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방... 싸움은 시끄럽지 않게...

싸움은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by 신수현

어릴 적부터 나는 ‘참음’이라는 무기를 자연스레 몸에 익혔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스스로 터득한 게 아니라 늘 귀에 박힌 말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참아라.” 윗사람의 말에 반박하기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옳다고 믿었고,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라 여겼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도 겉으로는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데 익숙해졌다.


사춘기를 지나 사회에 나와서도 이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와 맞서 싸우기보다는 물러서고 포기하며 참는 길을 택했다.

겉으로는 온순해 보였지만, 속에서는 억눌린 분노가 점점 쌓여갔다.


종종 “너는 항상 화가 나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억울하면서도 어쩐지 맞는 말 같았다.

화는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지만, 나는 그것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얼굴에 짙게 드러나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역설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화가 나지 않아도 화를 냈고, 참을 수 있는 순간에도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다.

조용히 참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내가 폭발할 때 사람들은 잠시 움찔했지만, 반복되는 모습에 곧 무덤덤해졌다. 진심으로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왜 내 분노가 사람들에게 무섭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었다.


첫째, 내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화가 나도 소리는 질렀지만 말끝은 흐려졌고, 당황하면 말이 꼬이기도 했다.


둘째, 내 외모가 한몫했다.

동안에 귀여운 인상은 화난 얼굴을 진지하게 보이게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 분노를 구경거리로 여기며 웃어넘기곤 했다.

마치 어른들이 아이들 싸움을 귀엽게 바라보는 것처럼. 아이들은 진지하지만, 어른 눈에는 장난처럼 보이듯이...


성경 속 여리고성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 말 없이 성을 돌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일제히 함성을 지르자 성이 무너졌다.

그 장면은 내게 싸움의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싸움은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조용히 준비되는 것이라는 사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

오히려 우습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화를 참을 줄 아는 사람, 침묵 속에서 힘을 비축하는 사람이다.

한 번 폭발한 사람은 다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끝까지 참으며 준비하는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린다.

싸움은 잦은 폭발이 아니라, 한 번의 정확한 타이밍에서 이뤄진다.


스포츠 경기와도 같다.

아무도 처음부터 전력 질주하지 않는다.

초반에는 호흡을 가다듬고, 중반에는 리듬을 유지한다.

마지막 순간,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을 때 승부가 갈린다.


싸움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소란스럽게 달려드는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조용히, 신중히, 끝까지 기다린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돌아보면 나는 너무 자주 불필요한 순간에 화를 냈다.

그래서 스스로 더 많이 상처받고, 사회생활도 매끄럽지 못했다.

화는 감정의 해방처럼 보이지만, 사실 또 다른 족쇄였다.

진짜 힘은 화를 낼 때가 아니라, 화를 내지 않고 끝까지 참을 때 나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나는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을 꿈꾼다.

사람들은 조용한 사람을 얕잡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 어떤 힘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오히려 경계한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은 소란스러운 분노보다 훨씬 더 강하다.

싸움은 결국 시끄럽지 않다.

진짜 싸움은 침묵 속에서 자라고, 단 한 번의 순간에 세상을 무너뜨린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6화나의 자리는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