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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story Apr 09. 2023

[Life Journal] CH1. 침대 위에서 신발을

 정말로 집에서 신발을 신는구나...

비행기에 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백인이었다. 그곳은 누나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동네였기에 누나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누나가 내게 완전 백인 마을이라고 했었던 게 실감이 났다. 몇몇 사람들이 (사실 대부분의 비행기 내에 탑승한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동양인 아이가 혼자 비행기를 타 있으니 이상했는지 계속해서 쳐다보았지만 내겐 새로운 세계에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 정말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안전하게 최종 목적지의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계단을 내려주고 활주로에서 공항으로 걸어가야 하는 구조였는데, 처음엔 조금 충격이었다. 공항이 해도 해도 너무 작았다 (이곳의 공항은 지금까지 내가 방문한 모든 공항 중 가장 작은 공항이다). 그 시골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기억나는 건, 구름 한 점 없는 푸르고 맑은 하늘, 나무가 없는 산과 언덕, 그리고 주변의 파란 눈을 가진 금발의 사람들이다. California 날씨는 항상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 이 있는데 정말 도착하자마자 바로 느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매우 작은 공항에 내려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그때 멀리서 금발의 (진한 갈색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주머니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누나가 서있었다. 아주머니는 누나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함께 살던 host family 어머니 Vicki였는데, 첫인상은 그냥 전형적인 백인 아주머니였던 것 같다. 누나와 오랜만에 재회를 하고 바로 누나가 지내던 Vicki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Vicki 남편의 여동생분의 집에서 지내기로 되어있었다. 여동생분의 이름은 Linda이며, Linda는 남편과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고 3마리의 강아지와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Linda와 가족들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겠다.

< 내가 함께 지냈던 Linda 가족이 사는 집으로  전체가 나오는 사진은 아쉽게도 없다 지금은 Linda와 남편 둘이서만 이곳에서 살고 있다 >


< 집을 지키던 Tigawa라는 이 친구는 내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노견이었는데 내가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좋은 곳으로 떠났다 >


새로운 환경

이렇게 나는 Linda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린다의 아들 (Nathan) 방에 있는 2층 침대 중 2층에서 잠을 잤고, 방은 Nathan과 함께 썼다. Nathan 은 나보다 5살 정도 어린 (사실 정확한 나이가 기억이 안 난다... 미국에서 나이를 따진 적이 많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나이를 따지는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남자아이였는데 생각보다 소심한 편이어서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우리 집은 강아지를 키운 적이 없고 부모님 모두 강아지를 싫어하시는 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아지를 포함한 모든 Pet을 싫어하신다. 특히 어머니는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더더욱이 싫어하신다. 그래서 난 강아지와 한 번도 살아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었는데 Linda의 집에서 지내면서 갑작스럽게 대형견 3마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Bella, Tiga, Tigawa 이렇게 3마리는 내게 큰 충격과 동시에 수많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좋은 기억이 정말 많은데, 3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의 평온한 가정이었던 (내 기억 속에는 그렇다...) Linda 가정을 보며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지금 내가 강아지 두 마리의 아빠가 된 계기이기도 하다.

< 그리고 다른 두 마리의 강아지, 왼쪽 Bella 오른쪽 Tiga >

한국에서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나는 정원과 마당이 있는 주택생활이 처음이었다. 미국집에선 신발을 신고 지낸다 라는 얘기는 독자들도 많이 들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Linda의 집에선 신발을 신고 지냈다.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고, 특히 Nathan 이 신발을 신고 침대에도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는 것도 충분한 충격인데, 침대에 신발 신고 올라가다니... 나중엔 나도 신발 신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절대 침대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Nathan의 방엔, 기본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갖춰져 있을 책상, 문제집, 등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집에서 공부를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숙제를 해야 한다고 하긴 하지만 1시간 이상 숙제를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미국 Teen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방과 거의 비슷했다. 여러 NBA 포스터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으며 스케이트보드는 항상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고 너저분한 옷장이 전부였다.


첫날 저녁, 잠을 자기 위해 방에 들어갔을 때, Nathan 이 Bella와 함께 침대 위에서 자는 모습을 보고도 충격을 받았었다. Bella는 평균 리트리버 정도의 크기였으나 날렵하고 산책 및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점프를 하면 머리가 집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그 정도의 개가 침대에서 같이 자는 모습을 보며 단 한 번도 강아지와의 경험이 없던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어머니와 통화 중에 "엄마 여긴 강아지랑 침대에서 같이 자"라고 말하면서 놀람을 금치 못했었는데, 어머니가 깜짝 놀라시겠지만 지금 내가 강아지와 함께 잔다.


내가 도착하고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첫날, 나는 미국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총 (Gun)이다. 미국이 총기 소유가 된다는 것은 그때도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 실제로 확인하고 싶었다. Linda의 남편에게 진짜로 집에 총이 있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안방에 가서 산탄총 (흔히 말하는 Shot Gun)과 실탄을 가져왔다. 그때 나는 Linda의 가족들에게 "You have shot gun in your bedroom?"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총에 대한 무서움보단 호기심과 신기함이 더 많을 나이었어서 그런지, 정말 신기했다. 그 외에도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미국 학교는 어떤지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대답하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인해 소통에 어색함과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왜였을까, 나는 말이 안 통하는 그곳에서 더 자유로웠다.


살찌고 싶다면 미국으로

미국에 가게 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중 하나는 1년 만에 몸무게가 약 17kg 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미국을 가기 전까지 나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라는 것이 Linda 집에서의 생활을 통해 증명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매일매일 고기를 먹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내게 루돌프 (순록) 스테이크라며 소개해준 스테이크를 저녁으로 먹었는데, 루돌프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하다 하다 이제 루돌프도 먹어보는구나 생각했었다. 또 하루는, Linda가 동양에서는 쌀밥을 주로 먹는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는지 내게 자랑스럽게 오늘은 쌀 요리를 먹을 거야 라는 말을 해 기대를 하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생각하는 쌀밥은 저녁 테이블에 없었고 처음 보는 요리가 있었는데, 나중에 그게 밥이라는 걸 말해주자 난 "This is rice?"라고 질문하였고, Nathan 은 내 질문을 듣고 웃음이 터져 한동안 멈추지 못했다. 저녁 테이블에 올라간 그 정체 모를 메뉴는 쌀과 버터, 그리고 치즈를 함께 넣어 만들어진 밥이라고 했다. 밥을 짓는데 버터와 치즈를 함께 넣다니... 정말 상상도 못 한 정채였다. 


부엌엔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냉장고가 있었는데 각종 간편 식품들과 아이스크림이 항상 구비되어 있었다. 한쪽에 있던 Pantry 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스낵류들이 있었는데 내겐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너무 심해서 항상 고생했었고, 미세먼지 등 여러 알레르기가 있었다. 이 때문인지 어머니는 내 식단을 항상 관리하셨다. 밀가루, 과자 등의 간식류 및 식사는 철저하게 금지되었으며 정 먹고 싶을 때에는 어머니는 유기농 과자를 사다 주셨다. 하지만 미국에서, 정확히는 Linda의 집에서 난 봉인해제 된 것 마냥 자유롭게 과자를 먹었다. 항상 저녁식사 후 아이스크림을 다 같이 먹는데 어떻게 나만 안 먹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살면서 혼자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때만큼의 설렘을 느낀 적이 정말 손에 꼽는다. 

하지만 첫 설렘은, 내 인생의 첫 turning point는 미국행이었다. 



p.s.

내가 미국 생활을 시작한 곳은 San Luis Obispo (SLO)라는 작은 도시이다. 미국 서부의 California 주에 있는 작은 도시로 San Francisco와 Los Angeles 사이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 San Francisco와 Los Angeles 사이에 위치해 있는 SLO >
< San Luis Obispo의 전경 >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 지금은 SLO 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그곳에 있을 때만 해도 이곳은 완전한 백인 마을이었다. 




Ch.1 은 미국에서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내용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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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ife Journal] 서문.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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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ife Journal] CH.1 마지막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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