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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11. 2019

욕먹기 싫어서

어느 예능 프로그램으로부터



돌이켜보면 나는 '착하다'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왔다. 물론 선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기분 좋은 칭찬으로 돌아올 때도 많았지만,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내 감정을 꿀꺽 삼켜버렸을 때에도 '착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런 게 착한 건가. 좋은 게 좋은 것 같아서 굳이 반대 의견을 비추지 않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착하다고 말했다. 나도 그게 정말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메뉴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뭘 마시고 싶은지, 아주 사소한 결정조차 내리기 어려웠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떠올릴 기준도 기억도 없었기 때문이다. '둥글둥글한 사람'이라는 듣기 좋은 칭찬 뒤엔 주관 없는 '맹숭맹숭한 사람'이란 의미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욕먹지 않으려고 20년을 산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
욕 안 먹는 짓만 해.

_캠핑클럽 '성유리'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의 말 잘 들으면 뭐해. 니 속에 있는 말은 하나도 안 듣는데'라고. 나를 많이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따끔했다. 당시의 나는 누군가에게 욕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을 앞지른 상태였다. 옆자리에 앉는 동료의 취향보다 나의 취향을 알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때의 나는, 상대방에게 착한 사람일지 몰라도 스스로에겐 그다지 착한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든 아니든 타인으로부터 욕먹는 일은 두렵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여전히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이상한 말을 한 번에 뿌리치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늘 착한 사람이고 싶지만, 적어도 내 생각을 전하다가 먹는 욕이라면 조금은 덜 두려울 것 같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것보단 그 편이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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