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을 칭찬하는 글

by 알머리 제이슨

언제부터인지 '마라'를 소재로 한 먹을거리가 판을 치고 있다. 마라탕이 대 유행이 되더니 거의 모든 라면회사에서 마라탕면과 마라볶음면을 만들어 팔고 있다. 제일 인상적인 건 역시 한화 이글스와 풀무원이 콜라보로 제작한 '포기하지 마라탕면'이었다. 한화 이글스가 가지는 상징적인 패배감을 희망으로 치환하면서 라면 이름에도 말장난을 붙인 수작이었다. 실제로 꽤 중독성 있는 맛이지만 이 정도로 대 히트를 치며 전국을 강타할 줄은 몰랐다. 어딜 가나 마라탕을 파는 중식당이 생겼다. 원래 중식당이 이렇게 많았는데 마라탕을 팔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마라탕 때문에 중식당이 우후죽순으로 더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라가 대 유행의 한 복판에 있는 그런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예전에도 가끔씩 전국에 유행으로 번지는 먹거리가 존재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일단 불닭이다. 캡사이신을 미친 듯이 넣어서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식고문을 선사한 불닭집들. 지금은 거의 없지만 당시에는 동네마다 불닭집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런 유행에 맞춰 삼양라면은 불닭볶음면을 출시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불닭볶음면에 불닭은 전혀 들어있지 않은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원조가 된 불닭집들은 다 망했는데 불닭볶음면이 글로벌 챌린지로 유튜브를 강타하며, 전 세계에 팔리는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때때로 그런 행운이 찾아온다.


당시에 불닭집과 함께 히트를 친 것이 얼얼한 매운맛을 중화하기 위한 쿨피스였다. 몇몇 사람들이 쿨피스를 사들고 가서 곁들이는 것을 보고 불닭집에서 쿨피스를 쟁여다가 팔기 시작했다. 지금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솔직히 불닭의 맛은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스스로를 고문하듯 불닭을 먹다가 쿨피스를 한 잔 들이켰을 때의 해방감과 안도감만 기억이 난다. 쿨피스도 아직 살아남았다. 불닭집은 동네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쿨피스는 지금도 편의점 한 코너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 누군가가 아련한 추억에 자신을 집어 들어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일본 라멘집이 엄청난 붐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홍대 후문 쪽에 있던 라멘집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한국인 친구 세 명이 차린 곳이라고 들었다. 진한 돼지뼈 국물에 마늘을 미친 듯이 으깨어 넣고 먹으면 하드코어한 느끼함이 꽤 중독성이 있었다. 라멘집은 인테리어도 일본 현지의 느낌을 내는 곳이 많았다. 천이 드리워진 나무 미닫이 문을 하고 있었고, 가게에 들어서면 근처 대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이 분명한 직원들이 일제히 이랏샤이마세 하고 인사를 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난 후에 고국을 떠난 일본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들었다. 2012년이 지나고부터는 한국으로 넘어와 라멘집을 차린 일본인들이 꽤 많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일본 라멘집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인기가 없어서 지나쳐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마라탕을 파는 중식당에 완전히 밀려 자취를 감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요즘은 반일 감정이 꽤 심해진 상태여서, 일본 요리를 테마로 하는 식당을 열기엔 좋은 타이밍이 아니다.


그런 저런 사정들을 떠나서, 확실히 요즘은 우리나라에 끼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일본에 비해 훨씬 커졌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 문화를 조금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 문화를 우리보다 좀 더 우월하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200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2007년 정도까지 중국의 경제성장이 엄청난 속도를 보였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한창 보내고 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중국인의 구매력이 올라왔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손님들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올라갔다.


그런 것들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승하차 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 같은 것이다. 예전에는 한국어 영어에 이어, 일본어 방송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중국어 방송이 나왔었다. 하지만 요즘은 중국어 방송이 먼저 나온다. 편의점 라면 가판대를 보면 한자어로 된 컵라면이 여러 종류가 있다. 예전에 많이 보였던 일본 컵라면은 요즘은 거의 없거나 아주 조금만 진열되어 있다. 백화점 같은 곳에 입점하는 유명한 디저트류도 일본에서 넘어온 것이 많았는데 요즘은 중국 것들이 많아졌다.


사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에 유행하고 있는 중화권 문물들은 대만에서 넘어온 것이 많다. 대만 카스테라도 그렇고, 흑당 밀크티도 그렇다. 마라탕도 아마 대만 쪽을 통해서 넘어왔을 것 같다. 대만의 경우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국가이기도 하고, 정치적으로도 애매한 면은 있지만 일단은 중화권 문화로 보는 게 맞다.


그러고 보면 중화권 컨텐츠가 거의 없던 예전에도, 대만에서 넘어온 것 중 크게 히트 친 것이 있었다. 바로 '판관포청천'이다. 국민학교 고학년 무렵, 그리고 중학교 때까지 열심히 봤던 것 같다. 나는 판관포청천을 매우 좋아했다. 오프닝 송도 다 기억하고 있다. 심플한 스토리였지만, 나름대로 호쾌한 맛이 있었다. 내가 그 드라마를 정말 좋아했던 이유는 무술이며 뭐며 다 떠나서, '악인은 반드시 심판받는' 권선징악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한 번 악인이 포청천의 재판에서 법적인 구멍을 찾아 풀려난 적이 있었다. 적잖이 놀랐던 에피소드다. 악인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심판을 받고 작두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끝났었는데, 그 편에선 악인이 풀려난 것이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재판장 문을 빠져나가는 악당의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클로즈업되었다. 하지만 내가 그 스토리에 배신감을 느낄 새도 없이, 마른하늘에 갑자기 벼락이 떨어졌다. 당연하겠지만, 악당은 그 벼락을 맞고 재판장 앞에서 즉사했다. 포청천은 죽은 악인을 보며 다른 부하들에게 나지막이 말하였다. "이것 보거라. 악을 저지른 자는 이 땅의 심판에선 벗어날 수도 있으나, 하늘의 심판에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포청천과 모든 부하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스토리로서는 그렇게 엉성할 수 없었지만, 나의 마음만큼은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런 취향이다. 적어도 픽션에서 만큼은 권선징악이 철저하게 지켜졌으면 좋겠다. 요즘은 유치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런 1차원적인 스토리가 드물어졌다. 하지만 나는 권선징악이 그립다. 나이브할 만큼 호쾌하게 악인이 벌을 받는 것이 좋다.


잘은 모르겠지만 마라탕에도 그런 호쾌함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불닭과는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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