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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다 Jun 24. 2024

우리의 여행

주말 토요일이면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 토요일의 어느 날도 엄마와 점심식사를 하고 바깥나들이를 위해  집을 나섰다.


"손주들이랑 놀러 가고 싶어"


엄마의 눈동자 색이 원래 회색빛이 돌았었나? 허리가 좋지 않아 걸어도 얼마 걷지를 못해 길가에 놓여있는 편의점 의자에 앉은 엄마의 목적 없는 시선이 어느 허공을 바라보는데 짙고 완고한 검정이 아닌 얕은 기운의 회색 눈동자에 말간 눈물까지 서려 있다. 

 

"엄마 애들이랑 같이 여행 가고 싶어?"


"응. 네 애들이랑 둘째 애들이랑 다 모여서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구경도 하고 싶어. 그런데 내 몸이 이래서..."


당신의 몸에 이런저런 질병이 어디서든 자리 잡아 뭘 해도 간섭하려 니 자유롭지 못한 육신에 깊은 서러움과 슬픔이 터져 나온다.

젊을 적, 소싯적 엄마의 당당함은 사라진 지 오래된 모습에 엄마를 위해 뭐 하나 잘해준 거 없는, 평소에 잘 챙기지 못한 내가 너무 죄스럽고 미안하다고밖에 말하지 못해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엄마, 애들하고 돌아오는 주말에 떠나자. 멀리는 못 가더라도 가까운데 펜션 잡고 맛있는 거 먹고, 살살 걸으면서 나무도 보고 그러자"


"진짜?"


회색 눈동자가 힘을 내어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럼. 애들 학원 빠지라 하고 같이 놀자."


엄마 앞에서 아이들에게 전화해 다음 주에 놀러 가자 말하고, 바로 숙소를 알아본 후 예약하는데 엄마는 벌써부터 뭘 준비해야 하나 라는 표정으로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회색빛의 눈동자는 여전해도 볼과 이마는 점차 분홍빛이 퍼지기 시작한다.

여자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아픈 것을 알아도 이건 아픈 게 아니라 그저 피곤한 거라고 모른 척하며 자식을 위해 제 몸을 위한 돈을 쓰지 않고 살아온 날들이 당찼던 걸음걸이를 이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게 해 서글펐던 그녀가 지금 좋아하고 있다. 런 엄마를, 엄마는 아프니까 언젠가 컨디션이 좋아지면 그때 함께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매일이 모두 같은 그녀에게 주말조차도 똑같은 걸 함께 한 나의 모자람이 다시 미안한 마음을 고개 들게 한다.


"엄마 이제라도 나랑 애들이랑 이곳저곳 다니자. 막 돌아다니지 않아도 돼. 새로운 곳에 가서 애들하고 얘기하고 함께 자고, 맛있는 거 먹는 게 중요하지. 그런 게 다 즐거운 거잖아"


엄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와 딸, 그 딸의 아이들이 함께 여행을 간다.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다. 잠들기 전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가 애틋해 토닥이고 어깨를 기대기도 하다 잠든다.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하고, 오랫동안 그러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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