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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된다.

면접이 끝나면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by 신수현

면접이 끝나면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세무사 사무실에서의 채용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1차 면접에서 합격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진짜 전쟁은 2차 면접, 즉 기존 직원들과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에서 시작된다. 나는 여러 번 이직을 경험했고, 심지어 하루 만에 해고당한 적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직원들은 새로운 얼굴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미 나와의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전이라는 가면


새로운 직장에서의 도전은 멋진 일이지만, 항상 긍정적인 경험이 되지는 않는다. 신입에게 도전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과정이지만, 경력자에게는 실수가 곧 ‘실력’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왔다. 두려움은 마치 벽과 같다. 벽을 넘으면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또 다른 벽이 나타날 뿐이다. 새로운 직장에서 나는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만 고민할 수 없었다. 나는 우스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기존 직원들의 견제를 이겨내고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위선을 가장한 배려, 그리고 여왕들의 쟁탈전


어떤 사무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랑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외부인에게는 차갑기만 하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그들은 친절하게 다가오지만, 그 친절함이 진심인지 가면인지 알 수 없다. 특히 기존 직원들보다 더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거나 다른 방식을 시도하면 그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나의 업무 처리 방식이나 속도를 은근히 감시하는 눈길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새로운 직장에서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 그 친절함은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들은 나의 약점을 찾아내고, 그 틈을 기하급수적으로 벌려놓으려 한다. 나는 ‘친절함에 속지 마라’는 조언을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모든 대화를 차단할 수는 없다. 결국, 묵묵히 실력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어 전략이다. 실력 있는 사람은 뒷담 화할 시간이 없다.

전화 몰래 엿듣기


업무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전화 상담 능력이다. 물론 넓은 사무실에서 통화 내용이 들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일부 직원들은 나의 통화 내용을 엿듣고 평가하기도 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내 말투, 상담 태도, 고객 대응 방식까지 평가받는다. 내가 이곳에서 오래 일할 사람인지, 아니면 단기 근무 후 떠날 사람인지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개인적인 전화는 사무실 밖에서 받고, 고객과의 상담은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신고기간은 건드리지 말기


세무사 사무실에서 가장 바쁜 시기는 신고 마감 기간이다. 이 시기에는 모두가 예민해지고,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세무사는 재무제표가 다 나왔는지 확인하고, 거래처는 세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재촉한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과의 갈등이 발생하면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신고가 끝나기도 전에 여자들의 전쟁이 시작되고, 결국 결산이 끝난 후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협업하는 풍경은 볼 수 없나?


이직이 잦았던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그렇게 자주 옮기느냐’고. 하지만 나는 결산을 앞두고 나간 적은 없다. 세무사들은 결산이 끝난 후 직원들이 나가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 게 아깝지 않냐’고 말하지만, 나는 결산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매년 같은 프로세스로 돌아가는 세무 업무 속에서 갈등과 대립이 반복된다. 서로 돕고 협력하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걸까? 나의 단점이 그들의 장점으로 보완되고, 그들의 강점이 나의 약점을 채워줄 수 있다면 우리는 싸우지 않고도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적이어야만 할까?


나는 직장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같이 일할 수 있는가’였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세무사 사무실은 높은 이직률과 비효율적인 업무 분배로 인해 매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누군가는 나처럼 힘든 적응기를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직장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단순히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고 협업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견제를 피하기 위해 숨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전쟁이 아니라, 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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