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버림 일지
3월 중순이 훌쩍 넘었는데, 눈꽃만발에 꽃을 시샘하는 강추위가 제법 매섭네요. 오늘은 배 깔고 엎드려 뒹굴뒹굴해 봅니다. 일은 고되고, 삭신은 쑤시고, 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오늘 하루쯤은 조금 느슨하게.
오늘은 SNS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해요. 가볍고 헐렁하게요. 이번에 아주 감동적인 경험을 했거든요.
지나친 경계심과 신중함을 조금 내려놓으니 친구가 생겨요.
먼저 저에게 있어 인스타그램 Instagram은 Inspiration과 Insight가 되어주고, 브런치 Brunch는 Bridge이면서 Branch이고 무엇보다 우리의 Breath가 아니겠어요. 블로그 Blog는 조금 더 사적이고 자유롭게 시시콜콜 bla-bla해도 괜찮은 Analog 맛이 살아있는 연결이랄까? 대략 이렇게 정리될 것 같아요.
저는 겁이 많고 처음엔 경계심이 좀 높은 편이랍니다. 상대에게 빈틈을 잘 안 보이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쓸데없이 긴장도가 높은가 봐요. 에너지 소모도 많고. 그렇다고 해서 안 보일 수 없고, 안 들킬 수 없겠지만. 이웃 맺기나 '좋아요'에도 워낙 진심이라 인색하다기보다는 꽤나 신중한 편이죠. 다 읽지도 않고 빈 마음으로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고, 알고리즘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이상한 DM을 받은 적도 있어서 무서웠어요. 무엇보다 만남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을 좋아하고, 그래서 관계에 있어 소수정예라고 해야 할까 봐요. 그리 넓은 관계는 다 감당하지도 못할뿐더러 진심 어린 관계에 마음을 집중하는 거죠. 단톡방에 들어가 있기만 해도 하나하나 다 읽고 공감해줘야 할 것만 같아서 에너지가 소모되는 INFJ. 그래서 SNS에도 그리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어요. 제가 멀티가 안 되거든요.
광고나 홍보, 팔로워 수, 파워블로거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인스타그램에서는 뭘 먹는지 뭘 사는지 어딜 다니는지와 같은 사생활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냥 오래도록 독서와 필사 기록만을 위주로 하고, 브런치에서 글 한 편 쓰는 데에 온통 화력을 집중하는 편이죠. 몸을 그만큼은 써야 겨우 글 한 편 써지는 한계와 매일 싸우면서 총알을 열심히 모으는 중입니다.
이제는 오랜 시간 몸에 밴 루틴으로 일을 나가기 전에 아침에 오늘치 독서와 필사를 우선 해놓고 하루를 시작해요. 그리고 요즘은 워낙 고단해서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들었다가 새벽 세네 시에 깨서 아주 맑은 정신으로 평단지기의 힘을 빌려 글을 씁니다. 평단지기(平旦之氣)는 이른 새벽의 맑고 신선한 기운을 의미하지요. 가장 순도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흔히들 미라클 모닝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아직까지 글이 쓰고 싶어서 잠이 깨다니 희망적입니다. 물론 글을 써놓고 다시 잠깐 자기도 합니다.
블로그는 방치해 두다가 최근에 다시 조금씩 꾸준히 하기 시작했지요. 블로그는 브런치보다 가볍고 자유롭게 스스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써도 괜찮아서 좋아요. 브런치의 백업 역할도 되지요. 지금은 블린이인 만큼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몇 안 되는 이웃이지만, 찐이웃입니다! 그래서 더없이 소중합니다. 서로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진심으로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든든한 인생선배 큰언니들이 생긴 기분이거든요. 그중에 한 분이신 시를 쓰시는 이웃 님께서 책을 보내주셨어요. 소속된 지역 문학단체에서 엮은 작품집이지요. 돈 주고도 못 사는 책인 데다가 바쁜 일상 중에도 선뜻 시간을 내어 빛의 속도로 보내주셔서 감동을 넘어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순수하게 문학의 뿌리로 연결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것이야말로 SNS의 순기능이 아닐까요?
글만큼은 최후의 마지막 순간까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만큼은 차별을 두지 않고 그 누구라도 아무나 아무 때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믿음이에요. 그 글이 어디로 흘러가서 누구를 만나고 살릴지 어떤 길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누군가에게는 글이라도 있어야죠. 글이 빛이 되고 생명을 살리는 물이 되기도 하니까요. 글은 연결입니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연결이에요.
이 모든 것을 꿰뚫는 한 단어는 아마도 '진심'인 것 같습니다. SNS에서 진심이라니 아직 어리석고 순진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많이, 널리'는 아니더라도 단 한 사람일지라도 진심으로 읽고 쓰고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마음이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해요. 진심 어린 댓글 덕분에 영혼에 따사로운 햇살이 드리우는 날에는 넘치게 감사하고 행복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물론 그 진심은 꾸준함에서 나오지요. 진심 앞에는 망설임과 핑계를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진심이 싹틀 수 있는 작은 틈, 살짝 느슨한 경계도 필요하다는 걸 이번에 배웠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먼저 다가가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걸요.
우리 서로 경계를 조금만 풀어 봐요.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듯 설렘을 품은 귀인이 찾아올지 누가 또 알아요. 봄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