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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젠틀리 Oct 14. 2024

진실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될 때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샐러드그릇 같은 미국에서 자아를 찾고 있던 나에겐 롤모델이 필요했다.


내 눈에 멋져 보이고 닮고 싶은 어른들을 마주칠 때면 그들이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을까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떡잎부터 우월해 일찍부터 구별된 삶을 살았을까, 일탈이라곤 없이 성실하게 모범생 외길을 걸어온 걸까... 아님 싹수가 노랗다고 모두들 혀를 차는 트러블 메이커였지만 이후 거듭난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상상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여유롭고 능숙해 보이는 어른들도 자아와 소속감을 찾아 방황하며 흔들리기도 했을 십 대의 시절을 지나왔을 거란 거다.   


고유한 자신을 찾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길 열망하는 사춘기. '십 대'라는 커다란 공통분모를 가진 학생 무리 한 덩이는 각자 보이는 특징에 따라 소그룹으로 분류되곤 했다. 개성이 넘친다는 미국 학생들도 예외 없이 스스로를 카테고리화해 네 그룹으로 나뉘는 걸 목격했다.


1) goth:  창백한 얼굴 스모키 눈화장, 검은 계열의 옷, 어두운 분위기의 예술가 느낌이 난다.
2) nerd: 관심 분야가 뚜렷하고 두각을 나타내며  수업 마치기 1분 전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를
             당당히 외칠 용기가 있다.
3) prep: 트랜드에 민감한 인기남 인기녀. 학교 유행을 선도한다.
4) Jock: 운동에 심취해 있고 그 외에 것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normie: 위에 언급한 네 그룹에 속하지 않는 무난함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시절 나를 나타내는 명사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나는 동양인이다. 사회적 인종적 고정관념을 거침없이 풍자하던 미드 glee에서 동양인 배우 두 명의 극 중 별명이 Asian (아시아인) 그리고 another asian (또 다른 아시아인) 이였을 정도로 미국에서 동양인의 존재감은 잔잔했다. 나 역시 겉모습은 조용하고 모범적인 한 명의 이방인이었으나 내적으론 우울하고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goth가 분명했다. 


여느 십 대 소녀처럼 관심과 사랑에 목말랐고 무언가에 뛰어나 인정도 받고 싶지만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는 삶이었다. 그럼에도 아주 막연히... 먼 미래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게 그런 봄날의 햇살 같은 미래가 찾아와 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학생들의 학업이나 일상생활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상담교사가 두 명 있었고 나의 담당자는 오웬스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졸업반 아들,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의 딸을 가진 워킹맘이기도 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며 공식적인 의무는 끝이 났지만, 그분은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해 주는 인자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우리 가족이 오하이오주를 떠나던 마지막날까지 함께해 주었다.


큰언니가 대학교 1학년, 둘째 언니가 고등학교 12학년(한국의 고2), 내가 10학년(한국의 고1)을 2-3개월 남겼던 시점 부모님은 메릴랜드로 거주지를 옮기기 위해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먼저 이동을 했다. 큰 딸들 세명은 오하이오에 남아 부모님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오웬스 선생님은 기꺼이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때는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세상이 뜨거웠지만 (미국에선 축구가 비인기 종목이었던지라 미국인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선발대로 떠난 부모님이 큰 짐을 모두 가져가 최소한의 짐만 남은 오하이오에선 경기를 볼 TV가 없었다. 전학을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점검해 주고 우리의 안부를 살피러 온 오웬스 선생님에게 지나가듯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를 못 보는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음 경기는 우리 집에 와서 보는 건 어때? 리타스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에 가면 딱이겠다!"


"정말요? 정말 그래도 돼요?"


선생님은 특유의 얼굴 가득 번지는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파자마도 잊지 말고 꼭 챙겨 오렴~"


성인이 된 지금 돌아보면 그때 선생님이 건넨 초대장은 실로 엄청난 제안이었다. 사적인 관계라면 몰라도 이렇게 공적인 관계도 얽혀있는 상황에서 집으로 초대해 잠까지 자고 가라 하는 건 고소의 나라 미국에선 절대 흔한 상황이 아닐뿐더러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도 지겠다는 선생님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마침내 오하이오를 떠나던 날, 오웬스 선생님은 진보라색 하늘 위에 별이 쏟아지는 표지의 카드를 내게 전해주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타샤,
이제껏 너무나 많은 어려운 장애물들을
다 이겨내고 이 자리에 왔구나.
너의 반짝임을 보고 있으면
저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생각난단다.
네 미래는 너무나 밝단다.
모든 게 잘 될 거야.
오늘 여기 서있는 강인한 너 자신을 믿으렴."



카드 내용을 한번 읽고 두 번 읽었다. 읽고 또 읽어서 내용을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자꾸만 꺼내 보고 싶었다.

그 글들이 살아서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던 건 예쁜 말을 영혼 없이 나열한 빈말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적은 선생님이 진심이 내 마음에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일 거다.  음침하고 보잘것없던 나 스스로가 꼴 보기 싫은 청소년기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반짝인다고 했다. 이 카드는 이후 오랫동안 내가 거처를 옮길 때마다 함께했다.  


 


 

대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고 한국에 귀국해 초등학교 원어민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그날의 수업일정을 마치고 맞이한 연구 시간. 숨을 고르며 조용히 앉아있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가 진짜였구나. 내게 맡겨진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가슴 시리게 소중했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단 사실에 행복했고 웃음이 났다.  


늘 눈물이 고여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십 대 소녀는 즐거움으로 항상 웃는다는 상장을 받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직장에서 퇴근을 하면 항상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내일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만나는 모든 아이들을 내게 허락해 주신 모든 것으로 아낌없이 사랑하게 해 주시라고. 그렇게 있는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시라고.


과반수의 학생들과의 시간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실력이나 수업에 임하는 태도에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학생들을 마주할 때도 있었다. 그때 드는 낙관적인 생각에 스스로 놀라버리는 날들도 있었다.


내가 보는 저 아이의 모습이 마지막이 아니야.
내가 최선을 다해 물 주기를 멈추지 않으면
저 아이에게 맞는 타이밍에
꽃을 피울 거야.   



내 마음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이 생각엔 시작점이 되는 씨앗이 있기 마련이고 씨앗이 있다면 뿌린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 내 마음속 전광판에 웃고 있는 오웬스 선생님의 얼굴이 가득 떠올랐다. 





우리가 받았던 사랑이 진실되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은 그 인연이 지나가고 나서 꽃처럼 피어난 자신을 마주할 때가 아닐까. 사랑이 담겨 있어 곱씹을수록 따뜻해지는 그 말은 오래도록 살아서 우리를, 또 우리가 만나는 새로운 누군가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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