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긴다.
돈을 많이 버는가?
사회적으로 무언가 기여했는가?
필요한 사람인가?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 기준으로 보자면,
우리는 창녀보다도 쓸모없는 존재일 수 있다.
창녀는 ‘기능’이 분명한 존재다.
창녀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감정을 조작하지 않는다.
그녀는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신체적으로, 명확하게 타인을 돕는다.
고립된 욕망을 받아주고,
사회적 폭력 없이 해소를 도와주며,
감정의 기만 없이 거래를 한다.
이건 불편할 수 있지만
기능적으로 보면 분명한 사회적 역할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심리적 평화유지군이라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반면, 우리는?
우리는 사회 속에서
누군가의 욕망을 착취하고,
거짓된 이미지를 팔고,
감정을 감춘 채 협상하며,
쓸모 있는 척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타인을 착취하고
구조를 유지하며
어쩌면 아무도 실제로 돕지 못한 채
존재 자체가 기여보다 ‘소비’에 가까운 인간들이 되어간다.
우리가 창녀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감각은
사회의 도덕적 위선이 만든 것이다.
그녀들은 도덕 바깥에 있다고 여겨지기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더 고귀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진정한 자기희생은 어쩌면 그녀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가 도움 되는지,
누가 더 쓸모없는지를 말할 자격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창녀보다도 세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인식 위에서야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