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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egently샤인젠틀리 Sep 16. 2024

프롤로그

어떤 것도 하나의 의미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 Unsplash의 Kelly Sikkema11



"나는 커서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는 꼬마.


'우리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해 줄 남자'를 원한다는 가수 Jax(젝스)의 노랫말처럼

아빠와의 좋은 관계가 오랫동안 이어져 성인이 된 딸.


"가정에서 사랑 듬뿍 받고 자라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이상형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연은 결국 약점이 되니 최대한 감추고

"귀하게 자란 이미지를 만들라."는 어느 연애전문가의 조언.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시무룩 해졌던 건  내가 자란 가정이 화목했을 때보다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훨씬 강렬하게 마음에 남아서일테다. 많은 부부들이 경험하듯 부모님의 성격차이는 컸다. 서로 소통하려 할 때 어긋남의 빈도는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곱하기 나누기를 하는 학생에게 미적분 문제를 풀라고 요구하는 상황처럼 낯선 나라에서 겪는 불화는 풀어가기에 더욱 복잡했으며 가족 모두에게 더 깊은 부상을 입혔다. 상처를 돌볼 새도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고개를 우리 다섯 자매는 성인이 되어있었다. 세월 앞에 쇠약해진 아빠는 뇌질환으로 급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아빠의 죽음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 나는 휘청거렸다.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가득한 daddy's girl (아빠바보인 딸)은 아니지만 아빠와 관련된 기억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아픈 것은 아팠다고 감사한 건 감사하다고 표현하며 잘 매듭을 지어 간직하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지나온 과거를 떠올리며 재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아프게만 기억했던 일이 온전히 아픔으로만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고통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들이 존재했다. 아픔에 매몰되지 않도록 나를 건져 내주었던 구원 같은 순간들과 인연들은 아픔이 없었다면 애초에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그 찰나의 순간들을 담아 선물한다. 


옆자리를 내어드리니 함께 앉아 당신의 기억도 돌아보며 웃음 지을 수 있기를.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상처가 있다면 봉합되고 아무는 기적을 우리가 공유할 수 있기를  




아픔을 겪어야 시작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지금 아프다면 너의 계절이 오는 거야
 
신승훈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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