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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젠틀리 Sep 23. 2024

아빠를 적어 보내


2024년 8월 8일 늦은 밤,  아빠가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았다. 내가 자란 미국에서 10,000km 이상 떨어진 한국에 정착한 지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각에 아빠와의 마지막 기억들이 물밀듯이 몰려왔고 이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렇게 헤어지게 될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친절할걸...

외롭게 와서 외롭게 가시는구나...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 없이 자라나 딸 다섯 명의 양육자가 되었던 아빠.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좋은 아버지의 역할이 어떤 건지 잘 모른다며 사슴처럼 슬픈 두 눈을 깜박이던 아빠. 그런 아빠를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다는 가슴을 파고드는 후회에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 곁에 머무는 건 인터넷 어디에선가 봤던 그림처럼 선인장을 끌어안고 피를 철철 흘리는 아이가 되는 것과 같았다. 가시쯤엔 아무 타격 없을 만큼 단단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나는 아빠에게서 점점 멀어졌고 이제는 죽음이란 사건으로 영영 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아빠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가능한 방법을 찾으려 이젠 많이도 흐려진 기억들 사이사이를 더듬었다. 아빠와 추억의 장소라 찾아갈만한 곳도 가만히 바라보며 회상할만한 사진도 몇 장 남아있질 않았지만 아빠와의 시간들은 기억창고 속에 머물고 있었다. 열심히 뒤져봐도 미소 지을만한 에피소드는 몇 편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겨우 잦아들었던 울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조개가 자신 안으로 들어온 이물질을 뱉어낼 수 없을 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물질을 겹겹이 싸는데 이것은 시간이 지나 진주라는 보물이 된다. 이런 연유로 사람들은 진주를 '조개의 눈물'이라 부른다. 나 역시 삶에서 쉽게 분리될 수 없는 가족과의 관계를 소화해내며 현재의 나를 만났다.


Unsplash의Marin Tulard


난 아빠를 떠나보내는 수많은 방법 중 글쓰기를 선택했다. 내가 참 좋아했던, 하지만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글쓰기가 쓰린 기억들도 가장 나다운 색을 뿜어내는 예쁜 진주로 탄생시켜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평소 난 누군가의 얘기를 들을 때면 열심히 경청하다 상대의 핵심문장을 새로운 유사어로 갈아입혀

"하려던 말이 이 말이 맞아요?" 확인하듯 되묻곤 했다.  


상대가 "찰떡 같이 알아들었구나~ 내 말이 그 말이야!" 강하게 고개를 끄덕여 컨펌해 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조심스러운 눈인사만 주고받던 이웃과 친해질 결심으로 혼자 먹기 아쉬운 맛도리 간식을 옆집 문 앞에 놓고 온 다음 날. 다시 돌아온 간식통과 나란히 놓인 귤 두 개에 담긴 정을 발견할 때처럼 비무장한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갔음을 확인하는 '공감'을 참 좋아하는 나였다. 글로 표현한 내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의미 있게 전달되며 소통할 때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대화나 전화로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지만 편지나 글을 통한 소통은 내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긴장해 말을 더듬을 필요도 없고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표현 대신 천천히 고심해 단어를 선택할 수 있고 다시 돌아가 수정도 할 수 있으니까.


아빠와 나의 관계, 그리고 아빠가 내게 선물해 준 미국에서의 시간은 사랑이었고 미움이었으며 상처였으나 성장이었다. 글로 천천히 풀어내는 이 복잡 미묘함이 이 글을 찾아준 이의 마음에도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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