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가로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방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벽이 없으면 방이 되지 않는군요. 그 평범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누구에게나 자기 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벽에 부딪히고 벽에 갇힐 때 반대급부로 열리는 자신만의 세계. 벽에 네모난 구멍을 내면 창이 되고, 그 빛으로 해시계를 만들고, 빗소리를 초대하고, 밤하늘에 뜬 달을 등으로 밝히면,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세상이 이곳에서 완성되겠지요. 고독과 자애는 자기만의 방에서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이고, 스스로가 가로막는 벽이라 치부했던 한계들을 그 속에서 자유롭게 놓아줍니다. 꿈을 가로막는 재능의 한계, 끈기의 한계, 시간의 한계, 노력의 한계, 사랑의 한계… 그것들은 내 꿈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다른 길을 보여주기 위한 이정표이며, 가끔은 딴 길로 쉬어도 가고, 엉뚱한 곳에서 망가지기도 하고, 허송세월도 보내고, 세상을 무심하게 살펴보라고 막아선 것이라고요.
<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