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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Sep 01. 2024

좀비 집수리 기동대

고생값


일요일 아침,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수는 벌써 나가고 없다. 지난밤에 다급히 변기에 물이 샌다고 수리를 요청해 오는 의뢰인이 있었다. 휴일에도 언제나 아침에 딱 한 건만 처리하고 오겠다고는 한다. 지켜진 적은 없지만, 뭐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주 7일을 모두 일하는 데에 이제 너무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아무래도 '좀비 집수리'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도 짙은 진을 던졌더랬다. 조수는 더 이상 잔소리하거나 속상해할 힘도 남아있지 않다. 그만큼 지나치게 열심히 일한 8월 한 달이었다. 


하필 오늘은 사수의 생일이기도 하다. 며칠째 돌보지 못한 살림이 결국 나를 일으킨다. 사수가 돌아오면 늦은 아침이라도 미역국은 먹여야지. 일 년에 한 번인데. 사수는 존경의 영역이지만, 남편은 사랑의 영역이니까. 누가 더 사랑하나 증명하는 데에는 지고 싶지 않다. 냉장고를 아무리 탈탈 털어도 미역 밖에 없다. 미원도 없어서 마음만 넣고 끓였다. 참기름과 국간장으로 달달 들들 볶았다. 미움은 안 넣었다. 짤까 봐. 불을 줄이고 뭉근하게 좀 더 끓도록 둔다. 아차, 말린 표고버섯이 있었는데! 소고기 대신 그거라도 넣을 걸. 뒤늦게 생각이 난다. 사수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설거지와 빨래를 마저 한다. 국물이 맛있게 깊어간다.


집에 거의 다 오고 있다고 예상보다 일찍 메시지가 왔다. 노쇼란다. 찾아갔는데 아무도 답이 없더란다. 설마?! 아니, 급하다며?! 이게 끝이 아니다. 집에 다 돌아와서 주차 중인데 의뢰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단다. 소리를 들었다고, 지금 다시 와달라고. 시간약속을 해놓고 왜 못 들었을까? 사수는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다시 출발했다. 미역국이 찌개를 넘어 조림이 되어 짜다. 물을 사발은 부어야겠다. (심의기준을 준수하여 자체 필터링으로 험한 말은 생략하겠으나, 우리의 상상력은 알아서 음성지원이 가능하다. 참고로, 흥분하면 전라도 버전이다.)


당신의 휴일과 아침이 귀한 만큼 우리의 휴일 아침도 똑같이 귀하답니다.




8월 한 달 동안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극한의 육체노동을 해내며 거의 유체이탈의 경지까지 다다랐다. 더위를 먹었는지 현기증이 계속되었다. 고된 일에 잘 먹어야 한다는데, 그나마도 없는 식욕에 입안이 온통 다 헐어서 일주일 가까이 뭘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일이 제대로 안 풀리거나 작업 중에 자재나 도구가 필요하면 또 네다섯 번이라도 왔다 갔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여기저기서 전화문의가 오면 또 상담을 하고, 시간을 쪼개서 방문예약을 하거나 도저히 시간이 안 되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좀비 집수리를 넘어 이 정도면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집수리 기동대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왜 적당히 좀 쓰러질 줄을 모르는 거야? 사수는 좀비가 확실하다.


하루는 새벽까지 사수와 나란히 작업을 하면서 물었다. 도대체 왜 이걸 다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해 줘야 하느냐고.    

  

사수는 돈은 더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돈에 얽힌 피 땀 눈물, 욕망, 원한과 비겁을 상쇄시키고 멸하기 위해서는 직접 몸으로 겪으며 그에 상응하는 만큼 고생의 값을 치러야 한다고.


이꼴저꼴 드러운 꼴 많이도 겪고 보고 했지만, 새삼 돈은 참 더럽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구나. 그런데 그 사수에 그 조수 아니랄까 봐 왜 그 길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더니 편하게 살기는 글렀다.


  


청개구리와 대화하는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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