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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May 20. 2020

보이는 것과 믿고 싶은 것

어느 배우의 인터뷰로부터



나이 먹을수록 세상 참 좁다는 걸 느낀다. SNS에 뜨는 '함께 아는 친구'만 봐도 그렇다. 겹치는 인맥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이 생각하는 나는 어떨까' '이 사람과 내가 생각하는 저 사람은 얼마나 일치할까' 새삼 궁금해진다. 일관되게 행동하려 해도, 사실 모두가 모두에게 같은 인상을 주기란 어려운 일 아닐까 싶다.



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이야기만 들어온 어느 인물을 만난 적이 있다. 하도 이곳저곳에서 이름을 들어온 터라 직접 인사를 나눌 땐 왠지 연예인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소문이 '냉철하다', '직설적이다'와 같은 것들이기에 자연스레 '쎈캐'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시종일관 웃는 인상, 말투마저 다정했다. 그날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본 모습은 들어온 것과 너무나 판이해 적지 않게 당황했다. 평소에 편견 갖는 걸 그렇게 싫어해놓곤,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멋대로 판단해버리다니. 스스로에게 실망한 건 둘째 치고, 처음 본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각자의 잣대 안에서 생각하는 게 있죠.
보이는 걸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을 걸 보려는 경향 말이에요.

_ 배우 류준열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은 내 머릿속 어딘가에 어렴풋이라도 남는다. 모르는 대상일수록 나는 더 그런 편이다. 직접 만나보기도 전에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쁜, 극단적인 이야기를 들어버리면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긴가민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점점 더 인간관계가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기준이 애매모호한 잣대를 갖고 본다면, 그 사람의 1%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건,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사회생활을 해온 선배에게도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들어온 모습과 지켜본 모습이 다를 경우에 오는 당혹스러움은 여전히 피해가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덕분에 깊이 들여다보는 부분도 생겼다. 내가 전해 들은 말은 이미 지나간 그 사람의 과거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 내가 보는 당신의 현재, 당신이 보는 나의 현재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과거에 머무는 말보다 현재에 존재하는 모습을 똑바로 직시하는 게 옳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보이는 걸 믿기보다 믿고 싶은 걸 보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상과는 다른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내 믿음은 언제나 틀릴 수 있고, 내 잣대 또한 내 개인적인 경험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로 언제든 삐뚤어질 수 있음을. 이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관계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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