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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7. 2021

7년 전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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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간다. 오늘은 꼭 만나야 한다.


촌스럽게 분리수거하러 가면서 옷을 지난번보다 더 깔끔하게 입는다거나, 더 꾸미거나 하지는 않았다. 머리만 감았고, 저녁으로 냄새나지 않는 음식만을 먹었을 뿐이다.


지난주에 이미 그저 그런 내 모습을 그놈이 봤고, 일부러 꾸미는 게 더 자존심 상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나가야만 그를 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그가 먼저 나와 있었다.


역시 계획성 있는 사람라 분리수거를 하는 시간도 규칙일 것이라는 예상이 맞았다.


지난주와 같은 복장이고, 그가 뒤돌아 보기 전까지 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집 쓰레기통은 손에 는 대신 옆에 세워 두었다.


놈이 분리수거를 마치고 내쪽으로 돌아다.

일주일 만에 그놈과 내 눈이 또 마주친다.


그놈이 나를 보고 놀라긴 했지만, 날 만나는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내게 다가온다.


"오랜만이야."


여전히 따뜻한 목소리에 짜증이 난다. 안부 인사 따위는 사치다. 내 할 말만 전한다.


"이사 가줬으면 좋겠어. 태준이 엄마한테 혹시 옆집 얘기나 태준이랑 같은 유치원 다니는 은지 엄마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나야."


그놈은 모르는 내가 가진 패를 오픈하며 정면승부를 한다.


살짝 놀란 표정과 당황한 얼굴이지만, 변호사라 그런지 자신의 입장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명한다.


"그랬구나. 태준이 엄마가 이 동네를 참 마음에 들어 해. 이웃들도 좋아하고. 그래서 당장 이사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인생 참 얄궂다. 너네 옆집으로 이사를 다 오네."


당연히 몰랐겠지.


하지만 자기 가족을 위해 이사를 못 간다는 뜻을 먼저 전한 게 더 기분이 나쁘다.


꼭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빈말이라도 본의 아니게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어야 했다. 전투력이 올라간다.


"오빠가 여기로 이사 온 거 알고 나서는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 오빠네 전세로 들어온 거 맞지? 난 여기 내 집이라 나중에 집 팔 때 양도세 비과세 받으려면 지금 움직이기 어려워. 오빠가 꼭 가 줬으면 좋겠어."


그놈이 아플 만한 포인트를 건드린 것 같아 통쾌하지만, 오빠라는 호칭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너'라고 부르기엔 나까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손해를 보는 쪽을 택했다.


"내가 잘 피해 다닐게. 우리 이사 온 지 두 달이 돼도 한 번도 집 앞에서 마주친 적 없었잖아."


바로 옆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신경 쓰이는 내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입장만 관철시키려 하는 모습에 실망감이 밀려온다.


"일주일 만에 두 번이나 이렇게 마주치고 있잖아!"


그놈의 말을 끊는다. 그리고 최후의 한마디를 날린다.


"태준이 엄마한테 얘기할까? 옆집에 자기 남편 전 여자 친구 사는 거 알면, 이제 이 동네가 마음에 안 들어질 것 같은데."


지 버릇 개 못 주듯 또 자기 여자에게 말 못 할 비밀을 만들려는 모습에 7년 전 모습이 떠올라 화가 난다.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 옆에 놓인 쓰레기통을 들고 그놈을 지나 캔을 분리수거하 간다. 그리고 7년간 마음속에 깊이 새긴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나쁜 자식"


나는 7년 전 그놈이 내게 한 것처럼, 그놈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끔 단 1mm의 빈틈도 없이 내 요구사항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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