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논이Noni Aug 20. 2022

집시 화가가 풀을 뜯게 된 계기

9년 간 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채식

 사람들이 이른바 배고픈 직업이라 여기는 그림쟁이의 길을 걸어온 저는 보헤미안의 삶을 추구하는 예술가답게 속박받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고, 속세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편이라 남들보다 많이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병이 나는 성격 때문에 잘 다니던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만화가 문하생으로 들어가 선생님께 라면 끓여드리고, 지우개질하며 계속 된 밤샘 작업으로 몸이 축나기도 하고, 수많은 알바를 전전하며 방황하는 청춘을 보내다 해외에서 사는 게 저의 이런 자유부인 같은 성향과 잘 맞아 지금까지 뉴질랜드, 호주, 프랑스, 영국에서 총 10년 넘는 외국 생활을 해보기도 하고 그 외 스위스, 아일랜드에서도 그림 그리며 몇 달씩 지내본 경험이 있는 운 좋은 집시 화가가 되어 지구를 서성거렸어요. 그렇게 외국에서 고생하며 떠돌다 보니 어리숙하고 순진하던 제가 세상 사는 노하우를 조금은 깨우치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좋은 쪽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예전보다 세상을 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Elaine Aron의 연구에 기반한 하일리 센시티브 퍼슨 Highly Sensitive Person 테스트 결과 극도로 예민한 인간임이 증명된 저는 어둡고 우울한 유년과 십 대 시절을 겪고, 갈 길 잃고 헤매던 청춘을 보내며 개차반처럼 살던 인생을 바꾸려 고군분투 끝에 명상 수행과 백팔배, 그리고 채식을 하며 머리만 안 밀었지 거의 스님처럼 살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의 자신보다 더 현명해지고,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싶다면 죽도록 고생하고 많이 경험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현인들은 말합니다. 어리석은 제가 만약 외국에 나가 수많은 일들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수행과 채식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게 틀림없고, 여전히 죄 없는 많은 생명을 앗아 배를 불렸을 게 뻔하기에 해외에서 보낸 10년의 나날이 나에겐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다고 자신합니다.    


고기 공화국 한국에서 몰랐던 사실을 호주에서 알게 되었다 


 과일, 채소를 즐겨 먹으면서도 순대, 보쌈, 선짓국, 족발 같은 토속적인 육식에도 열광하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거의 매일 먹으며 지구상에서 싫어하는 음식이라곤 강낭콩과 땅콩잼이 전부였던 곰 같은 잡식성 대식가였던 제가 육식에 의문을 품게 된 건 그림 그리고, 영어 공부하러 떠났던 2009년, 호주에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다니던 어학원 교재에 나온 지문에 적잖이 놀라 좋아하던 고기에 대한 의구심에 머리가 살짝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지문의 내용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지요.


'가축들은 살아있을 때 좁은 우리에서 갇혀 지낸 탓에 질병에 노출될 것을 방지해 항생제를 많이 맞는다. 그리고 도축장으로 끌려갈 때와 죽을 때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느끼고 이는 곧 몸에서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로 이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온몸에 퍼져 도살과 동시에 육질이 떨어진다. 스트레스를 받고 죽은 항생제 범벅의 사체를 먹는 것은 곧 우리 입에 쓰레기보다 더 해로운 것을 집어넣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공장식으로 사육해 제공되는 현대의 육식은 우리 몸에 결코 좋을 수 없다.'


고기 공화국 한국에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육식을 부정하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귀가 얇은 잡식성 곰은 육식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공감능력을 총동원해 동물들 몸을 내 몸이라고 감정 이입해 생각해보니 이만저만 끔찍한 것이 아니었어요. 평생 항생제 투여받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며 좁아터진 곳에서 학대받으며 갇혀 살다 결국엔 끌려가서 원치 않는 죽임을 당한다면 이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일인가요? 불행한 세상 떠나는 마당에 온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뿜어져 나올만합니다. 겁도 많고 눈물도 많은 제가 만약에 도살되고 있다면 공포에 질려 그 호르몬, 몸속에서 분수처럼 마구마구 뿜었을 거예요.


 늘 아무 생각 없이 뜯던 고기가 스트레스받고 공포를 느끼며 죽은 동물들한테서 온다는 생각을 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걸까요?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자인 동물은 강자인 인간을 위해 당연히 죽어서 맛있는 고기를 제공해야 하는 거라고 거만을 떨고 있었던 거예요. 게다가 인간이 동물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짓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라요.


호주에 가기 2년 전,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병원인 크라이스트 처치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적이 있었어요. 입원기간 내내 무슨 병인지 진단을 하지 못하던 의사들은 상태가 심각했던 저를 중환자실에 홀로 두고 매일 채혈을 하며 온갖 검사를 진행했고, 숨이 가빠질 땐 산소호흡기도 달고, 엑스레이찍으러 갈땐 휠체어에 의지하기도 하며, 화장실조차 갈 수 없을 정도로 걷지도 못했던 제게 수없이 많은 약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많게는 하루에 열 알도 넘는 각기 다른 알약들을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받아먹다 사경을 헤매던 와중에도 분명 독한 성분의 약일 것 같아 위를 버리기 싫어 반 이상은 몰래 휴지에 싸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의사들 입장에선 병명도 모르니 항생제, 소염진통제, 해열제 등 온갖 약 대잔치를 벌였겠죠.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장례식도 생각했다는 사촌언니의 간병 덕분인지, 같이 살던 유럽 친구들의 매일같이 이어지던 병문안 덕분인지, 의료진의 병간호 덕분인지, 저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여전히 좀비 상태였고 병명도 몰랐지만 2주 후 퇴원하고 모든 걸 접고서 한국으로 간신히 기어 오게 됩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기 시작했어요. 


영화 속 항암환자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에 무수히 빠져있던 머리카락들을 부여잡고 망연자실하던 찰나, 분명 약 부작용임을 직감했고 그 후부터 약이라면 학을 떼고 멀리했습니다. 머리숱이 너무 많아 미용실만 가면 빌런던 제가 절반이 넘는 머리를 잃고 나자(거의 3분의 2가 넘게 빠졌지만 다시 새로운 머리카락이 송송 솟아나 여전히 미용실에 돈 내고 구박받으러 감 -_-) 약의 무서움을 절감하고 감기에 걸려도 되도록 약은 멀리하며 천연항생제인 날생강을 씹어먹거나 생강차를 달여 마시면서 자연 치유하며 버팁니다.


성장촉진제, 항생제, 합성 항균제, 각종 대사촉진제 등 다양한 약물을 투여받고 자란 동물들은 수많은 화학약품을 받아먹고 부작용으로 머리가 잔뜩 빠지던 저보다 더 끔찍한 상황에서 평생 학대받으며 살다 도축으로 삶이 마감됩니다. 그렇게 죽은 동물의 살점을 먹으면 인간은 과연 괜찮을까요?


법정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육식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 고기의 맛과 더불어 그 짐승의 업까지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짐승의 버릇과 체질과 질병, 그리고 그 짐승이 사육자들에 의해 비정하게 다루어 질 때의 억울함과 분노와 살해될 때의 고통과 원한까지도 함께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결코 멈출 수 없던 육식


공장식 축산에 관한 지문을 읽고 그렇게 육식에 의문을 가지고 나서도 혀의 노예, 육식을 결코 멈출 수가 없었어요.


호주에서 먹는 고기는 어찌 그리도 야들야들 쫀득쫀득하고 맛이 좋던가요! 씹히는 육질은 일품이었고, 물었을 때 이사이로 터져 나오는 육즙은 기가 막혔으며, 고기에서 나는 냄새, 일명 누린내 한번 맡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매콤한 김치찌개에 진리인 쫄깃쫄깃 돼지고기, 감칠맛 나는 미역국에 빠지면 섭섭할 소고기(호주는 소고기가 저렴해서 자주 먹었어요), 요리하기 귀찮을 땐 슈퍼마켓에서 파는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로스트 치킨, 삼박사일 씹을 만큼 질기지만 고소하던 캥거루 고기(도로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캥거루로 인한 교통사고가 빈번해 캥거루도 도살해 슈퍼마켓에서 파는 호주), 가장 좋아하는 생선초밥... 등등의 육식은 제게서 떼어을 수 없는 먹거리였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RngRlQwy4Hk?feature=share

(캥거루 이야기가 나와서 올려요. 캥거루에 관한 동영상 중 단연 최고로 웃깁니다. 저렇게 사람같은 캥거루를 잡아먹다니요. 캥거루 고기를 맛있다고 기름장에 찍어 먹었던 과거의 제 입을 찢어버리고 싶습니다.)



맛있 고기를 탐하면서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인간들에 의해 불행하게 사육되다 죽임을 당하고 살점을 제공하는 동물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어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입은 그들의 사체를 탐하는 모순이 되풀이되는 아이러니한 일상이 이어지다 2년간의 호주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야심 차게 만들어주신 돼지고기 수육을 입에 넣는 순간 심한 냄새가 느껴져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요리 천재인 엄마가 만든 고기 요리에서 그런 냄새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그 고기 냄새에서 공장식으로 사육되다 도축된 동물의 슬픈 삶과 억울한 죽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었고 그때부터 고기를 멀리하기를 한 달여. 제대로 된 채식에 대한 지식도 없이 그저 고기만 거부하고 영양가 없는 정크푸드에 집착하니 왠지 어지럼증도 나는 것 같고 나도 모르게 고기가 그리워져(특히 치킨)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통이 온통 잘 익은 통닭구이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 채식을 실천하고 한 달 만에 슬그머니 다시 잡식 생활로 돌아오고 말았지만 또 다시 시작된 죄책감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고기를 먹는 건 남의 죽은 시체를 뜯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야."


남동생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자 동생은 자신의 여자 친구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동생이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지금의 올케)가 채식을 한다는 이야기에 저도 다시 채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 함께 외식을 하러 고깃집에 갔을 때 고기를 먹지 않고 밥과 채소반찬만을 조용히 먹던 그녀에게 쏟아지던 눈초리와 뒷이야기는 채식을 하려던 제 발목을 잡고 말았어요.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까탈스러운 조직문화 속에서 안 그래도 사차원이라고 놀림받는데 까탈스러운 편식 인간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어쩌면 저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손가락질 하는 이 닫힌 문화 속에 살기 힘들어 외국에서 십 년 넘게 떠돈 것인지도 모릅니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올케는 아이 셋 엄마가 되었고, 아동드레스 사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히 지내며 채식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다시 고기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고기 없이 못 사는 동생의 식습관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식당에서 다른 엄마들을 만나 식사를 할 때 동물성 식품을 피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하며 자신도 저처럼 미혼이라면 비건으로 살 텐데 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올케는 비건이었을 때 지금보다 더 건강했었다며 아련한 눈빛을 띠었어요. 왠지 저는 맑은 영혼을 가진 올케가 언젠가 다시 비건이 될 것 같다고 했고 그녀 역시 그 희망적인 말에 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그때 조카 지효는 비건이 된 저와 한때 비건이었던 엄마의 대화를 듣고 지금 현재 자발적으로 고기를 먹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몰라도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텐데.. 사랑하는 조카가 편식하는 나쁜 어린이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순수한 아이들에게 동물의 죽음을 전제로 한 식단을 제공하는 학교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국 옥스퍼드 셔에서 함께한 열여섯 마리의 동물들


 2016년 여름, 그리스로 여행 간 집주인 대신 남아있는 반려동물들을 돌보는 하우스 시팅을 하며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에서 2주간 두 마리의 고양이, 열한 마리의 닭 그리고 세 마리의 오리를 돌보게 된 저는 다시 동물들의 친구가 된 시점에서 고기를 먹으며 극심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고양이는 익숙한 동물이지만 닭과 오리는 자주 먹기는 해봤어도 살아있는 자체를 가까이에서 접해본 적이 많지 않았기에 그들과 함께하며 새들과 더 친해졌고, 머리가 작아 멍청하다고만 여겼던 조류에 대한 선입견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들도 생각할 줄 알고 감정 표현도 할 수 있으며 경쟁심리도 심하고 개성도 각기 다른 눈부신 생명체였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집주인인 안젤라의 아홉살짜리 아들은 틈만나면 닭들을 품에 꼬옥 껴안고 쓰다듬어 주곤 했답니다. 처음엔 그 모습에 흠칫 놀랐지만(가축, 특히 조류는 불결하다고 생각했던 일인) 순수한 마음으로 작은 생명을 대하는 그 꼬마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새우 크래커를 뿌려주자 열심히 먹던 닭들. 주로 말린 벌레나 씨앗이 그들의 주식이었지만 종종 제가 먹던 현미도 건강식으로 뿌려줬습니다.

열한 마리 닭들은 모두 캐릭터가 분명했는데 특이한 점은 저를 자신들의 임시 집사로 똑똑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꼬끼오!' 울어대서 야행성이었던 저는 비몽사몽 닭장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여우의 습격을 피해 밤새도록 닭장에 갇혀있던 닭들은 답답한 닭장에서 밤동안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눈빛들이 이글거렸고, 문을 열기도 전에 돌격 태세를 갖추며 '내가 먼저 달려 나갈 거야!'라고 말하는 듯 꼭꼭 대며 일제히 앞다투어 모여들어 문을 염과 동시에 우르르 쏟아져 나와 마치 수십 년 감옥에 갇혔다 나와 쇼생크 탈출이라도 한 양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닭들이 오두방정을 떨며 밖으로 나오면 그제야 오리 세 마리는 뒤뚱거리며 나왔는데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오리 삼총사였습니다.

항상 줄지어 꼭 붙어 다니던 귀여운 오리 삼총사가 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도망 다니기 바쁘더니 나중엔 가까이 가는 걸 허락한 오리. 너무 귀여워서 다시는 오리고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자연 속에 사는 오리의 기대수명은 15년이라고 합니다. 닭이 최대 8년 사는 것보다 두배는 더 살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고 놀랐어요. 오리도 새니까 기껏해야 3년이나 4년 살겠지 했는데 15년 이라니 개 수명 못지않게 오래 삽니다. 겁도 많고 수줍음도 많지만 경계가 확실했던 오리는 고양이 벤이 슬쩍 다가가기만 해도 꽉꽉 대며 쫓아내고 계속 쫓으며 응징할 줄 아는 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보다 머리도 작고 알 크기도 작은 닭들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요? 닭들 앞에선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닭들이 오리들을 무시하며 괴롭히는 것 같았습니다. 강강약약, 강자 앞에 강하고 약자 앞에 약한 정의로운 삶의 자세를 오리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리들에게 쫓기고 도망가던 착한 고양이들 벤과 제리. 종이 위에 연필. 안젤라네 가족들에게 선물로 주고 왔습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과 2주를 동고동락하고 나니 동물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그동안 여름철만 되면 보양식이라고 생각 없이 먹어치웠던 오리로스, 닭백숙, 치맥으로 내 입에 들어갔던 새들에게 몹시도 미안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닭은 여전히 먹었지만 오리는 왠지 차마 먹기가 힘들어졌어요. 같은 조류인데 닭과 오리를 종 별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선은 오리부터 끊어봤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시도한 두 번째 채식


 2016년 겨울, 아일랜드에서 맥주로 유명한 킬케니의 샨킬캐슬 입주 화가 프로그램에 뽑혀 6주간 참여하게 된 저는 두 번째 채식을 시도했습니다. 고양이, 개, 거위, 닭, 소, 당나귀 등의 온갖 동물들이 함께 사는 널따란 농장이 딸린 고성에서 동물들과 친구가 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슈퍼마켓에만 가면 갈등이 이어지는 것이었어요.


-아일랜드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세마리 당나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https://brunch.co.kr/@shinyartist/74


'고기를 정말 먹어야 하나... 입으로는 동물을 사랑한다고 나불대고, 매일 보는 친구로 지내면서 걔네들과 똑같은 생명을 굳이 내 입에 처넣어야 하나... 내 배를 동물들의 무덤으로 만들 수는 없어.'


고민 끝에 결국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하고, 성 주인의 아들 내외 루븐과 엘렌의 크리스마스 디너에 초대받아 칠면조를 먹고나서부터 고기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아마도 한 달이 제 한계점 같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돼지 뱃살 Pork belly(삼겹살같이 생긴 두툼한 부위)를 보고는 무언가에 씐 듯 눈이 뒤집혀 장바구니에 넣어와 간단한 간장 양념을 하고 채소를 넣어 재운 뒤 아거 오븐(북유럽에서 고안된 24시간 뜨거운 오븐) 가장 아랫부분에 넣고 여섯 시간을 뭉근히 고아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돼지고기를 시작으로 다시 혀의 노예로 돌아온 저는 6주간 그림 그리며 지낸 아일랜드를 떠나 스코틀랜드 제니네 집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제니의 노부를 돌보며 한 달을 지내고 나서, 끓어오르는 유목민 집시의 피와 역마살을 감당하지 못해 스위스에서 석 달간 그림도 그리고 자원봉사를 한 뒤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스위스에서의 세 번째 채식 시도 그리고 성공


제가 세 번째로 채식을 시도한 곳은 스위스 취리히 부근 어느 한적한 동네에 자리 잡은 집에서였습니다. 자원봉사로 이어진 인연으로 친구가 된 크리스티안과 마야 부부의 부탁으로 그들이 한 달간 여행을 간 동안 남아있는 고양이와 기니피그를 돌보며 그림을 그리는데 마음씨 좋은 친구들은 집에 있는 모든 음식을 부담 없이 먹으라며 지하창고에도 식재료가 많이 있으니 맘껏 이용하라는 말을 남기고 소정의 생활비도 챙겨주고는 수마트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집에서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brunch.co.kr/@shinyartist/15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그 말은 천사의 음성으로 들려왔고 저는 쾌재를 부르며 지하창고로 달려가 음식재료를 둘러봤어요. 냉동고를 열어 식재료를 가지러 갔을 때 저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 어두컴컴한 지하실 냉동고 문을 연 순간 수많은 토막사체(물론 소고기)를 보고 소름이 끼쳐 바로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이 비싼 스위스에서 고깃값도 아끼고 이게 웬 떡이냐 했을 인간이지만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 변해있었습니다. 얼린 소고기의 붉은 살점이 왜 그토록 영화에서 본 사람 토막시체처럼 느껴졌을까요? 그때 저는 매일 아침 명상수행을 하며 명상에 빠져들고 있었고, 살짝 영적으로 성숙해진 시점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연결해주는 부분으로서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도 연결해주는 심장 차크라 단련시키는 명상을 하며 세상 만물에 감사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모든 것을 사랑하고자 변화하던 사람으로서 말 못 하고 약한 동물을 죽여 입에 넣는 것은 참으로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깨우침이 순간 들어서 일까요, 그때부터 저는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다짐하고 3년간 페스코 테리안으로 채식을 실천해오다 한국에 귀국, 제주도에 정착해 채식에 관한 수십 권의 저서들을 읽은 뒤 현명한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고 현재 그 어떤 동물성 식품도 섭취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인이 되어 순수 자연식물식으로 소박하지만 생기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동물들과 가까이 접촉하고 유대하며 행복했던 시간이 없었더라면 전 지금도 죄책감을 느끼며 치킨과 갈비를 뜯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고기를 먹지 않으니 그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만날 수 없고 사진으로만 남았지만 저를 일깨워준 순수한 동물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풀을 뜯으며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 예전의 나보다 행복하게 살게 되어 다행입니다.     



 

“If slaughterhouses had glass walls, the whole world would be vegetarian.” -Linda McCartney

만일 도살장이 유리벽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모든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될 것입니다. -린다 매카트니, 폴 매카트니


“When I see bacon, I see a pig, I see a little friend, and that’s why I can’t eat it. Simple as that.”  -Paul McCartney

베이컨을 볼 때, 나는 돼지를 봐요. 그 조그마한 친구를 봅니다. 그것이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죠. 간단합니다. -폴 매카트니


“I’m a vegan. It makes me feel really good and bright.” -Lea Michelle-

나는 비건이에요. 내가 비건인 건 나 자신을 바르고 빛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죠. -레아 마이클


모두가 걸어가는 그 길, 널리 알려진 지식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닙니다.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주장한 것처럼 말입니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싱겁게 먹어야 한다... 이와 같은 통념은 거짓이거나 지나친 과장입니다. 현대 한국인의 육식(단백질과 지방 덩어리) 섭취량은 20~30년 전에 비해 약 6~7배 증가했습니다. 학교급식 등을 통해 우유를 섭취하지 않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하라는 대로 잘 먹었으니 면역력도 향상되고 몸도 튼튼해야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러나 아토피, 감기, 암, 고혈압, 당뇨병, 대상포진, 골다공증 등 어느 하나 줄어들지 않고 거꾸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환자들 모두 약을 처방받고 있지만 고혈압과 당뇨병의 만성 합병증인 뇌졸중, 심장병, 망막변성 등은 줄지 않고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제 약과 병원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이제까지 먹고 살아온 삶의 결과입니다. 완전한 치유를 원한다면 이제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현미채식을 하고 햇빛을 쬐며 적당히 움직이고 숲과 자연을 가까이하는 치유의 생활습관이 필요합니다. 약 이상으로 자기 삶을 성찰하고, 유명한 병원이나 명의를 찾는 것 이상으로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선택의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현미채식으로 바꾼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임동규(농부의사, <내몸이 최고의 의사다> 저자
표지 그림 - 영국에서 식물화를 배울 때 그린 그림입니다. 종이 위에 수채. 노니 그림.



동백꽃. 종이 위에 수채. 2022



수채화로 그린 꽃들입니다.


제가 그동안 만난 동물들을 그려 모아보니 양이 꽤 많습니다.


♡더 많은 그림 보러 놀러 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매거진의 이전글 그 얼굴로 어떻게 시집가려고? 현미를 먹어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