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선택한 이유
제과 제빵이라 하면 글자 그대로 빵과 과자를 만든다는 의미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것을 배우기 위해서 떠난다면 어디를 향하실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열 중 여덟은 ‘당연히 근본인 프랑스지!’라고 대답할 것이라 장담한다.
프랑스의 제과 기술은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업장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들은 대부분 불어로 구성되어 있다. 하물며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바게트, 크로와상, 마카롱 등 일상 속에 녹아있는 녀석들도 프랑스의 전통적인 빵과 디저트들이다.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이 글의 제목을 본 독자들은 ‘왜 굳이 프랑스가 아닌 일본으로 빵을 배우러 가는 거지?’라고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성격유형테스트 MBTI의 T가 80퍼센트를 차지하는 극 현실주의인 인간이다. 즉, 유학이라는 꿈에 이상을 품기보단 현실적인 부분을 더욱 고려할 수밖에 없는 냉철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기상을 해 유럽풍의 아름다운 빵집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와 함께 갓 나온 빵을 에펠탑을 바라보며 함께 즐기기엔 ‘자본‘과 ‘시간’이 부족했다. 내 나이 스물여덟. 주변 지인과 친구 녀석들은 이미 부랴부랴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 연명을 하는 중. 사실 사회적 관념으로 따지면 이들이 맞다. 그러기에 더욱 똥줄이 타는 상황. 만약 ’ 우리 아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돼! ‘라는 말을 듣고 자란 대대손손 재벌집 아들이라면 걱정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은 이번 생엔 일어나지 않았다.
부모님께선 경주에 10년 넘게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계신다. 개업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입소문을 타고 꽤나 흐름을 탔지만 타오르는 불씨는 언젠가 사그라지기 마련. 결국 형제 중에 가장 오래 가게에서 일했던 본인이 불씨를 다시 지피려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프랑스의 왕복 티켓료는 적어도 140만. 한국에 비해 높은 물가. 심지어 동양인의 대한 인종차별의 사례도 많은 그곳에서 몇 년간을 살아남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고 찾아본 끝에 대체품인 일본이라는 가깝고도 먼 땅을 선택했다.
동양의 프랑스라고 불릴 만큼 못지않은 제과 제빵의 기술력을 갖춘 일본은 진하고 농후한 맛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제과와 달리 설탕을 적게 사용해 섬세하고 가벼운 맛이 특징이다. 특히 평균 수명이 늘고 있는 고령화 시대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웰빙적인 빵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일본식이 걸맞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스무 살 입대를 하기 전 오사카 여행으로 끝인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낯선 땅이었다. 심지어 해외여행도 혼자 가 본 적이 없는 나로선 꽤나 크나큰 도전이었기에 하루빨리 일본어를 몸에 익힐 필요가 있었다.
서울로 급하게 올라가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종로에 있는 학원을 다니며 일본어 능력 자격증을 땄다. 결코 쉽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한국어와 비슷한 발음과 어순이 같은 점이 그나마 지독한 한자로부터 벗어나 여유를 잠시 챙길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언어다.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만큼 빨랐던 서울에서의 만남과 추억을 뒤로하고 나는 드디어 빵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