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잔잔 Aug 25. 2024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Ep 1. 아버지, 엄마, 오빠, 그리고 나

우리 엄마는 1985년, 24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했다. 는 당시 28살이었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가난한 집에서 자라 가진 돈이 없었기에 부모님의 신혼 생활은 반지하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4개월 뒤 엄마는 임신을 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엄마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반지하 집엔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 가스가 들어왔어. 눈은 맵고, 기침을 안 하고 지낸 날이 없었지.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차서 바구니로 퍼내야 했고, 돈이 없어서 임신 중에도 먹고 싶은 걸 못 먹었어. 지금처럼 엽산이나 비타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깐, 매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지곤 했어."


1986년 겨울,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들린 울음소리는 힘이 없었다고 했다. 보통 아이들은 '응애!'하고 크게 우는데 반해, 아이는 '에에... 에에...'라는 작고 힘없는 소리만 냈다. 3년 후, 그 아이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부모님은 수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혹시나 아이를 또 가지게 되면 그 아이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 아이마저도 장애가 있어버리면 어떡하나. 수많은 고민 끝에 둘째 아이를 갖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8년이었다. 그 사이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첫째 아이를 키워냈다. 8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그 아이는 스스로 밥을 먹고, 말을 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1995년 봄,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9년이 지난해였다. 부모님은 혹시나 그 아이에게 또다시 장애가 있을까 걱정되어, 수만 가지 검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엔 드물었던 양수검사와 장애 여부 검사를 큰돈을 들여 받았다. 두꺼운 주삿바늘로 배를 찌를 때, 엄마는 마치 아이를 낳는 것만큼이나 아팠다고 회상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첫째 아이와는 달리 아주 크게 '응애!'하고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엄마는 비로소 안심을 했다. 아는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날, 아이와 처음 마주하는 날이라며 새 양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고 병원에 왔다.




엄마와 아환갑이 넘는 나이가 되셨고, 오빠는 벌써 마흔을 앞두고 있으며 나도 어느덧 서른에 접어들었다. 어릴 때는 서로 많이 싸웠는데 어느 순간 내 나이가 오빠와 역전을 하게 된 뒤부터 나는 엄한 누나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오빠에게 잘한 일은 칭찬하고, 못한 일은 혼을 내는 엄마 같은 누나다. 그렇게 지금도 우리는 한 지붕아래에서 함께 웃었다가, 때론 다퉜다가 하며 오손도손 잘 지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