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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ug 10. 2024

또 하나의 TMI가 있었으니

비움의 미학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본능이라지만, 이건 좀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2층 상가에 학원이 나가면서 철거작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7평짜리 상가 두 칸을 통으로 연결해서 미술학원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미술학원이라지만 아파트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심지어 본인 소유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사방팔방 두터운 가벽에 몰딩에 벽지에 페인트까지 온갖 미술적 기능을 다 펼쳐놓은 모양이다. 통유리 안팎으로 각목에 합판에 석고보드 두 장에 타일까지 붙여서 벽을 만들어 둘러놓았다. 중간에 이중창 유리까지 껴서 옴팡지게 꾸며 놓았다. 싱크대까지는 좀 크더라도 그럴 수 있다지만, 솔직히 변기는 너무 했다! 심지어 두 개다. 반대쪽 끝에 위치한 상가 화장실과도 거리가 꽤 먼데 오수 배관을 과연 어떻게 공사했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화장실에 샤워기에 싱크대에 세면대까지 수도 배관이 가장 걸림돌이다. 철거작업을 하다가 누수라도 생기면 정말 난감하다.


뜯고 뜯고 또 뜯고 밤 늦게까지 하염없이 뜯어도 끝이 안 보인다. 융단폭격으로 쏟아부어놓은 못만 가득하다. 인테리어를 맡았던 목수가 자신이 가진 온갖 기술을 여기에 때려 부은 모양이다. 이건 정말 투 머치 인테리어(TMI)가 아닐 수 없다. 인테리어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나 역시 인테리어를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비움의 미학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 모든 건 결국 쓰레기가 된다. 약속된 기한은 다가오고, 하필 대부분 휴가를 떠나는 시즌이라 인력도 역부족이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며 철거를 할 수는 없다. 목재는 그나마 톱밥을 만들거나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태울 수도 없다. 불에 타는 재질도 아니다. 결국 매립해야 할 것이다.


벽에서 뜯어낸 자재들을 폐기물 봉투에 담기 위해서 망치를 든다. 지금 내가 때려 부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허영심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부터!

  




쓰레기를 만드는 유일한 존재, 인간!


자연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는 폐기물을 생산하고 누적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면서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너무 당연해서일까? 끊임없이 너무 많이 만들고 너무 많이 사고 너무 많이 버리고 또 사고, 너무 많이 소유한다. 심지어 있는지도 모르고 또 사고 까먹고 쌓아놓는다. 우리는 어쩌면 어느 한 구석은 모두 잉여인간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각성했다. 귀찮게 여기지 말고 분리수거 명확하게 하고 텀블러라도 잘 챙겨 다니자! 쓰레기를 단 한 개라도 덜 만들자. 할 수 있는 최소한이라도 꾸준히 실천하자, 제발! 나부터 나 한 사람이라도.


100대 1로 싸우고 돌아온 듯 사수도 조수도 팔다리에 온통 스크래치 투성이다. 오랜만에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


쓰레기도 줄이고, 글도 이만 줄인다.

그리고 지구야, 오늘도 미안하다.



아직도 한참 멀었습니다. 휴가도 없고, 연재와의 약속도 친구와의 약속도 못 지키고 있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쓰레기 빙산의 일각!


"딱 그만큼 저금하듯, 나의 대비!"



20년 후에도 썸머는 마스크를 써야 안전하다고 느낄까? 나의 세상은 썸머가 없었던 때와 썸머가 존재하는 때로 나뉜다.

썸머를 생각하면 미래를 무한하게 긍정하고 싶다. 팬데믹, 미세먼지, 전염병, 홍수, 침수, 가뭄, 꺼지지 않는 산불, 식량난, 기후 난민, 토양오염, 해양오염, 종의 멸종처럼 암울한 일들로 가득한 미래가 아니라… 탄소 중립 실현, 미세먼지 없는 대기, 자연 분해 플라스틱, 재생에너지, 수소에너지, 전기자동차, 대체 식품 등으로 채워질 미래를 상상하고 싶다. 엄마 아빠에게는 낯설지만 우리에겐 당연해질 것들을 사람들이 계속 만들어낼 거라고 믿고 싶다.

- <쓰게 될 것>, 최진영



※ 본래 TMI는

너무 많은 정보,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정보를 의미하는, Too Much Information)의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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