읽으면 잘 쓰게 된다는 헛소리를 논파하는 데 사용한다. 그러면 학생들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는데 나는 이쯤 찬물을 끼얹는다. ‘안 읽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재능 부족, 글쓰기 방법 부족, 연습 부족이 글쓰기를 못하는 원인이라고 간략히 정리해준다. 특히 첫 번째 이유를 댈 때, 학생들은 술렁이고, 표정은 어두워진다. 사실은 사실이다. 다른 능력과 마찬가지로 언어 능력도 타고나는 면이 있다. 나는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식의 거짓말을 가장 싫어한다. 차라리 ‘너에게는 재능이 부족하지만, 노력하면 웬만한 수준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수준 이하가 훨씬 많기 때문에 그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게 낫고, 실제도 그렇다.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타고난 재능은 어쩔 것인가. 유전자를 바꿀 수도 없고, 뇌수술을 할 수도 없다. 재능의 차이는 글쓰기 능력을 가르는 근본 원인 중 하나이고 노력으로 바꾸기 어렵다. 모든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다. 슬프지만, 제거할 수 없는 원인이 가장 근본적 원인일 때가 많으므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거 가능한 원인에 집중해야 한다. 글쓰기 방법론 부족과 시간 투자 부족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 원인 분석을 포함해서 처음에 썼던 글을 좀 더 확장하면 다음과 같다.



①고3 수험생들은 논술을 못한다는 문제를 겪고 있다. ②이 문제의 첫 번째 원인은 타고난 재능 부족이다. ③두 번째 원인은 체계적 글쓰기 방법론 부족이다. ④세 번째 원인은 충분한 글쓰기 연습 부족이다. ⑤그 결과,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논술로 원하는 대학에 갈 가능성이 낮다. ⑥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논술 전형에 지원하지 않으면 되지만, 수험생들은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①은 문제를 규정했고, ②-④는 문제의 원인을 분석했다. ⑤는 문제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썼다. ⑥은 부정적 결과를 제거하는 해결 방법을 언급하지만, 그 방법을 선택할 수 없는 이유를 썼다. 여기에 ②-④를 뒷받침하는 설명을 추가하면 더 긴 글도 쓸 수 있다. 문제를 다루는 글쓰기는 원인을 분석하는 부분이 치밀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적절한 해결 방안이 나오게 되어 있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했으므로 이제 원인을 제거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결국 문제 해결이란 문제의 원인과 부정적 결과를 분석하고, 이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해결 방안을 제시할 때는 일반적 방향과 구체적 방법으로 구분하고, 해결 방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로 갑시다’가 일반적 방향이고 ‘KTX로 갑시다’가 구체적 방법이며, ‘KTX가 버스보다 빠릅니다’가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이다.


첫 번째 원인으로 제시한 타고난 재능 부족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유전자의 조합은 우연에 의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부모 탓도 아니다.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므로 운명의 여신을 탓하려면 그렇게 하라. 두 번째 원인은 체계적 글쓰기 방법론을 배우면 제거할 수 있고, 세 번째 원인은 글쓰기 연습 시간을 확보하면 사라진다.


뭔가 싱겁다. 모든 문제는 원인만 제거하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말로는 뭘 못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해결 방안이 있어도 실행하지 않으면 헛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므로 여기서는 해결 방안을 제시할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몇 가지 점만 언급하겠다.


모든 해결 방안은 또 다른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려장’을 도입하자는 해결 방안이 가능할까? 확실히 효과적이긴 하겠지만 확실히 미친 주장이기도 하다. 국가 전체의 복리를 위해 노인을 집단적으로 살해하겠다는 발상은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므로 폐기한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여성에게 출산을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미친 소리이긴 마찬가지다. 어떤 목적도 여성의 자유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이처럼 눈 앞의 문제만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로는 혹 떼려다가 혹 붙이는 수가 있다. 개인적 문제든 사회적 문제든 문제 해결 과정에서 예상치 않은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지 따져야 한다.


수험생 입장에서 논술 공부를 위해서 하루에 한 시간씩 투자하는 것은 부담일 수 있다. 다른 공부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논술 공부 시간을 늘리다가 다른 공부를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대안으로 수면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루에 30분 정도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그걸 활용하면 다른 공부에 큰 지장 없이 논술 공부 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해결 방안 역시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수면 시간을 줄이면 휴식 부족으로 전반적인 학업 능률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계속해서 해결 방안의 부정적 효과와 보완책(대안)을 생각하는 무한 반복에 빠진다. 귀찮아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결국, 문제 해결이란 더 작은 문제를 감수하고 큰 문제는 없애는 과정이다.


아래는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재구성했다. 수업 시간에는 구조를 외우게 만든다. 그러나 수험생이 아닌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①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논술을 잘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겪고 있다. ②이러한 문제는 논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 방법론을 모르고, 다른 과목에 비해서 시간도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③그 결과 수험생 대부분은 수시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잃는다.

- ①문제 ②원인(1,2) ③부정적 결과


④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첫째, 논술 문제를 해결하는 체계적 방법론을 배워야 한다. ⑤체계적인 방법론을 배우면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더 효과적으로 논술 실력을 향상할 수 있고, 출제의도에 부합하는 답안을 쓸 수 있다.

④-⑤해결방안 1


⑥둘째, 논술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⑦논술에서 요구하는 글쓰기 능력은 인간의 지적 능력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이다. ⑧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때만 실력을 향상할 수 있다.

⑥-⑧해결방안 2


⑨그러나 논술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으면 다른 과목 공부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다. ⑩따라서 논술과 수능을 함께 준비하려면 수면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⑪그러나 수면 시간을 너무 줄이면 피곤과 스트레스가 쌓여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학습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⑫그러므로, 수면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공부할 때 집중력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⑨-⑫해결방안의 한계와 보완



글쓰기의 한 방식으로 문제와 해결을 다루긴 했지만, 나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문제는 해결되는 게 아니라 연기(延期)되고 유통기한이 연장될 뿐이다. 해결이 지연된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어차피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문제 투성이며,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골머리를 앓다가 대부분의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한 채 골로 간다. 그러므로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물러서지 않고, 맞서는 태도를 유지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글쓰기는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 연습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하나 생각해보고, 위 예문의 틀에 맞게 8-10 문장 정도의 짧은 글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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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산논술, 스카이에듀, 연세대 논술지도사 과정 강사, 『청소년을 위한 종의 기원』(교육부 선정 우수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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