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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Nov 17. 2022

감자 줄기에 토마토가 열리면 생기는 일

까똑!

이른 아침부터 엄마의 카톡 단톡방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카톡은 내 기준으로 새벽 시간인 7시를 전후해서도 날아드는데, 엄마 나이의 어르신들에겐 이미 하루가 시작되고도 두어 시간이나 지난 후이니 일상적인 일이다.


엄마의 단톡방 수로 말할 것 같으면 사회생활하는 나보다 많을 정도로 많다. 그중 내 기준에서 가장 웃긴 방은 걷기 앱 방이다. 걷기 앱에서는 매일매일 다양한 상품/서비스에 관한 퀴즈를 내고 맞히면 포인트를 주는데, 누군가 먼저 보고   정답을 알아냈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정답을 알려 주는 거다. 말하자면 할머니들의 앱테크 지식공유 플랫폼인 거다. 


이 앱에 진심인 엄마는 한 문제를 맞혔는데 10원도 안되면 혼잣말로 투덜거리신다. 그래도 특유의 꾸준함으로 하루 100원 남짓의 포인트를 모아 3만 원 남짓의 치킨을 당당하게 쏘겠다고 선언한 날! 엄마가 가장 실속 있다고 여기는 카톡방은 이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후 경쾌한 카톡~ 소리와 함께 사진이 한 장 날아들었다. 이번엔 이해관계가 없는 조금 더 친밀한 지인들의 방이다. 지인에게 받았다는 사진 한 장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확대해서 보던 엄마가 신기하다는 듯 속삭였다.


“배추에서 무가 나는 거하고 비슷한 이치 아닐까?”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배추에서 무가 난다니 뭔 뚱딴지같은 말인가! 급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떻게 배추에서 무가 나느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가 사진을 보여 주며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옛날에 한 농산물 연구원이 배추에서 무가 열리는 씨앗을 개발했었다고 했다. 엄마 기준 옛날이야기이니 수십 년이 흘렀을 터라 검증할 수 없고, 농사로 치면 경험자인 엄마를 따라갈 수 없으니 고분고분 듣고 있을 수밖에.

엄마 친구분 이야기는 이랬다. 글쎄 분명 감자 씨앗을 사서 심었는데, 감자 줄기에 난데없이 방울토마토가 열렸다는 것이다. 


“정말? 그게 가능해?”

“나도 한번 보여줘 봐!”


사진을 보니 아직은 초록빛을 띠고는 있지만 동글동글한 방울토마토 모양 드대로였다. 한참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있는데, 문제의 그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잔뜩 상기된 목소리가 휴대폰 스피커를 뚫고 들려왔다. 엄마의 호응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와! 진짜 신기하네~”

“분명 감자를 심은 게 맞다는 거지?”


“그럼 이거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해야겠네!?”

“한번 캐봐! 땅 밑에서는 감자가 나고, 땅 위에는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제보 감이야!”


엄마의 호응에 제대로 신이 난 지인은 그렇게 생긴 게 네댓 폭은 된다며, 그중 한 개를 직접 캐서 밑에 감자가 열렸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와! 이건 솔로몬 저리 가라 하는 판단력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렇게 신기한 일이 어디 그리 쉽게 벌어지나. 지인 아주머니가 감자를 확인해 보기도 전에 엄마가 갑자기 무언가 큰 깨달음이 온 듯 무릎을 쳤다.


“아~ 생각났다.”

“방울토마토처럼 생긴 열매는 토마토가 아니네~”

“감자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맺는데 바로 그 열매였어”


감자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열매가 맺는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엄마는 수십 년 전 어린 시절 감자 열매가 대롱대롱 달렸던 모습을 기억 속 저편에서 끄집어내셨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까지 할 뻔했던 '토마토가 열리는 감자' 스토리는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오늘도 난 엄마 덕에 혼자서는 절대로 상상할 일 없는 ‘토마토가 열리는 감자’를 잠시 상상했고, 어르신 두 분이 만들어내는 시트콤 한 편을 보았다.

 

처음으로 천진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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