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버이날 카네이션, 유통기한

슬픈 꽃이 있다. 카네이션은 주인이 있어서 이다.

by 신수현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가슴이 뭉클해진다.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마음이 촉촉해지고, 아버지의 뒷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지만, 내 마음속의 시간은 멈춘 듯 흐르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반 친구들과 함께 작은 책상 위에서 빨간 색종이를 접고 또 접었다.

접힌 꽃잎이 열 개쯤 모이면, 그것은 카네이션이 되었다.

꽃을 만들며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종이 위에 정성껏 적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 시절, 나는 작은 손으로 그 꽃을 품고 집까지 걸어갔다.

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 바람이 불까 두려워 꽃을 가슴에 꼭 안고 달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의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작은 손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따뜻했는지,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깨닫게 된다.


아침이 밝으면, 언니와 동생, 나 셋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그 꽃을 받아 달고 마을회관으로 향하셨고, 저녁 늦게 돌아오실 때까지 그 카네이션은 흉하지 않게 곧게 달려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깨닫는다.

자식은 부모에게 큰 것을 원하면서도, 부모가 바라는 것은 그저 작은 것이라는 걸.

손수 만든 종이꽃 하나에 그렇게 자랑스러워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카네이션은 아이들의 숙제처럼 느껴졌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만들지 않게 되었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어버이날조차 내 일이 아닌 것처럼 흘려보냈다.


그 시절의 나에게 카네이션은 ‘유치한 것’이 되었고, 아버지는 그 해에는 꽃을 달지 않으셨고, 나가지도 않으셨다.

나를 제외하고 동생과 언니의 꽃을 달고 나가신 아버지는 저녁에 화가 난 것보다 서러운 표정을 나에게 지으셨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

볼품없는 종이꽃 하나가 그렇게 아버지를 서운하게 했던 것일까?

그 마음을 나는 너무 늦게야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예쁜 꽃이 참 많다.

장미는 사랑을, 백합은 순결을, 해바라기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에 비하면 카네이션은 슬프다.


꽃잎 하나하나는 이쁘지만, 그 꽃은 늘 미안함과 후회를 함께 데리고 온다.

어린 시절, 종이로 만든 그 꽃은 사랑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게 카네이션은 다시는 피울 수 없는 관계의 증표처럼 느껴진다.


카네이션이 슬픈 이유는 카네이션은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달수 없고, 아무에게나 선물할 수 없는 소중하고도 아무 때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

사랑을 배우지 못해서, 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향한 사랑도 자주 어긋났고, 그 어긋남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후회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아버지가 내게 원한 것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고, 말없이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 소박한 바람조차 나는 몰랐고, 멀리서만 바라보며 아버지의 존재를 잊은 척하며 살아왔다.


못난 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라도 기다리셨다.

“아버지의 시간이 이번이 마지막이니 자주 오라”던 엄마의 말을 나는 그저 습관처럼 넘겼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다음에 가면 된다고, 그렇게 나는 내 손으로 아버지의 시간을 등 돌렸다.

그리고 지금, 그 등진 시간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가슴을 찌르고 있다.


어버이날이면 카네이션이 마트에 한가득 쌓인다.

누군가는 그것을 예쁜 꽃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그 꽃은 눈물처럼 피어난다.

이쁘지만 아픈 꽃, 사랑을 담았지만 후회가 묻어나는 꽃. 카네이션은 그래서 슬프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뒷모습은 이제 더 이상 마당 끝에 서 있지 않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마당을 바라본다.

언젠가, 그날처럼, 해가 지는 저녁 마당에서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 같아서.

사랑은 말보다 늦게 도착하는 마음이고,

카네이션은 그 마음이 남긴 자국이었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0화못 먹는 게 아니라 먹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