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아본 사람이 좋다.
여기서 ‘놀아본’이란 단어는 방탕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가 어떤 연애를 원하는지 알고, 연애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경험은 단순한 횟수가 아니라, 자신을 알고 타인을 이해하는 감각을 만들어준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불필요한 오해가 적고, 감정 소모가 줄어든다. 서로가 이미 다듬어진 상태에서 만나기에, 사랑은 서로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경험이 된다.
그래서 나는 늘 의아했다. 왜 어떤 여성들은, 놀아본 적 없는, 혹은 매력이 떨어져 보이는 남자를 선택할까. 그건 단순히 ‘같은 부류라서’ 끌리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다른 심리가 숨어 있다.
첫째, 안전하다. 경험 많은 남자는 매력적이지만 경쟁률이 높다. 언제든 다른 여성의 관심과 비교될 수 있다. 반면 연애 시장에서 주목받지 않는 남자는 경쟁자가 적다. 잃을 위험이 작으니, 안정적이다.
둘째,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연애 경험이 적은 남자와의 관계는 속도와 규칙을 자신이 설계할 수 있다. 주도권은 단순한 리드가 아니라, 관계의 전반적인 구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다.
셋째, 각인의 심리다. 경험 없는 남자는 상대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이때 여성은 ‘나만이 그를 만들어준다’는 독점적 만족감을 느낀다. 그 남자의 연애관과 기억 속에 자신이 강하게 각인되기를 바란다.
이런 이유들은 나로서는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나는 오히려 서로의 성숙함이 부딪히는 관계를 원한다. 시행착오 끝에 자신을 알게 된 사람, 감정의 무게를 감당할 줄 아는 사람, 기쁨과 갈등을 세련되게 다룰 줄 아는 사람. 놀아본 사람은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소유욕으로 옭아매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책임지기 때문에, 사랑은 곧 자유와 신뢰가 된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형태를 따라간다. 누군가는 안정과 주도권을 택하고, 나는 성숙과 완성도를 택한다. 나는 알고 있다. 내 행복은 미완의 상태에서 서로를 소유하려는 관계가 아니라, 완성된 두 사람이 만나 더 큰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랑 속에 있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놀아본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