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의 「괴팅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단순히 한 곡의 샹송을 감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곡이 흐를수록, 그것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목소리에 실린 메시지였고,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기록이었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연기자가 아니다. 연기자는 주어진 대본 속에서 감정을 재현하지만, 바바라는 그 대본을 삶 속에서 직접 살아낸 후 무대에 오른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에는 꾸며진 감정이 없다. 대신 삶의 흔적과 상처, 그리고 그것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려는 결심이 있다. 「괴팅겐」이 단순한 도시의 이름을 넘어, 독일과 프랑스라는 전후의 상처 입은 두 나라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의 그녀는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몸짓은 절제되어 있고, 표정은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모든 진실이 흘러나온다. 마치 거짓 없는 눈빛 하나로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 사람처럼, 그녀는 음 하나, 호흡 하나에 진심을 담는다. 이때의 바바라는 기술을 초월한 존재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아내는’ 것이다.
연기자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관객이 믿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지만, 바바라는 관객이 믿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자기 안의 진실을 꺼내 놓고, 그것을 보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허락한다. 오히려 그 자유로움이 관객을 더 깊이 끌어당긴다. 우리는 그녀가 만든 완벽한 환상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보여주는 불완전한 진실 속에 머무른다.
그래서 바바라의 무대는 곡이 끝난 후에도 오래 남는다. 음은 멈추었지만, 그녀의 시선과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 뒤에 숨어 있던 삶의 무게가 관객 안에서 여전히 울린다. 「괴팅겐」을 부르는 그녀의 모습은 단순히 음악을 통한 화해나 추억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방식의 사랑과 이해다.
바바라는 노래로 연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기를 넘어선 노래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그녀를 천재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