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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Nov 26. 2024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소득 크레바스


이곳에서 일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이 글도 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재계약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었다. 마침 오늘 우리 팀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며 다들 분위기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년에 센터가 아주 멀리 이사를 가기로 되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선생님들도 많고, 남아있는 육아휴직을 쓸까 생각 중이라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나는 고심 끝에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센터가 이사를 가게 되면 기간제로 다니기에는 왕복 40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로 너무 무리가 되는 이유가 가장 크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따지고 계산했다. 이럴 때 보면 참 냉정하고 영악하기 그지없다.


2024년 올해를 돌이켜 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기억될 한 해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난 일 년동안 나는 나를 이곳에 묶어두고 아무것도 아닌 나로, 어떠한 이름도 권한도 없는 그래서 또한 어떠한 책임도 무게도 지닐 필요가 없는, 힘을 발휘할 필요도 없는 나로 최대한 단순하게 웅크리고 버텨냈다. 마지못한 움츠림이 아니라 굴기(倔起)를 위한 웅크림의 시간이었고, 이곳은 나 자신을 정비하고 회복하는 퀘렌시아가 되어주었다.


완전히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무소속의 내가 되기 위한 과도기로서, 오래도록 몸에 밴 소속감이 아직은 필요했던 나는 그래도 조금은 안전해 보이는 이곳을 선택했고 처음 목표로 했던 단 한 가지,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1년이라는 경력을 얻는 것에만 주력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아직은 사회와 조직에서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스스로에게 증명했고, 이제는 굳이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불안해하거나 자신의 능력치를 스스로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다. 어찌 보면 직장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심리적 안전장치였다고 봐야겠다.  


나는 방황하거나 두리번거리며 길을 헤매고 배회하는 자신을 허락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견뎌 낼 힘도 용기도 없었다. 배회는 낭비이자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오랜 경제적 불안에서 기인한 습성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 어떤 일이라도. 그러나 때로는 길을 잃어봐야 진정한 자신의 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런 나를 기다려주고 다독여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 크레바스를 무사히 건너왔다. 크레바스(crevasse)는 사전적으로는 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균열이나 틈을 의미하는데, 은퇴나 실직 후 연금을 받기 전까지 소득이 없는 공백기간을 소득 크레바스라고 한다. 그 기간 동안에 느끼는 생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크레바스 공포라고도 부른다는 사실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제각각 자신만의 크레바스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생계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꼭 한 가지만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발생한 삶의 균열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기도 하니까.


직장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본전 생각이 없다고도 쓴 적이 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는 이곳에서 꽤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으며 서로의 업무를 원활하게 풀어나갈 만큼 적절히 안정적이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합리적으로 소통이 가능했다. 그것이 비록 더 친밀해지거나 깊어지는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을지라도 마음만큼은 편안했다. 나는 그것으로 족했다. 제대로 된 수입이라고 부를 만큼의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눈에 띄는 커리어를 얻는 일도 아니었지만 내가 가장 원했던 안정을 되찾을 만큼의 시간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하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성실하게, 평범하게, 크고 작은 위기는 있지만 그럼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도 나도 다들 이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손에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때때로 고독했고, 소속되고 싶었으나 끝내 섞이지 못함에서 오는 소외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에도 이르렀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만 하면 되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머무를 때가 있으면 나아가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내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진정한 이유는 이제는 나의 삶을 능동태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전한 현상유지의 시간을 거쳐 이제는 진정한 나를 확장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나로 거듭날 때가 되었다. 이제는 때를 아는 조금은 더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다.


이제 나는 홀로 설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때때로 외롭고, 불안하고, 어딘가에 끼임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나라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 소속되든 소외되든지와 상관없이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이니까.


남은 한 달 아름다운 마침표를 위하여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일만 남았다.





동료 경비원들이나 관람객들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들은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을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정말이지 괜찮아요
살아 있고, 가족이 있고,
양심을 잃지 않았으니까."

 -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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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부를 통해 우직하고도 진실한 태도를 습득하였는지, 더 깊은 눈매를 가지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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