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일한 지 열 달만에. 가장 궁금했던 바로 그 질문을 현장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전문가에게 직접 물을 수 있었다.
“선생님 같은 일을 하려면 무슨 공부를 해야 하나요?”
“아, 상담에 관심 있으시구나. 상담대학원을 다니시면 돼요.”
여러 다양한 부서들이 있지만, 내가 꾸준히관심이 가는 곳은 바로 상담팀이었다. 그중에서도 전문 상담사로 계시는 두 선생님을 뵈면 그 질문을 하고 싶어서 늘 입이 간질간질했다. 하지만 경솔하고 성급해 보일까 싶어 꾹 참고 때를 기다렸다. 사무실이 달라서 오고 가며 아주 가끔 마주칠 때가 있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있거나 막상 질문을 하기에는 타이밍이 적절치 않았다. 그분들을 뵐 때마다 특히 뭐랄까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랄까 다가가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내가 동경하는 마음이 커서 미화시켜 바라보는 환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열 달을 지켜보며 기다리지 않았는가. 그분들의 한결같은 태도에 무장해제해도 안전하다고 느낀 다음에야 나는 입을 뗄 것이다.
마흔 이후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이 뜻이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마흔 중반에 다다르는 동안 내가 몸담고 일하거나 오래 머무는 공간의 분위기, 만나고 어울리는 관계들 속에서 맺는 언행과 태도, 내가 품고 행했던 마음가짐이 켜켜이 쌓이고 물들어 나의 눈빛과 인상을 빚고, ‘나’라는 존재의 결과 분위기를 스스로 지은 셈이니 숨길 수 없고 에누리 없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찾아보기 정말 어려워진, 어쩌면 소멸 위기에 처한 ‘신뢰’라는 단어를 떠올려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 나 자신과 주변을 한 번쯤 돌이켜 보게 된다.
어제는 때마침 혼자서 회의실 한 켠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상담사 선생님이 물품을 챙길 게 있어서 오셨다가 마주쳤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돌려 눈을 맞추고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불쑥 그 질문이 튀어나왔다. 아주 짧은 마주침이었지만, 나는 이 분을 믿어도 괜찮다고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갑작스러운 뜻밖의 질문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으시고, 그 잠깐 사이에도 꽤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가까운 곳에 있는 상담대학원도 알려 주시며, 아직 젊으니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격려도 해주셨다. 자신도 다른 일을 하다가 꽤 늦게 공부를 했노라고. 학교에서 성교육 강의를 하시다가 학생들이 자꾸만 이런저런 상담을 요청해 와서 들어주다 보니 ‘이렇게 해도 맞나?’ 싶은 생각이 들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물론 현실적인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끊임없이 계속 공부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고. 사회 변화 흐름에 맞춰 가족이나 공동체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같은 주제라고 해도 내담자마다 케이스도 워낙 제각각인 것은 물론이고, 힘든 만큼 상담 업무 종사자들 역시 꾸준히 케어를 받을 필요성도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무엇보다, 상담대학원을 가면 첫해는 자기 자신과 직면해야 한다고. 자신을 파헤치고 분석하고 풀어내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만 한다고.
병원 상담과 일반 상담의 차이는 ‘약물’을 쓰느냐 아니냐의 차이라는 것도 이번에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내담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할 수는 없고 병원 치료 후 후속조치로 일반 상담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상담에 대해 궁금하고 공부가 하고 싶을까?
어떤 분야의 공부가 하고 싶은 계기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 결국 중이 제 머리를 깎고 싶어서다. 자신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고, 자신이 처한 문제를 이해하고 싶고 스스로 해결하고픈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를 서술하고 나열하다 보면 숨이 좀 쉬어지고 길이 좀 보이지 않을까 해서. 결국 좀 더 이해하는 쪽으로 걷고 싶어서. 그리고 그 시작은 나를 위함이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누군가를 돕고 싶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마음은 기울어 흐르는 것이니까. 마음이 흐르는 쪽으로 문이 열리고 길이 나는 것이 순리이니까.
물론 알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는 걸. 정말로 그 공부를 하게 될지 어떨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당연히 쉽지 않으니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일 게다. 게다가 관심이 있고 좋아한다고 해서 잘한다는 의미도 결코 아니다. 해봐야 안다. 문 밖에서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직접 그 안에서 부딪히는 현실은 또한 전혀 다르기도 하니까.
분명한 건, 타인의 선의와 친절 덕분에 오랜 궁금증 하나가 풀렸다는 사실이다. 고마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