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리터러시: 열여덟 번째 이야기
현실은 아닌데
7세가 되던 어느 날 집마당으로 나가는데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님 등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꼈다.
마치 이 시기는 매슬로우가 말한 사랑과 소속의 욕구가 충족되는 단계였기에 가족과 사회가 내게 쏟아주는 관심이, “나는 중요한 존재다”라는 믿음을 만들어주었다.
20대가 되자 세상은 끝없는 무대처럼 보였다. 도전할 수 있는 산은 무수했고, 나는 그 산을 하나씩 오르며 성취와 성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성과와 칭찬은 나를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는 열쇠 같았다. 이 시기의 나는 존경과 자존감의 욕구 속에서 살아가며, 끊임없이 더 높이 올라가려 애썼다.
하지만 쉽게 오르지는 못했다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 시작했다. 취업과 이직을 동시에 제일 많이 고민했었다.
이를 통해 마주한 것이 30대 현실의 벽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불안이 찾아왔다. 이때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불안은 자유의 어두운 가능성이다.”
내가 느낀 불안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는 자유의 징표였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나인가”라는 질문은 괴롭지만 동시에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했다.
40대에 들어서자 나는 결국 배움과 성장을 붙잡게 되었다. 더 이상 세상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고, 또 나답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계속 배우는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였다.
“나는 왜 불안한가?”
“나는 무엇을 위해 배우고 있는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며 자기 인식을 윤리적 성찰과 지혜의 근원으로 본 것처럼 끊임없이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질문과 대화를 통해 내 자신을 이해하려 했다.
성장의 본질은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속도를 자각하며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난 성장보다 안정을 택했다.
앞으로 50대는 어떻게 보낼까
아직도 자아실현이 안된 거 같은데, 매슬로우가 말한 초월적 욕구(transcendence) 단계로 이동할 수 있을까
배움과 성장은 개인의 생존을 넘어, 후배·자녀·사회와 나누려는 형태로 성숙해질까. 하지만 보이는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의 주인공 의식은 나를 세상에 뿌리내리게 했고,
20대의 무한한 욕망은 도전의 불씨가 되었으며,
30대의 불안은 자기 인식을 향한 문을 열어주었고,
40대의 배움은 살아남는 길이자 나다움을 지키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50대와 60대에는 이 모든 경험이 모여, 나를 넘어 세상과 연결되는 성숙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안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천천히 걸으며, 나의 속도와 나 자신을 인식하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가 아니라 내가 끝까지 놓지 않을 내 안의 자기 인식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