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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Nov 19. 2023

난 20대가 아니다 - 아사쿠사, 라멘 벤케이

혼자지만 도쿄 여행합니다 01.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마치 비치는 햇빛이 한줄기 내리쬐는 희망처럼 느껴져서 예전부터 좋아했다. 언제나 어둠보다는 밝은 빛이 좋았다. 밤보다는 낮이 좋았다. 어두컴컴한 방보다 차라리 눈이 아파져 오는 형광등 밑이 좋았다. 금방 어둑해지는 겨울보다 해가 긴 여름이 그나마 나았다. 그래서, 도쿄는 9월 말에도 여름이고 무덥다는 일본 언니의 말도 한 귀로 흘려듣고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며 도쿄로 향했던 것 같다.



- 차례 -

01. 너 자신을 알라

02. 첫 힐링 식사, 라멘 벤케이

03. 추가 여행 정보(게이세이 스카이액세스 특급열차,

라멘 벤케이)

01. 너 자신을 알라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 낮은 살색 플랫 슈즈를 신고 항공기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일본에 도착했음을 퍼뜩 알아차렸다. 얼마 전 친구와 방문한 경남 창원의 사우나에 들어간 듯한 느낌, 바람 한 점 없이 내리쬐는 햇빛을 오롯이 피부로 느끼게 되는 날씨. 


몇 년 전 대구에서 더운 여름을 경험한 이후로 이렇게나 덥고 건조한 날씨는 처음이었던지라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적어도 나에게는 중국 광저우에 있었던 시절 40도에 육박했을 때 느꼈던 더위와 비슷했다. 도쿄와 달리 내가 사는 부산은 여름 끝자락과 가을 초입에 걸쳐 있었고 낮은 조금 덥지만 바람이 솔솔 부는 날씨, 밤은 옷을 여미게 되는 쌀쌀한 날씨였다. 일본이 생각보다 너무 무더워서, 새삼스럽게 한국을 떠나 해외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곳은 도쿄다.


날씨는 더웠다. 그래도 찝찝하고,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해서 거추장스럽고, 사진을 찍어도 우중충하게 나오는 비 오는 날씨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더위를 도쿄에 도착했다는 짜릿함이 이겨 먹었다. 몸은 벌써 더위에 지치기 시작했지만 마음은 20대 때처럼 여전히 열정에 화르르 불타고 있었다.


도쿄 나리타 공항은 참 넓고, 그래서 제1, 제2, 제3 터미널로 나누어져 있기에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른 터미널로 이동해야 한다. 검은색에 거친 재질의 캐리어를 끌며 버스를 타고 제2 터미널로 이동했다. 그리고 전철 티켓을 산 후 게이세이 스카이액세스 특급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1시간 정도 숙소가 있는 아사쿠사까지 환승도 없이 그저 쭉 가면 된다.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는 스카이라이너 전철이 있었지만 나는 굳이 이 특급열차를 선택했다.


게이세이 스카이액세스 특급열차는 가는 데 시간은 더 걸리지만 전철 창밖과 안을 꼼꼼히 뜯어보며 도쿄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일본에 온 것을 실감하고 해방된 자유에 웃음 지을 수 있는 이번 여행의 첫 번째 힐링 코스였다. 무더운 바깥과 분리된 시원한 전철 안에서 오감으로 일본을 느껴보기 시작했다. 문 바로 옆 끝자리에 앉았던지라 문에 적힌 일본어, 문 위 광고판에서 남색 모자를 쓴 남자 아이돌이 일본어로 제품을 홍보하는 모습이 보였다.


햇빛이 전철 창을 뚫고 들어와 바닥 곳곳을 비추고, 내 앞에는 공항에서 출발하여 캐리어를 다리 앞에 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외에도 흰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 문 앞에 서 있는 일본 직장인,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을 만지는 사람, 한국보다 크기가 작은 일본 도서를 들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사람... 어느샌가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전철이 어떤 역에서 정차하는지 방송하는 일본 여자의 청량한 목소리, 기차가 작게 덜컹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한국에서도 지겹도록 지하철은 탔지만 시각, 청각, 후각으로 조금씩 다른 것들이 와닿자 신선하게 느껴졌다.


일본 전철은 한국보다 고요하다. 민폐 끼치는 행동을 싫어해 대부분 전철 안에서 전화하거나 큰소리로 대화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어느 만화 속에서 무채색의 고요한 전철을 타고 저 멀리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느낌이었다.




아사쿠사. 거대한 대제등에 雷門(가미나리몬)이라고 적힌 주위를 압도하는 검은 글씨. 그곳을 지나면 길게 늘어선 떠들썩한 상점과 먹거리가 있어 이를 즐기고자 많은 외국인이 방문한다. 수많은 신호등 중 하나를 건너는 데에도 적지 않은 외국인, 내국인이 몰리는 아사쿠사에 나도 관광객의 신분으로 캐리어를 끌고 내렸다. 날씨는 무더워도 하늘에는 마치 포토샵에서 단 한 가지 색상만의 물감을 들이부은 것처럼 하늘색이 예쁘게 발려져 있었다.


더위 때문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화창해서 풍경 사진만은 완벽하게 나왔다. 수시로 셀카봉을 들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랴, 캐리어를 챙기랴, 이동하다가 살색 스타킹이 찢어져서 세븐 일레븐에서 점원에게 물어물어 사랴, 구글 지도에서 숙소 위치를 확인하며 가랴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10분 정도 걸어 외관이 깔끔한 호텔에 도착했다. 직원이 키를 가지러 간 사이 땀 냄새를 숨기려고 면세점에서 산 그윽한 향의 향수를 마구 뿌려댔다. 체크인 안내를 받은 후 로비 의자에 앉으니 그제야 설렘 뒤에 숨어 있던 체력 소모가 스멀스멀 느껴졌다.


30대에 자유를 느끼려면 몸 생각부터 해야 한다. 포켓몬스터 게임에 비유하자면 20대는 HP(체력)가 10 깎였다면 현재는 50이나 쭉 줄어드는 기분이다. 20대 초반 오사카, 중반 나가사키, 후반 도쿄에 왔을 때도 똑같이 뚜벅이로 지냈고 해가 자비 없이 내리쬐는 날씨였지만 지금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하긴, 하나의 몸을 정성껏 돌보지도 않고 써왔으니 갈수록 기력이 쇠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도 내 마음은 아직도 청청하고 어린데, 20대 때의 말랑말랑한 추억이 어제 일 같은데 육체는 속절없이 낡아가니 괜히 서럽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도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거울을 봤는데 강한 햇빛을 너무 많이 받은 탓에 이마에 없던 좁쌀 여드름이 여기저기 생겼다. 선크림을 좀 더 꼼꼼하게 바르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비단 여행에서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예전 그 시절에는 놀든, 공부를 하든 밤을 새우든 다음날 화장까지 하고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밤샘의 여파가 일주일 가까이 가서 침대에 드러눕기 십상이다. 


예전 그 시절에는 사흘간, 아침 여덟 시 삼십 분부터 저녁 열 시까지 외국인 클라이언트 옆에서 통역을 해도 주변에 있는 해운대도 만끽하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할 체력이 있었는데 이제는 비슷한 스케줄로 이틀간 일했더니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 정신이 쏙 빠진 상태가 되어 며칠간 죽은 듯이 침대에 뻗어버렸다. 예전 그 시절에는 깜빡하고 자주 안 먹었던 루테인, 비타민C, 비타민 D와 같은 영양제는 이제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예전에는 늦은 밤 맛있는 빵을 우걱우걱 먹어 치워도 금방 소화가 됐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기에 알아서 먹는 시간과 양을 생각하게 되었다.


'γνῶθι σεαυτόν'. 한국말로 '너 자신을 알라'로 널리 알려진 격언처럼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완전한 상태는 아니더라도 거기서 최선의 길을 찾았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몇 년 전의 김연경과 현재의 김연경을 비교하며 정신력이 부족하다고만 탓하곤 했다. 전략 없이 정신력 문제만 들먹인 것이다. 자신이 몇 년이 흘러도 똑같은 컨디션이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자책을 불러일으켰고 자신을 가파르게 깎인 절벽 끝으로 밀어 넣어 무리하게 만들었다. 아슬아슬한 절벽의 끝에는 번아웃이 기다리고 있었다.




02. 첫 힐링 식사, 라멘 벤케이

라멘 벤케이는 숙소보다 오히려 아사쿠사역에서 가까웠다. 아사쿠사역에서 숙소로 가서 캐리어를 보관한 다음 다시 아사쿠사역 쪽으로 땀을 흘리며 걷고 나서야 라멘 벤케이에 도착했다. 여름날 걷기 노동을 한 데다 이른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간단하게 먹은 편의점 빵이 다였기에 배가 매우 고팠다.


생각보다 주문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질문 1.

나: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니까 숙주가 듬뿍 올라간 게 있던데요."

주방장: (손가락으로 티켓 자판기를 가리키며) "그럼 기본 라멘 버튼을 누르고 밑에 숙주를 추가하면 돼요." (말하고 요리하러 사라진다.)

나: 아... (가르쳐준 대로 주문하려고 했지만 버튼이 안 눌러진다)


질문 2

나: (옆에 기다리던 아저씨에게) "이거 버튼이 안 눌러지는데 어떻게 하나요?

아저씨: "이거? 어...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더니) 나도 잘 모르겠네."


나: (주방장을 향해) "저기요, 이거 안 눌러지는데요?"

주방장: "돈부터 넣어야 해요."


(옆에 있던 아저씨와 나의 머쓱한 웃음.)


커다란 티켓 자판기에 가격에 따라 빨강, 파랑, 초록색으로 깜빡이는 수많은 버튼 중의 하나를 누르고 티켓을 사는 데에도 벌써 꽤 많은 질문을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다이소에서 물건이 어디 있냐고 묻기도 어려울 정도로 낯을 가렸는데 도쿄에 있으니 나 혼자라는 생각에 생존 본능이 샘솟았나 보다. 신경 쓰이거나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즉각 질문하는 일명 '물음표 살인마'가 되었다. 


겨우 주문을 마치고 주방이 들여다보이는 빨간색 카운터석에 앉으니 약간 구겨진 흰 모자에 흰 유니폼을 입은 주방장이 얼음물을 직접 가져다주었다. 날씨가 무더우니 시원한 가게 내부와 얼음물만으로도 환영받는 기분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사진으로 완벽하게는 담기지 않는 라멘의 엄청난 양.

'라멘 대장'을 뜻하는 라멘 벤케이는 1973년 포장마차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맛집이다. 기본 메뉴는 이름이 그냥 '라멘'이고 가격도 구백 엔이다. 부담 없는 가격이지만 양은 와,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많다. 나는 아직 이 라멘을 깨끗하게 다 먹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숙주가 담뿍 쌓여 숙주 산을 이루었고 뒤쪽에서는 활화산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뜨거운 여름에 들끓는 라멘. 이열치열을 떠올리며 숙주를 옆으로 치우니 돈코쓰 육수의 임팩트 있는 진한 향이 코를 타고 들어온다. 1973년 라멘 벤케이를 창업한 그때와 똑같은 특제 간장 소스로 만든 라멘을 이십 년 이상 흐른 지금 먹다니, 왠지 특별해진 기분이 든다. 오늘 도쿄에 발을 붙인 뒤 처음 먹는 음식이기에 의미도 깊다.


라멘 벤케이는 내가 얼마만큼 먹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라멘이자 한국에서 도쿄로, 나리타 공항에서 아사쿠사로, 아사쿠사에 있는 라멘 벤케이로 온 나에게 '해외에 왔으니 양은 적고 가격은 비싸도 이해해야지'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게 만드는, 솔직한 가격과 엄청난 양으로 나를 위로하고 환영하는 집이었다. 


마치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진솔한 사람처럼 진한 고기 육수의 맛을 있는 그대로 선사하면서도 마지막은 아삭한 숙주와 파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식감이 꽤 좋은 숙주와 라멘에 빠질 수 없는 고기, 부드러운 면, 강렬한 국물의 조합이 상당히 괜찮았다. 물론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던 나도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는 못했다. 라멘의 환영이 너무 거창했나 보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나오는 라멘의 늪에 빠진 것 같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닦으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라멘을 먹으니 몸속이 뜨끈해졌다. 배고픔이 사라지자 다시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도쿄 여행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샘솟았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조차 빛바랜 꿈처럼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여전히 20대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시절보다 더 하고픈 일이 많아졌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꿈을 향해 달릴 자유를, 해방감을 선사해 준다면 그 길이 무덥고 힘에 겨워도 아직은 뛰쳐나가서 조약돌처럼 반들반들하고 빛나는 꿈을 이뤄내고 실컷 행복을 누리고 싶다. 앞으로도 내가 부디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 


단, 내가 발붙이고 앉아 뜨뜻하게 속을 채웠던 라멘 벤케이와 같은 휴식 지점은 꼭 있어야겠다. 해를 거듭하며 변해가는 모습을 부정하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이사이에 쉼표를 찍으면서 다시 힘껏 발돋움할 힘을 얻어 달려 나가야겠다. 원하는 바에 최대한 가까워지며 건강하고 '힙'하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맛있는 라멘 한 그릇에 다시 더위로 뛰쳐나갈 용기가 생기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도쿄 첫째 날 먹은 첫 끼, 라멘의 뜨거운 국물 속에 힘들다는 생각은 모두 녹여버리고 발에 힘을 실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03. 추가 여행 정보

(블로그에 발행한 자료를 정리해 넣을 계획이며, 필요시 도쿄에 다시 방문 후 필요한 부분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아사쿠사 가는 법(게이세이 스카이액세스 특급열차)

https://blog.naver.com/inpikaaa/223230370420

▶양 많은 라멘벤케이(らーめん弁慶) 정보/아사쿠사 맛집

https://blog.naver.com/inpikaaa/223238398339

블로그도 있어요: https://blog.naver.com/inpikaaa

인스타그램도 있어요김연경❁LINA Kim(@translator_yeonkyoung)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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