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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story Apr 30. 2023

[Life Journal] CH.1 New Life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경험하다

한국에서 자라오면서 듣던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은 대부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아마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며, 고등학교는 인문계, 실업계, 특목고 등 어떤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하고 내신 점수는 얼마나 나오고 목표 대학은 어디로 정해야 하고, 그리고 그렇게 좋은 대학을 가면 모든 인생이 풀릴 것처럼 얘기를 듣고 자랐다. (그래도 나는 공부는 안 했다. 하기 싫었다) 대학 이후엔 이제 어느 정도 안정적이면서 사회적으로 무시당하지 않는 직장에 다녀야 하고 그리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 한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그렇게 남 부럽지 않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살면 된다 정도로 정해져 있다. 각 나이별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정해져 있으며 이를 벗어나게 되면 사회적 눈치가 따라온다. 미국을 가기 전, 중학생이라는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삶'에 대해서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각박한 사회 속에서 아이들이 살고 있는가...!)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Linda의 집에서 살면서 나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왜 인지 모르겠으나, 그곳은 모든 게 좋아 보였다.  


여유를 찾다

한국에 살았을 때에는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날씨 혹은 자연경관에 대해 그렇게 의미 있게 생각해 본 적은 없던 것 같다. 하지만 미국 서부에 살기 시작하면서, 날씨와 주변 등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날씨가 정말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날씨가 맑아서였을까, 처음 느낀 캘리포니아의 삶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 SLO에서의 평상시 날씨 모습이다 >

가정에서 함께 지내는 홈스테이를 해서 더욱더 가까이에서 현지 사람들의 생활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치 유토피아와 같은 이 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걱정 없이 사는 모습처럼 보였다. 달성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고 늘 정해진 답에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삶은 전혀 없어 보였다. 나이와 관계없이 다들 각자의 인생을, 각자의 삶에 맞게 살아가고 있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멈춤'이란 게 있었다. 공원엔 항상 누군가가 누워있고, 책을 읽거나 가족끼리 소풍을 나온 웃음소리가 들렸다.


흔히 미국은 개인주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오히려 미국 가정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가족적이었다. 저녁은 거의 대부분 가족과 함께 했으며 주말에도 대부분을 가족끼리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해변에 나가도 모두 대부분 가족단위의 그룹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Linda의 가정은 부유한 집은 아니었고 Linda와 남편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항상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여유는 있었다. 혹은 그런 여유를 가지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것 같다. 특히 Linda의 남편 Mark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는 바쁜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 San Luis Obispo 근처의 바다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

이런 곳에서 몇 년간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금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늘 시선은 위를 향했고 항상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있었다. 나중에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한국에서 막 도착한 유학생들을 만났을 때, 내게 항상 여유가 넘치니라고 물어보던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다시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웃으며 인사하기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이었던 것 같다) SLO에서는 도심의 가장 중심가에서 Farmers Market 이 열렸다. 미국에 처음 온 나를 구경시켜 준다며 함께 갔었는데, 어린 동양인 아이의 눈에는 너무 신기했다.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고 신기하게도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도 했다. 나중에 Linda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니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날씨 덕분인지 분위기는 항상 밝았고 사람들도 모두 얼굴에 여유와 웃음이 넘쳤다. 몇몇은 내게 말을 걸기도 하였는데 그땐 영어를 잘하지 못해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그래도 모험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즐거웠다. 

< SLO에서 매주 열리는 Farmers Market 모습 >

처음 Farmers Market에 갔을 때에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어서 친구들이 없었지만, Farmers Market에서 나중에 학교에 같이 갈 친구들을 몇 명 만나기도 했다. 그 친구들의 부모님과 Linda 가 대화를 하며 나와 앞으로 같은 학교에 갈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악수를 하며 순식간에 이름을 말하는데 그때에는 사실 한순간이어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내게 친절했다. 내가 있을 때 당시만 해도 정말 다른 인종은 없이 백인 도시였는데, 그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마치 동양인을 실제로 처음 보는 듯했다. 실제로 거리를 걷다가 한 유치원생처럼 보이는 아이가 내게 와서는 조용히 내 팔을 만지고 나서, "Can I touch your hair?" (머리 만져도 돼요?)라고 한 적도 있다. 이런 도시였지만 인종차별을 비교적 많이 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들 웃으며 인사하는 친절함 덕분에 나도 아직까지도 외국인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아저씨도 있구나

Linda의 남편인 Mark는 캘리포니아 교도소에서 일하는 교도관이었다. 3남매의 아빠였는데 내가 집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는 완전 늦둥이 였다. 내가 함께 지내기 시작했을 때 Mark는 50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50대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SLO에서는 매월 마지막주 Bike Night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어느 날 Mark는 내게 자전거를 탈 줄 아느냐라고 물었고, 탈 수 있다고 하자 집 Garage에서 자전거 한대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Bike Night에 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도시의 한 곳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전거 타기를 시작해서 코스를 도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고 아 그냥 동호회 같은 거구나 하면서 같이 가겠다고 했다. Mark는 자신의 친구와 함께 2인용 자전거를 타기로 했고 Mark의 아들과 나는 각자 자전거를 타고 Bike Night에 갔다. 


가서 나는 깜짝 놀랐는데, 전혀 동호회 같은 게 아니었다. 

< SLO Bike Night 사진 >

SLO Bike Night 영상


정말 도시의 모든 시민들이 나온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다 함께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 축제인 것 같았다. Bike Night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인상 깊었지만, 지금까지 너무나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Mark의 해맑은 모습이다. 50대의 아저씨가 친구와 함께 2인용 자전거를 타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Whoa~~ YEAH~~~ 소리 지르며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은 충격이었다. 상상해 보라. 50대 백발의 아저씨 2명이 2인용 자전거를 타며 소리를 지르고 온 도시를 누비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50대 아저씨 중 어느 누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진짜 여기는 다른 세상이구나... 이곳 아저씨는 이럴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학교 생활을 하기 전, 이미 나는 미국 생활에 너무나도 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학교생활 역시 너무나 기대하고 있었다. 



p.s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신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Ch.1 은 미국에서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내용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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